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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16.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5)/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한일합섬 퇴사 이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마치 선택적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퇴사 이후에 그 어떤 기억도 없다. 

회고록을 쓰면 인생 중에 이런 망각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는 그런 시간대가 있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그런 기분이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 리셋을 당하거나 삭제된 것을 최면 치료를 통해서 알고 싶다.

소파에 앉아서 몇 개의 기억을 조합시켜 그 시간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졸고 있다. 

걸으면서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딴 생각을 한다. 

이쯤되면 누군가에 의해 내 시간과 기억이 봉인되어 있거나 차단 되어 있는 것 같다. 


기억할 수 없는 특정 시간대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방금 꾸었던 꿈이 선명하게 눈동자에 남아 있는데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런 휘발성 꿈도 기억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일까? 이런 기억 소실로 인해서 시뮬레이션 우주와 영화 메트릭스 같은 현상이 나에게도 일어났다는 착각을 준다.  


한일합섬 퇴사 이후에 기억은 내 방에 있는 나를 타인의 시점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내 방에 앉아 있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기억도 참 기괴하다. 나는 방에서 함일 합섬 퇴사 이후에 3가지 안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새롭게 입사할 회사는 새론 기획, 거인 이벤트 그리고 현대 자동차였다. 3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집으로 전화가 왔다. 이때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다.


 나에게 전화한 사람은 바로 삼아 기획의 김이사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김이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분과 군대 시절에 교류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분에 대한 기억은 친구 이준희처럼 내가 군대를 간 이후에는 없었다. 김이사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태현 씨 두란노 서원 알아요?”

“아… 모르겠는데요.”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를 내는 출판사 있잖아요.”

“아 …네 (사실 몰랐다. 그런데 아는 척을 했다)”

“거기서 광고 기획자를 모집한데요. 한번 가보세요.” 


기억은 여기까지다. 내가 어떻게 찾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서빙고동에 있는 두란노 출판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기억은 또렷하다.  

입사 인터뷰는 4층 회의실이었다. 나는 합격을 했고 두란노 서원에서 광고 기획가가 아니라 문화기획가로 일하게 되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김이사님이 왜 전화를 했는지? 어떻게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알았는지? 그리고 왜 그자리에 나에게 알려주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그 한 통의 전화가 내 인생의 변화점이었다. 


영화 리스본의 야간열차에서 주인공의 설명처럼, 내 인생에도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이 인생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렸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엔 고결함이 있다.]

-리스본의 야간열차


두란노 서원/ 문화센터에서 내가 받은 직함은 간사(幹事)였다. 처음 들어본 희한한 직책이었다. 

[문화 기획 간사 조태현] 직함과 직책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하는 일은 급사給仕에 가까웠다. 강의를 기획하고, 강사를 모집해서, 강좌를 오픈한다. 광고 전단지와 광고를 잡지에 게재한다. 여기까지 간사다웠는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강의장을 청소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강의장을 세팅하고, 강사가 강의를 할 때까지 뒤에서 앉아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광고 기획과 카피라이터은 맞았지만 내가 원했던 TV광고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곳에서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 해야 되는 일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문화기획 간사로 일할 때는 나의 운명이 너무 커서 보지 못했고, 나의 소명이 너무 작아서 찾지 못했다. 


여기서 나는 헬퍼십(1999년에 쓴 나의 4번째 책 제목)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성구 대리를 만났다. 그는 나의 직장 선배였고 나를 팀원으로 두고 있는 팀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두란노에서 맡았던 강좌는 편집기획, 출판기획, 글쓰기, 주보 제작, 멀티 슬라이드, 인형극, 연극과 같은 강좌였다. 대부분 교회에서 행하는 행사 콘텐츠에 관련된 일이다. 이런 강좌는 보통 8주 혹은 12주에 끝나는 교육과정이었다. 나는 두란노 문화센터 기획간사를 하면서 똑같은 강사가 하는 똑같은 강의를 연속으로 4번씩 듣게 되었다. 같은 강사의 강의를 4번 이상을 듣게 되면 강사의 강의 습관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보다 다양한 강좌를 만들기 위해서 [행사 이벤트]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일본 번역책이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책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란노에서 퇴사한 후에 그때 강의장 뒤에서 들었던 콘텐츠의 내용을 편집해서  1997년 9월에 [예배 기획, 행사 기획]이라는 첫 번째 책을 출판했다. 그 이후에 업데이트된 자료로  [교회 커뮤니케이션 혁신] [교회 행사 기획 핸드북] [열린 예배 기획 웍샵]이라는 책을 썼다.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광고기획론] 외 다수의 광고 책을 바탕으로 행사에 관한 책 그리고 현장 강사들의 생생한 경험과 자료를 편집한 책이다. 


