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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20.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7)/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나는 배웠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고 나는 캐주얼 브랜드로 배치받았다. 한일합섬 때는 나를 부서로 인도하는 선배는 의류업은 걸레 장사라고 했고, 두란노의 박성구 대리는 비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침에 일찍 와서 회의실에 대기하고 있는 나에게 인사과 직원은 나의 업무 유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당시에는 MBTI 비슷한 자기 진단 테스트가 있었는데 교육 기간에 내가 받은 것은 아이디어-전략형이었다. 사실 이것은 내가 영업부에는 들어갔지만, 나중에 광고부서로 옮기기 위한 주작이었다. 질문의 결과를 예측해서 내가 스스로 만든 또 다른 나였다.


그렇게 나는 영업 3팀으로 배치받았다. 그 당시에 [소사장]이라는 영업 트렌드가 유행이어서 나는 미금, 구리 그리고 마석 매장을 담당하는 영업부 직원이 되었다. 미금 매장은 여러 매장을 운영해 보았던 경력직 지점장이 있었다. 안경을 쓰고 통통한 그의 목소리는 1타 강사처럼 또렷했다. 구리 매장의 대표는 R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근무했다고 했다. 자신이 서비스에 관해서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도대체 내가 아는 그 R호텔과 맞는지가 항상 궁금했다.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퉁명스러웠다. 구리 매장은 최근에 매장을 오픈한 사람으로 이렇게 옷 가게를 한 경험이 처음인 사장이었다. 그런데 이 3명의 대표가 자신들에게 영업 사원을 신입 사원으로 배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매장 철수를 모의했다고 팀장이 나에게 전해주었다.



팀장은 이 매장은 매출이 나오지 않아서 어차피 철수하고 싶었던 매장이라고 했다. 이 기회에 철수하고 새롭게 세팅하자고 주눅 든 나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의류 가게에서 신입 사원이 담당이 되면 그만큼 회전 상품이나 팔리는 상품을 밀어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팀장은 나에게 쫄지말고 가서 인사하고 철수한다고 하면 서류받고 오라고 말했다.

나는 미금 매장에 가서 인사를 했지만, 미금점장은 신병 다루듯이 대답도 튕기면서 했다. 미금, 구리, 마석 매장 대표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선배들에게 들었기에 처음부터 쫄지는 않았다.

 전직 호텔 지배인 출신인 구리 매장이 가장 매출이 안 좋았다. 답은 너무나 뻔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따지듯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렇게 시작하면 손님은 바로 급히 빠져나갔다. 나는 구리 사장이 손님을 접대하는 이야기를 녹음해두었다. 그리고 구리 사장에게 부탁해서 명동에 있는 레드(지금은 없어지지 않았을까? 여성복 매장에 꼭 방문해보라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명동 레드 매장을 같이 들어가서 상품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구리로 돌아왔고 매장 건너편 카페(2층으로 기억한다)에서 구리 매장주가 손님 접대하는 것과 레드 매장의 점원이 접대하는 것을 들려주었다. 구리 매장주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당황했다. 진돗개가 짖는 목소리로 왈왈 말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번에는 내가 매장에 가서 레드에서 배웠던 몇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손님을 응대했다. 당연히 그날 매출은 최고 매출이 되었다. 우리는 이 방법을 가지고 미금과 마석에도 적용을 했고 매출은 눈에 띄게 좋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팀장은 본부장에게 보고했고 나는 패션 브랜드 사업부에서 나의 성공 사례를 전체 강의를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성공 사례가 되어서 그룹 영업 사원 발표회에서도 발표했다. 그 이후에는 나는 영업부 교육을 맡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인사 교육팀에서 나에게 (주)리드에서 광고 기획자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입사 지원을 할 때는 영업부라고 썼지만 신입 사원 교육 때는 가능하다면 광고 기획을 할 수 있는 리드 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전달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리드의 광고 기획 팀장인 Y 대리를 만나게 되었다. Y 대리는 자신의 지속 부하를 찾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나만 교육부에서 추천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 한 명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두 달 동안 서로 경쟁해서 그중에 한 명이 되는 시스템을 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1990년도에 광고 기획 책을 읽고 5년 만에 그 일을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브랜드 본부장의 L님의 허락으로 나는 (주)리드 커뮤니케이션으로 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엘지애드와 대홍기획이 발표했던 광고 보고서였다. 나에게 그것은 마치 사해 부근 쿰란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한 성경처럼 보였다. 초보 연금술사들이 고대 동양에서 만든 보고서를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을 제안하는 모든 것들이 그림과 글로 그리고 도표와 원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때 현장의 지식을 진짜 보게 되었다.

