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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ul 25.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1)/웍샵

자기다움(2) -활용편 

휴먼브랜드 1년 교육 과정이 2022년 2월 2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6월 15일에 교육 과정을 멈추었습니다.

그 이유는 휴먼브랜드 회고록을 쓰는 것이 어려워서입니다.

휴먼브랜드와 회고록과 브랜드 소설은 휴먼브랜드 교육의 중심축입니다.

하지만 회고록을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1:1로 교육을 바꾸어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교육 과정은 1년 무료 과정이어서 회고록 쓰기를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지금 쓰는 글은 휴먼 브랜드 수강생의 회고록 쓰기를 위해서 저의 회고록을 샘플로 드립니다.

아무래도 교육 샘플이기 때문에 회고록 본연의 깊이감이 없습니다.

자신만 보는 회고록이 아니라 공개되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저의 회고록 내용보다는 방법, 의미, 목적, 적용 등... 회고록을 이해하기 위한 글로 읽으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unitasbrand/393







운명을 만나고 소명을 듣다. 


내가 브랜드 보고서를 작성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던 때는 1996년 여름 정도로 추정된다. 분명 그날은 지금의 내가 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날짜를 기억 못 한다. 

 1996년. 어떤 사람에게는 옛날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일들이 많았다.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났고, 강원도 강릉지역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11월까지 소탕작전이 이어졌다. 무더웠던 8월에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반란 내란수괴죄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도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0월에 시내버스 기사였던 박기서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몽둥이로 척살하였다. [참고로  전) 버스 기사技士 , 박기서 기사騎士는 1997년 11월에 진역 3년이 확정받았지만 이듬해 1998년 3월 13일에 대사면으로 풀려났다. 현재는 택시 운전기사技士를 하신다.]


 1995년에는 삼풍 백화점이 붕괴한 사건이 있었고, 1997년에는 IMF 구제 금융 요청 사태가 있었다. 개인의 인생의 사회의 사건에 의해서 바뀐다. 26년이 지나서 보는 지금은 모든 것을 연결하여 그림으로 볼 수 있지만 1996년 그때는 아주 작은 점안에 갇혀서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 것처럼 태양도 공전과 자전을 한다. 이렇게 돌고 돌면서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라 태양계는 움직이고 있다. 회고록은 그때는 알 수 없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 지금 하는 일을 보면서 내가 시대의 사건 속에서 어떻게 돌고 뛰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휴먼브랜드 회고록처럼 목적을 가진 기억의 추적은 발화점을 찾는 것과 같다. 화재가 일어나면 방화와 실화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감식을 한다. 그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발화점이다. 방화의 여러 특징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2 지점 이상의 발화점과 급격한 연소가 일어난 연소현상 특이점을 찾는다고 한다. 회고록을 쓰면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운명인지, 우연인지, 행운인지 아니면 섭리인지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확실히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1996년을 발화점으로 보는 이유는 그때 했던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와 시장환경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같은 관점과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발화점의 시작은 U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보고서 발표였다. 그전에도 마케팅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대표이사와 브랜드 관계자 앞에서 그들의 ‘브랜드’에 관해 발표해서 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이때다. 발표 방법은 투명필름에 복사하여 빛으로 보여주는 OHP이다. 이것은 ‘그림자 인형극’과 비슷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나름 최첨단의 방법이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 공식 데뷔 debut에서 지금까지 브랜드 관련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다. 


 데뷔보다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탐험의 시작은 5년 더 뒤로 감아야 나온다. 그런데 ‘뒤로 감아야 나온다’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의 시대여서 지금처럼 ‘검색’을 쓰지 않고 ‘감는다’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한다면 핸드폰이 없었던 시대다. 이쯤 되면 읽는 사람도 갑자기 시간 왜곡장으로 들어가서 혼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깐 무선호출기 삐삐 시대였다. 지금과 달리 대부분 물건이 동전처럼 앞 면과 뒤 면이 있던 시대였다. 


 나의 시작을 찾기 위해서는 뒤로 ‘감아야’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소품으로 나왔던 워크맨에 넣었던 카세트테이프를 뒤로 감기를 누르면 고정 탭이 뒤로 돌아간다.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그러다가 ‘탁’ 소리가 나면서 테이프 고정 막대기가 멈춘다.

기억도 끝까지 돌아가면 ‘탁’ 걸리는 시점이 있다. 망각의 영역에서 기억 조각으로 끝나는 지점이다. 

내가 어떻게 마케팅을 배우게 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학교에서 단 한 번도 경영에 관한 공부를 한 적도 없다. 세미나 때 왜 언제부터 브랜드를 연구했는가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권민의 시작은 1990년도 어느 겨울이다. 

1990년대에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1990년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들에게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이라고 말하면 되지만 그들은 그런 시대를 상상할 수가 없다. 

 불과(?) 30년 전 일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잠을 잘 때까지 붙들고 있는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은 쥐라기 시절과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핸드폰과 컴퓨터의 함께 업그레이드된 이들에게 1990년대를 설명하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1990년대를 개쩔게(내가 한 말이 아니라 그들이 한 말이다) 만드는 사건이 있다. 1990년대에는 카페, 지하철 역, 버스 안에서 그리고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고 말하면 그들의 동공은 확장된다. 