내가 배운 것을 설명한다면 ‘기획과 편집’이었다. 비록 특정 종교에 한정된 지식이었지만 내용과 적용은 일반적인 지식이었다. 이때 나는 좁고 깊은 지식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일반적인 개념보다는 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탐구하는 것에 온 몸이 본능처럼 반응을 했다. 이후에 이런 경험을 통해서 여러 권의 책을 쓰게 되었고, 2000도에는 월간) 큐 CUE라는 행사 기획 전문잡지를 창간하고 1년 반 동안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내가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입사해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속한 곳이 바로 [영리 단체]와 [비영리단체]가 연합된 조직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되려고 하는 휴먼브랜드와 하려는 브랜드가 바로 30년 전에 했던 두란노 문화센터와 비슷한 일이다.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목적은 같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영리 단체]는 [비영리단체]처럼 일하고 [비영리단체]는 [영리 단체]처럼 일하는 [비영리단체의 경영]이 나에게 큰 주제가 되었다.  


 두란노 서원에서 기억은 의외로 많다. 28년 전, 2년 동안 다녔던 그곳에서의 기억이 최근 5년 전 기억보다 더 많은 것은 아마도 이곳에서 나의 목적과 의미가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은 지극히 단순한 일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배운 것으로 지금도 살고 있다.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한일 합섬 무역 봉제 수출부와 두란노 문화센터의 문화사역은 일로서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출발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나의 삶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씨줄과 날줄이 시작할 때 원단 가운데 있는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실이 천이 되면서 중앙에 있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처음 씨줄과 날 줄은 교육과 광고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실은 문화와 기획으로 갔다가 패션과 교육으로 원단을 만들어 냈다. 결국 나의 목적은 브랜드와 교육으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모든 과정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배움(성장)과 다움(목적)이다. 이것을 이끌고 가는 힘은 창의성과 호기심이다. 이제 휴먼브랜드 회고록을 쓰면서 인생에 숨겨진 밑그림을 프로타지(문지르기) 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훈련시킨다면 어떤 과정과 주제를 훈련시켰을까?” 

 “내가 확인한 나만의 창의성 개발을 위해 광고, 행사, 교육, 패션, 브랜드는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  


30년 전 나는 비영리단체의 문화기획 간사였고, 지금은 비영리단체를 돕는 사회적 브랜드를 준비 중에 있다.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추억의 감성팔이 같은 돌려막기도 아니고 목적을 드러내기 위한 가로막기도 아니다. 


문화센터 문화기획 간사를 하기 전에 나는 광고에 관한 책을 읽었기에 급사와 같은 간사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관점을 가진 간사로서 일했다. 만약에 광고 관련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단순 노동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곳에서 일했던 지식을 바탕으로 4권의 행사 기획 책을 썼다. 지금 그 책을 다시 보면 그것은 1944년 영국의 암호 해독가들이 로렌츠 암호 해독을 위해 개발한 최초의 진공관 컴퓨터인 콜로서스 처럼 보인다. 내가 쓴 책을 읽으면 얼굴이 진공관처럼 뜨거워진다. (창피하다) 


 나는 휴먼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직무 회고록을 쓰는 마음으로 일하라고 조언한다. 나의 일을 책으로 쓴다면 제목을 무엇을 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영업 비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업이란 무엇인가?” 아니면 “탁월한 디지털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가?” “조경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정의로운 게임 비즈니스는 무엇일까?” 제목만 보아도 막막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런 목적지향적이며 관념적인 책을 쓰기 위해서는 매뉴얼 책이 아니라 인문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 


이 분야에 구루라고 할 수 있는 선배들도 만나서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한다. “영업이란 무엇이죠?” 아마 그들이 존경받는 전문가라면 일반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해서 글이 완성이 되었다면 출판사에 보내는 것도 좋다. 출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받기 위함이다. 그래서 여러 출판사에서 보내어서 냉정한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이것도 프로타지다) 내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운 좋게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독자의 평가가 기다릴 것이다. 출판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 직장 회고록의 핵심이다. 