나는 피라미드 언어를 알아서 읽는 것처럼 그림을 보면서 하나씩 읽어 나갔다. 그때 ‘진짜 보고서’를 처음 보는 기분은 외국에 길을 걷다가 멀리서 또렷하게 모국어가 들리는 감동이었다.

나는 중국 무술 영화에서 비문으로 숨겨진 무술을 굴속에서 연마하는 것처럼 그것을 복사해서 외우다시피 했다. 읽으면서 내가 맡게 된 브랜드에 적용을 하였다. 나는 위조지폐범처럼 똑같이 그리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우게 되었다. 나와 경쟁했던 J는 그룹 홍보실로 스카우트를 해서 이동했다. 그때 Y 대리는 내가 맡게 된 그 자리는 3년 동안 공석이었다고 했다.



축구선수, 피아니스트, 미술가 …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예체능 사람들은 온종일 연습한다. 올림픽 선수 중에 100미터 달리기 선수는 오직 4년 동안 자신의 기록 9초대를 기록하기 위해서 훈련한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총 3가지의 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지시한 대로 또 하나는 내 마음대로 마지막 하나는 절충안으로 보고했다. Y 대리는 이렇게 광고 기획 보고서를 만드는 내가 못마땅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광고의 일은 나의 본능을 그대로 분출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때 직장 선배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실수와 허점이 너무 많이 보였지만 열심히 하려는 나를 긍휼히(?) 여겨서 도움을 준 사람이 너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연애 대상 수상 소감처럼 실명을 하나씩 말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감사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오해받고 싶지 않고 싶다. 진짜로 오해받았다. 나는 책의 서문에 감사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는데 법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이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내 책에 감사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허락 없이 BTS 진의 이름을 쓰는 것과 같다. 이러면 독자들은 내가 BTS와 아는 사이처럼 오해할 수도 있다.


암튼 이런 논리로 이랜드에 퇴사하고 쓴 책에 대해서 압수했고 모두 본사 뒤편 쓰레기 처리장에 한동안 쌓여 전시되어있다가 모두 소각되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 어떤 분은 나와 다른 감정과 기억을 소유할 수 있기에 모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나의 선배들에게는 모두 감사의 큰절을 드리고 싶다.


 회고록을 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에 집중된 기억이다. 나는 회고록을 쓸 때 의도적으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피한다. 사람과 관계된 사건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변론 때문에 부득이 악마(내 멋대로 선과 악을 결정)에게 나의 기억 편집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악마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기다움과 나의 목적이 명확해진다. 마치 영화에서 주연이 상대 악역 배우에 의해서 캐릭터가 드러나는 것처럼, 인생에도 나를 드러나게 하는 캐릭터가 한두 명이 찾아온다.

이곳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딱 한 명이 있었다. 내가 퇴사하게 된 2개의 큰 동기 중에 하나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에 동의한다. 악역도 비슷한 것 같다. 코앞에 있을 때는 원수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깐 스승이었다. 스승이라는 단어를 쓰고 바꾸고 싶었지만, 그가 없었으면 퇴사하지 않았고, 퇴사하지 않았다면 지금 알게 된 것을 영원히 모르고 끝났을 것 같다. 그는 내가 튜브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수영장 안에 들어온 악어이지만 그 덕에 나는 바다를 보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서 회고록을 쓸 때(도)가 있다. 그래야만 나를 더 깊이 파고들 때(도)가 있다. 두 가지만 생각하자. 첫째는 절대로 나의 기억을 변호해서는 안된다. 나와 갈등이 생긴 사람이 나오면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하게 된다. 그렇게 나온 인물을 자기를 변호할 수도 없다. 정말 중요한 사건이라면 찾아가서 만나고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는 것도 좋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굳이 사람을 몰아 내칠 필요가 없다. 사람과 사람의 기억은 항상 왜곡돼 있다. 한 번도 서로 생각이 같은 적을 본 적이 없다. 약간씩 다르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회고록 쓰기가 어려워진다. 또 반복하지만 우리는 자서전을 쓰는 것이 아니라 휴먼 브랜드를 위한 리서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팩트에 묶일 필요는 없다. 일단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바꾸거나 다르게 확인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자서전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연히 그것들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회고록은 자서전보다는 자기 리서치다.

둘째는 사람보다는 사건에 집중하자. 휴먼브랜드 회고록은 다른 사람에 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반응했던 사건에 대해 나의 목적, 의미 그리고 가치를 살피는 것이다. 왜 나는 비슷한 사람들과 갈등을 가질까? 나와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갈등에서 반응하는 나의 기준을 써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사람들과 부딪힌 이야기보다 내 안에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은 

이상과 현실

진실과 거짓

가치와 욕망

필요와 사치

마케팅과 브랜딩 

그리고 

남이 알고 있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순과 괴리 그리고 위선을 배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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