 그들에게 1990년대는 말 그대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아마 호랑이 담배’ 같은 비유를 쓰는 사람을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담배는 조선 후기에 들어왔던 수입품이고 그때는 담배가 약초 같은 포지셔닝을 했기 때문에 신분과 연령 없이 모두가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하지만 담배가 양반들의 호사품이 되면서 예절이 생겼다. 그 이후에 일반 백성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했고 담뱃대의 길이에도 공권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이런 일이 생긴다. 그러니깐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시절은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동굴에서 마늘을 먹었던 시절이 아니라 1618년 광해군 시절 때 5살 아이도 담배를 아버지랑 맞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로운 시절을 말한다. 담배 수입 초기 때에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호랑이마저도 담배를 피웠던 시절을 말한다. 참고로 1986년까지 외국 담배를 몰래 피우다 걸리면  감옥에 가는 시절도 있었다. 

여기까지가 1990년, 옛날 옛적을 대신해서 설명했다. 이때 브랜드에 관한 책은 1권도 없었다. 


1990년대 내가 브랜드에 입문한 것은 이준희라는 친구 때문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준희라는 친구가 대학교 친구인지 동네 친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만난 친구인지가 기억이 전혀 안 난다. 몇 가지 장면만 기억 날뿐이다. 하지만 이준희의 얼굴은 오늘 점심에 만난 친구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선택적 기억이 있을 수 있을까? 

이준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당시에 씨름 선수 이준희와 이름이 똑같았고, 그 이름에 맞게 키와 덩치가 씨름 선수 이준희처럼 컸다. 검정 스탠 안경을 썼고, 눈썹은 짙었고 코와 입은 작았다. 얼굴은 긴 편이지만 볼은 통통했다. 그리고 얼굴 전체가 까무잡잡하지만 볼에 홍조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몽타주 전문가에게 설명을 하면 거의 실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회고록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뜬금없이 등장한 캐릭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사람과 연결되었는지가 전혀 생각이 나지 못할 때는 정말 답답하다. 나의 인생을 설명할 근거, 그러니깐 내가 지금 이것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이 없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런 것을 ‘운명적으로’이라는 식상한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이준희를 만나기 전에 나는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유치한 마케팅 기획이다. 그때 혈액형 성격 특성이 유행이었다. 지금의 MBTI와 비슷한 열풍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혈액형과 별자리가 사람을 분류하는 유일하는 기준이었다. 나는 혈액형별로 장단점이 있는 것을 착안해서 유치원 아이에게 혈액형별로 교육을 시킨다는 기획안을 만들었다. 

아이가 A형이라면 A의 장점을 강화할 수 있는 동화책을 어려서부터 읽는 것이다. A의 단점을 위한 동화책도 있다.


나는 이렇게 4개의 혈액형의 장단점에 맞는 동화책을 분류해서 유치원에 교재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졌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가 정말로 궁금하다.

이 또한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그렇다고 내가 혈액형 분류 신봉자가 아니기에 이런 생각이 왜 나왔는데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이 기획안이 1992년도까지 진행되었고 오성 컴퓨터라는 프로그래머 회사의 어떤 임원과 이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나는 이 보고서를 친구 이준희에게 보여주었고 이준희는 자신의 지인인 광고대행사 임원에게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준희의 소개로 삼아 기획 김 이사님을 소개받았다. 삼아 기획(혹은 삼화 기획인가? 기억은 삼아인데 직감은 삼화 기획이다) 김이사는 가수 윤형주 같은 얼굴이고 검정 뿔테 안경을 썼다. 

입을 크게 열지 않고 말해서 말은 가늘었다. 그리고 침이 입에 코팅된 것 같은 느낌으로 들렸다. 

그는 나의 기획서를 자세히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질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와의 만남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이사는 나에게 뜬금없이 광고대행사 [AE]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AE가 무엇인지 물었고 김이사는 광고기획자라고만 말을 했다. 아마도 나의 보고서가 AE들이 만드는 것과 비슷해 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의 장면은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마치 드라마에 엔딩에서 갑작스럽게 멈추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춘 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때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서로 엉켜서 기억이 아닌 섬광으로만 남아 있다.

 시간 순으로 기억하는 다음 장면은 내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고르는 모습이다. 놀랍게도 이때부터는 내가 나를 원샷으로 보는 것처럼 슬로비디오로 천천히 돌아가는 장면이 기억 속에 있다. 나는 광고 마케팅 코너에 있었고 거기에서 광고에 관한 여러 책들이 있었고 그 책중에서 [광고기획론]이라는 책을 꺼내 들어 읽었다. 이 책 부록에 있는 실전 발표 보고서를 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묘한 감정을 만들었다.


그때의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그 모든 광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것은 마치 컴퓨터 개발자의 언어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전자장비를 분해해야 볼 수 있는 녹색 인쇄회로기판(pcb printed circuit bord)을 보는 것 같았다.  퍼즐 게임의 칼선이 나있는 뒷면판을 보는 것 같았다. 화려한 연극배우들이 검정 벨벳 무대 커튼 뒤에서 화장을 고치는 모습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광고기획에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 만든 혈액형 교육 관리 프로그램 때문일지 모른다. 그 책을 보니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기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그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책을 그 자리에서 서서 읽으면서 해외에서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신기하고 친근하게 읽었다. 처음 읽는 광고용어가 눈에는 낯설게 보였지만 나에게는 주문처럼 감미로웠다. 이 책은 처음 방문한  동남아시아의 어떤 섬에서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각종 해물 전골 음식을 보는 것 같았다. 향신료는 코를 찌르고 생긴 것은 무섭게 생겼지만 입에 넣어 먹으면 이상하리만큼 과일 맛이 나는 신기한 바다 생명체 같은 단어들이다. 정말로 입에서 달았다. 



그때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하나님, 저는 광고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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