 직장 회고록은 내가 아는 것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아는 것이 세상 지식의 90%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쓴 글을 언제가 보게 되면 그때 내가 알고 있던 것이 1%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알게 해 준다. 결국 자기다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게 배우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미래학자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앨빈 토플러는 “미래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회고록을 쓰면서 과거를 뒤적이면서 과거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미래를’ 찾는 것이다. 찾기 위해서라면 일기와 일지를 지금부터 쓰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에는 2000년도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도 링크를 걸어 두겠다)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기억의 누적이 아니라 미래의 압축이고 내 안에(뒷 면에) 있는 미래(목적)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나는 1년 6개월 근무했던 경험으로 4권의 책(업무 회고록)을 쓰면서 얻은 것은 인세와 명성이 아니라 인내와 배움이었다. 지금 보면 낯 뜨겁고 허접한 책이지만 약 1,200페이지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어야만 했다.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편집장에게 원고 수정을 강요(?) 받아야만 했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글을 쓰다가 좋은 책을 발견해서 읽으면 좌절하고 만다. 이미 내가 쓰고 싶은 내용들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다르게 쓰면 책의 방향은 엉뚱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다시 쓰고 버리고 다시 쓴다. 이 과정이 모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나를 인내하면서 나를 배우는 과정을 깨닫게 된다.   


 나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 동안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잡지의 발행인과 편집장을 경험했다. 이일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1995년도에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문화기획 간사로 일했던 것의 열매이다. 이제야 모든 것이 연결된 것을 알게 되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 全知的 作家 視點 

소설가는 소설의 결론을 정하고 쓰는 경우도 있지만, 쓰다가 새로운 결론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소설을 써야 한다면 어떤 소설 결말을 쓰고 싶은가? 결론을 정해 놓고 쓰는 소설? 아니면 아직 결정이 안된 소설! 소설가에게 물어보았지만 그것은 취향, 능력, 경험, 주제, 분량, 캐릭터 외 수많은 변수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렇다면 휴먼브랜드라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할까? 


지금 이렇게 말한 시점을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휴먼브랜드 교육 수강생을 위한 글이다.


 휴먼브랜드 수강생은 자신이 이런 휴먼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휴먼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결론의 복선으로 끌고 가야 한다. 너무 반복해서 이렇게 쓰는 나도 불편하지만 언제나 같은 질문이 오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한번 대답하겠다. 


“휴먼브랜드의 회고록은 1인칭 시점으로 쓰는 자서전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되려는 휴먼 브랜드(하려는 브랜드)의 스토리를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나에 관해서 3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현재를 과거로 해석하면서 당위성을 부여한다. 누차 말하지만 자기기만에 대해서는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감정은 자신을 쉽게 속이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을 속이는 것은 어렵다. 


자신의 픽션이 아니라 팩트만으로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회고록을 쓰면서 자신의 수준과 방향을 경험한다. 이때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회고록을 보면서 냉정하게 판단을 하면 된다. 코치는 수강생의 회고록을 읽고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이야기할 것이다. 

“파이팅 응원할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 정도의 말이거나 감흥이라면 다른 소설(휴먼 브랜드)을 쓰는 것을 제언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너는 이것 때문에 태어났구나!” 코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휴먼브랜드가 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언제 가는 당신은 당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全知的 作家 視點, 개인적으로 나는 이 개념이 좋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작가가 등장인물의 과거, 미래, 속마음과 배경까지를 모두 간섭하고 참견하면서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이 시점을 가지면 나를 괴롭혔던 운명은 더 이상 장난질을 하지 않게 된다. 목적을 향하는 나의 운명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무대일 뿐이다. 운명을 해석할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 운명을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부모의 이혼이 아니었다면 내가 자기다움에 대해서 흥미를 가졌을까? 내가 자살할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휴먼 브랜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을까? 나의 약점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전지적 작가 시점은 소설의 주인공이 결말을 잘 끝낼 수 있도록 복선과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끌고 나간다. 

지금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내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쓰고 버릴 회고록에서 사용했다.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라는 소설을 썼을 때 사용했지만 그것은 회고록이 아니라 휴먼 브랜드 론칭을 위한 소설이다.  


