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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19.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6)/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흘러가는 시간으로 [크로노스]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기회로서 [카이로스]로 나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시간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다. 처음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회고록을 쓰면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차 외에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나가는 시간과 잠깐 멈춰 버리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간을 사용하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고록을 쓰면서 그때가 카이로스라고 생각했는데 크로노스였고, 크로노스라고 했지만, 카이로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카이로스(결정적 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시간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남는 '시간 수영법'도 배우게 되었다. 내 멋대로 정한 시간 수영법은 [오늘, 지금, 여기]라는 시간을 통해서 시간에 익사하지 않고 수영하는 법이다. 시간 수영법은 별도로 정리할 예정이다.


 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체가 목표였고, 나는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과정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왜곡시키고 바꾸는 것은 목적이다. 휴먼브랜드가 되려는 것은 목적에 따른 삶이기에 과거의 시간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 그리고 카이로스에서 크로노스로 변한다. 나는 흐르는 강물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은 과거로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시간, 그러니깐 그 어떤 것을 위한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를 위한 나의 시간도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들이 모여서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도 알게 되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그리고 또 다른 때가 서로 엉켜있지만 잘 짜인 원단 같았고, 그 원단 중앙에는 씨줄과 날줄로 짜인 목적이라는 그림이 있다. 아쉽게도 현재에서는 그런 시간의 결을 느끼지 못한다. 덩어리로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와 목적을 찾기 위한 회고록을 작성할 때 시간의 결과 그리고 그 중앙에 나타나고 있는 무늬를 볼 수 있다. 





이랜드의 두 번째 입사 지원은 그 당시에는 카이로스였지만, 돌이켜 보니 나에게는 크로노스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직장 생활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곳이 출발점이었다.


한일합섬 수출부에서 옷을 만들고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광고와 강좌 기획을 하다가 이랜드 그룹에 다시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이랜드에 입사해서 패션 브랜드의 광고 기획을 하게 되었다. 한일 합섬과 두란노 문화센터에서 한 일이 서로 겹치지 않았지만, 이랜드에서는 이 두 개의 일을 합친 일을 하게 되었다.


 나의 연대기로 본다면 이랜드의 입사는 나에게 한일 합섬과 두란노의 융합(?), 쉽게 설명하자면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다. 누구의 정자와 난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세포분열이 생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경험했지만,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인간의 발생과정이다. 발생 과정으로서 이 시기를 따지자면 … 사람의 심장과 눈이 생기는 임신 3주 차에 해당한다. 내가 존재의 목적을 이해하고 심장이 떨리는 진짜 일을 경험하게 된 시기이다. 그러니깐 지금의 브랜드 잡지 편집장의 심장을 가진 게 그때였다. 혈액형 교육 과정위에 광고 지식과 교육이 결합하여서 브랜드 지식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두 번째 이랜드 그룹 공채에서 나의 지원 분야는 영업이었다.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광고기획’이 아닌 모두 ‘영업’을 적었다. 면접관들은 신입 사원을 뽑는데 경력사원이 지원한 나를 좋게 평가한 것 같다. 면접관은 나에게 왜 또 지원했느냐라고 물었고 나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간절하게 대답한 것 같다. 뻔한 대답을 했을 것 같은데 너무 뻔한 대답이어서 기억은 없다. 


나는 공채 17기 4차로 합격을 하고 1개월 넘게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교육받고 필독서라고 하는 책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하였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주입식 교육받으면서 뷔페 음식을 먹는 것처럼 교육을 섭취했다.


‘돌이켜보니’ … 자궁이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자궁은 아니다. 나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서 나만이 느끼는 시간대이다. 나는 40여 명의 신입사원과 교실 안에 오래간만에 태아처럼 다리를 모으고 작은 책상에 붙어서 공급하는 콘텐츠를 흡입 중이었다.


 그렇게 교육받다가 중간에 유산이 될 뻔도 했다.


 뜬금없이 나는 교육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면담을 받았고, 나의 비딱한 자세를 배우려는 태도로 교정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의받았다. 교육부에서 나의 모습은 대학교 신입생 중에서 복학한 그런 모습으로 보인 것 같았다. 다리를 꼬아 앉거나 의자를 뒤로 약간 눕혀서 앉은 모습이 거슬렸던 것이다.


그때 면담을 받으면서 들었던 이야기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조태현 씨, 직장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한가요? 남이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한가요?” 

갑자기 처음 면접을 받았을 때 들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조태현 씨가 알고 있는 리드가 아닙니다.” 

이미 정해진 답이 있기에 나는 복종의 차원에서 원하는 답을 했다. 


“남이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이 질문을 지금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말했을까? 해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장하고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했을까? 그렇다고 [직장에서 남이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받은 이 질문의 핵심은 [교육시간에 배우려는 자세로 비딱하게 앉지 말고 경청하는 눈빛을 가져라]이다.  이 정도는 수강생으로서 매너와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17년 후에 출판하게 될 [자기다움]이라는 책으로 대답했다. 교관(그렇게 불렀다)이 말한 ‘남이 알고 있는 나’가 기준이 되면 우리는 원본으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의 복사본으로 죽어갈 것이다. 어찌 되었든 교관의 질문은 당장 나의 자세를 고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을 자세만 고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 질문으로 나의 세계관을 바꾸는 질문으로 나에게 계속 묻게 되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까?” 이 질문을 그때부터 [자기다움] 책을 쓸 때까지 고민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명료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기에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랜드 그룹을 퇴사하는데 결정적인 질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입사 교육의 기억은 이것뿐이다.




휴먼브랜드 회고록 교육 과정 

2022년 2월 2일에 시작한 유니타스브랜드 시즌2, 휴먼브랜드 과정이 중도에 멈추었다. 

회고록을 쓰다가 잠시 멈췄다. 

이번 교육과정은 ST Unitas에서 교육비를 전액 지원한 프로그램이어서 ‘공짜’였다. 

나는 수업료를 받지 않았기에 정공법으로 나갔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모두 중도에 완주를 포기했다. 

만약에 예전처럼 3개월 수업료로 500만 원을 받았다면 교육과정을 포기했을까?

“1%가 누리는 브랜드 지식을 소외된 99%에게 나눈다”라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 

휴먼브랜드 회고록 쓰기는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가 10개월 동안 배속에서 잉태가 되었던 것처럼, 자신이 휴먼브랜드가 되기까지 최소 10개월을 참으면서 회고록을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쓰는 회고록은 출판할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크로노스 관점의 회고록은 그야말로 자서전이다. 하지만 카이로스와 또 다른 시간대로 쓰는 회고록은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주는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회고록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닌데 … 이 부분을 이해시키는 것이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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