지금 내가 쓰는 휴먼브랜드 회고록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만약에 일반인을 군인으로 만들어 소총을 지급해야 한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소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군인이 되어야 한다.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군인에 맞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그렇게 군인다워질 때 국가는 그 사람에게 소총을 주게 된다. 


이렇게 내가 무엇이 되기까지의 과정,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회고록을 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필요한 것은 신의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운명이 아니라 그 어떤 목적을 가진 신의 관점이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의 시간을 보는 것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내가 혈액형 교육관리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의미 없는 그냥 휘발성 아이디어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혈액형별로 교육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교육해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그런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단지 트렌드이고 재미있으며 색다르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의미 없었던 것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해석이 되었다. 이런 의미는 감정과 생각만으로 보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하는 회고록처럼 글로 쓰면서 뽑아내고 지금과 연결해야 한다. 결국 의미 있는 것들이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4개의 언어가 겹쳐 있었다. 광고 용어, 봉제 수출 용어, 각종 행사 및 커뮤니케이션 용어였다. 내가 비영리 단체(정확히 말하면 비영리단체와 영리 단체가 섞여있는 조직이었다)에 있으면서 또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비전, 목적, 가치, 의미, 임팩트, 사회적, 기부 등. 이런 단어는 28살 된 나에게는 매우 낯선 단어였다. 이런 단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이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돈이 아니라 가치에 둔 사람이다. 이런 세상을 알게 해 준 것도 [광고기획론]과 같은 한 권의 책이었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쓴 [비영리 단체 경영]이라는 책이었다.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는 인생의 지도가 되었다. 


두란노에서 입사하면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두란노를 퇴사하려고 고민했던 시점에서 읽게 된 책이다. 두란노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비영리단체를 만나 보았다. 그들을 만나보면서 곤혹스러운 것은 왜 이런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가난한 것일까? 왜 이들은 이렇게 어렵게 일을 하는 것일까? 왜 이 사람들은 전략적을 일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런 고민을 했을 때 알게 된 책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누가 어떻게 왜 나에게 소개한 것인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 나에게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해서 읽은 책이다. 


 책의 목차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1부,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2부, 사명에서 성과로. 특히 2부에서는 마케팅, 창의적 혁신 및 자원개발을 위한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접근이 있다. 광고기획을 공부한 나에게는 해외 길거리에서 모국어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3부는 효율적인 성과관리, 4부는 효율적인 인사관리와 인간관계 그리고 5부는 자신을 계발하라.이다. 


 그중에서 밑줄을 두 개나 그어가면서 본 구절이 있다. ‘성공적인 사명을 위한 세 가지 필수요건’이라는 주제로 3개의 비밀을 이렇게 소개했다. ‘세 가지의 요건은 기회의 포착 전문지식과 전심전력으로 추구하는 각오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퇴사를 결심했다. 굳이 말한다면 내가 속한 조직과 내가 만난 조직을 이 책의 관점으로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비영리단체 경영]라는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나의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영혼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즈니스라는 것에 나는 빠져 들었다. 지금에 비하면 너무나 희미하게 보였지만 mission for business 또는 business for mission이라는 방향을 알았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고, 그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나의 항해는 시작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분명 지금 내 영혼은 그때 태어났던 것 같다.   


  광고기획과 행사 기획 그리고 비영리단체 경영이라는 나의 자기다움을 만들어가는 본능과 지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바코(한국 광고 공사)가 다녔다가 두란노 출판사에 합류한 유수열 부장이 내가 만든 보고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조태현 씨는 여기보다 이랜드에서 근무해보는 것이 어때?”  

아쉽게도 기억은 거기까지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다시 이랜드 그룹의 (주)리드 커뮤니케이션에 지원했는지에 관한 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퇴사를 결심하면 그때부터 모든 기억은 사라지는 것일까? 


이랜드 그룹은 경력직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 모집에 지원했다. 그리고 희망 직군도 1순위와 3순위 모두 영업부라고 적었다. 지원서에도 광고 기획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이랜드 그룹에 입사하는 것은 마치 수면 대장 내시경처럼 눈을 떠보니 회복실에 있는 것처럼 나도 잠깐 눈을 떠보니 이랜드에 입사했다.



블랙아웃(Blackout)과 암전 dark change

회고록을 쓸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쓸 기억이 없을 때다. 휴먼 브랜드 수강생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자신이 준비하는 휴먼브랜드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기억이 없을 때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 그 당시에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기억이 날 때가 많다. 하지만 기억을 짜내어 기억한 것과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만 기억하는 나의 기억이다. 


  나는 2000년도부터는 회고록을 쓰면서 이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이제는 매일 일기 쓰기를 통해서 사건의 암전과 무관심의 방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일기를 쓰는 사람만 알겠지만 수 십 년 전에 일기를 읽으면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몇 번한 후에 비로소 기억의 블랙아웃에 대해서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잊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의 블랙아웃은 어떤 면에서는 우주의 블랙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블랙홀은 거대한 항성이 진화의 최종단계에서 폭발 후 수축되어 생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블랙홀이 생기면 주변에 모든 것을 빨아 당긴다고 한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 무엇인가 나의 기억을 모두 빨아 당긴 것처럼 남아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억나지 않은 것으로 괴로워했지만 인생의 회고록을 쓰면 블랙홀과 같은 망각에서도 기억 남는 것이 미래로 인도하는 인생의 표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고록을 처음 쓸 때에는 

질문의 시작을 “왜 내가 살았던 시간이 이렇게 낯설게 느낄까?”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질문의 대답으로 질문을 만들었다. “자기다움으로 살아온 것만 기억으로 남는 것일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회고록이 바로 기억하는 것만으로 휴먼브랜드 회고록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깐 자기답게 살아온 기억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을까 봐 나무에다가 X 표시를 하시면서 돌아왔던 길을 다시 따라가는 것과 같다. 블랙아웃이 되어 버린 인생의 기억이지만 회고록을 쓰면서 희미한 과거의 기억이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 누군가 내가 과거를 볼 때 자신이 표시해 둔 것을 잘 볼 수 있도록 불을 끈 것은 아닐까? 내가 블랙아웃에서도 발견한 기억은 내 인생에 관여한 그 어떤 존재가 나의 인생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서명처럼 보였다. 

 인생의 블랙아웃은 뇌의 망각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암전(무대를 어둡게 하고 막을 내리지 않고 장면 전환을 하는 것)이었다. 암전으로 어떤 막이 새롭게 시작되었을까? 암전은 내 인생의 암 전인가? 다른 사람 인생의 암전이었나? 나는 내 무대에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여러 사건을 들면서 설명할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몇 개의 막이 지난 간 후에 인생이 어떤 결론이 되어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회고록을 쓴다면 인생에 그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보면 맨 마지막 장에 [마지막으로]라는 챕터에서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한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50대 50입니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 대부분에 걸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왔습니다.” 


회고록을 쓰면 …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을 만날 수 있다. 




설명이 안되는 기억력

살인범은 살해한 장소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았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다시 현장을 찾는 이유는 자신이 실수로 흘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란다.

살인범을 쫒는 형사들도 수사의 어려움이 생기면 다시 현장으로 간다. (이것도 영화에서 보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혹시라도 놓친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 보는 것이다. 


회고록을 쓰면 사건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폴리스 라인처럼 출입을 통제하는 구역(시간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인생인데, 나 자신도 들어가지 못하는 영역이다. 강제적으로 기억이 삭제당해서 쫒겨난 지역에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구역이다. 이런 구역(시간대)에 들어가면 살인자와 형사의 모드로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살인자는 현장에서 자신만이 아는 증거를 찾고, 형사는 현장에서 살해 동기를 찾는다. 형사는 사고 살인인지 아니면 계획 살인인지, 초보인지 프로인지를 찾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현장에 들어가면 나는 형사처럼 그때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난다. 일종에 탐문 수사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아주 많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서 갑자기 기억이 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형사모드를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속에 있는 나를 찾으면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낸다. 그리고 이때 일어난 사건이 내 인생에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는지도 파악해본다. 그렇게 기억 설계도를 그리면 잊었던 나를 찾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느정도 기억이 나면 이때부터는 살인자 모드로 바꾼다. 내 몸이 기억하거나 두뇌의 시냅스와 뉴런이 활성화 되는 그 장소에서 기억이 다시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그당시에 했던 것을 다시 재현하면서 기억을 찾아낸다. (설명할 방법이 없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다시 기억을 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그렇다고 효과가 검증된 것도 아니다)

결국 이런 모드의 도움으로 김이사님의 전화 한 통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숙명과 소명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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