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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15.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4)/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탁본과 거푸집


나는 군대 복무 중에서 광고 관련 책을 읽고 직장과 직업을 광고업으로 선택했다. 그전까지 나는 소설가가 되려고 했다. 소설에 대해서 재능이 있거나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소설가를 선택한 이유를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소설가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중 고등학교 특별활동 선택을 문학반을 지원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하는 특별활동반의 문학 활동도 특별하지 않았다. 반이 달라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노는 그런 시간이었다. 


  내가 소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나에게 우울한 감정을 전이 시켰던 소설가에 끌렸던 것 같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가설은 불운한 청소년기에 나는 헤밍웨이의 허무주의( Nihilism)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헤밍웨이 외에 헤르만 헤세와 같은 염세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 감정을 자위하고 탐닉하며 이해했다.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꿈에서 꿈을 꾸는 또 다른 꿈같은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소설가가 자전적 소설을 쓰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했던 이유는 헤어진 어머니가 내가 쓴 책을 읽고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검정 교복을 입고 다녔던 그 시설, 삼중당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읽었던 기억은 길거리 러시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처럼 내 인생에 강한 향으로만 남아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모르지만 포기한 이유는 분명히 알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없어졌다.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세상을 동경은 했지만, 전업 작가로 소설가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 후에는 두려웠다.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문학반에서는 주로 시를 썼지만, 소설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 만약에 소설가와 시인 중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시]를 택할 것 같다. 그렇다고 시를 좋아하거나 잘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작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면 창조에 대해서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소설을 몇 번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담배로 폐를 망친 후에 담배와 소설을 같이 끊게 되었다.

 그런데 광고 기획 책을 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이 소설가와 시인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카피라이터라는 것을 알았다. 소설가, 시인 그리고 카피라이터는 모두 ‘글’을 사용하는 직업이다. 주관적인 느낌으로 음악에 비유한다면 소설가와 시인은 그야말로 순수 음악을 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이었고, 카피라이터는 영화 OST 같은 노래였다.


 나는 광고기획과 카피라이터라는 일로 나의 직업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군대에서 취업 리서치를 마쳤다. 나는 전역과 동시에 이랜드 그룹 안에 있는 인하우스 에이전시 광고대행사인 [리드 커뮤니케이션]에 카피라이터와 광고 기획자로 지원했다.


2차 최종 면접 시간이었다. 갑자기 불쑥 들어온 어떤 분이 면접자 모두에게 질문을 했다. 나에게 했던 질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조태현 씨가 생각하는 그런 리드는 아닙니다. 회사가 다른 부서로 조태현 씨를 배치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이유는 내가 1,2,3 지망에 모두 리드 커뮤니케이션과 광고 기획을 적었기 때문이다. 

정답은 있었다.


1) 네! 회사의 필요에 따라서 부서에서 일하면서 기회가 생기면 도전하겠습니다.

2) 먼저 회사가 정한 곳에서 성장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사람으로서 저를 증명하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사에서는 직장인이 직장을 ‘자아실현’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혐오하는 기업 문화였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은 경영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이랜드 그룹 공개채용에서 떨어지고 나는 한일합섬 무역 수출 부에 입사했다. 한일합섬에 관해서 지금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용산의 국제빌딩을 사옥으로 가진 중견 기업이었다. 나는 초기에는 강남역에서 일하다가 국제빌딩 19층 [봉제 수출 1과]로 이동했다. 내가 하는 일은 외국 패션 바이어에게 오더를 받아서 옷을 만들어 수출하는 일이다. 미국에서 오더를 받아 실을 구매하고 원단을 짜고 염색해서 옷을 만드는 일이다. 지금 다시 이 일을 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오더를 받아서 제대로 배로 실어서 보낸 적이 없던 것 같다. 바이어는 먼저 샘플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한다. 그 당시 내가 맡았던 바이어는 메이시 백화점과 gap이었다.


 다시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시절(담배 앞에 평등한 사회)이다. 내 책상 위에 재떨이가 있었던 시절이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면서 일했고, 그렇게 담배를 심하게 피우는 것을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였다. 내가 처음 부서에 배치받고 나를 본사 인사과에서 강남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선배가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욕은 잘해?” 누가 나에게 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몇 주 안 되어서 나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욕은 공장에서 일을 진행하기 위한 일종에 제2외국어와 감탄사였다. 이번에는 얼굴도 기억이 나고 입었던 양복도 기억이 나는 선배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옷은 걸레 장사야. 제때 배에 실지 못하면 그냥 걸레가 되는 거지.”

그렇게 된 걸레를 경험했었다. 불량이 난 수출품을 창고에서 3명이 앉아서 쪽가위로 목 라벨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다른 곳으로 취업을 하로 결심했던 것 같다.


 내가 한 일 합섬을 그만둔 이유 중에 하나는 봉제 수출 3 과장이 간암으로 죽은 일이다. 이곳에서는 일요일을 빼고 모두 술을 마셨다. 바이어, 공장 사장, 미국 에이전트 한국 지사, 샘플실까지 내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수십 명의 사람이었고 그들은 일을 술을 먹으면서 해결하려고 했다. 봉제 수출 3 과장의 얼굴도 기억이 난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경상도 아저씨였다. 그냥 회사원처럼 생긴 평범한 그런 사람이었다. 월급날만 되면 몇 사람들과 샘플실로 들어가서 포커를 쳤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와 이야기했던 것은 기억은 없다. 그 과장이 간암으로 죽은 장례식장에서 옆에서 어떤 사람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봉제 수출 과에서 간암으로 죽은 사람이 벌써 3명이야.” 어린 내가 보아도 술과 담배로 이렇게 몸에 부으면 암으로 죽을 것 같았다. 퇴사를 결심해도 1년은 일단 견뎌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를 바로 결정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나는 주임 교육을 위해서 회사 연수원으로 1주일 동안 교육받아야 했다. 하지만 오더가 너무나 많이 밀려있기에 교육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사과에서는 교육받지 않으면 진급이 안 되고, 진급이 안 되면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나는 나의 일을 모두 팀원들에게 맡기고 연수 교육받으러 갔다. 그렇게 교육을 마치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나는 최소한 3건 이상의 사고가 터졌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오더가 순조롭게 더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직장인은 잉여 인간 그리고 대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그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회고록을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연대기적으로 사건 중심으로 쓰는 것이다. 시간별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결과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찾아 쓰는 방법이다. 지금 내가 쓰는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다. 


나는 지금 비영리단체와 사회적 기업을 위한 [사회적 브랜드]를 돕는 비영리 조직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교육과 매칭이고 주제는 자기다움과 브랜드다. 이 회고록의 주제는 왜 내가 [사회적 브랜드]를 돕는 일을 해야만 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입증하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30년 전에 내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억하면서 연결하고 편집하면서 섭리와 운명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누군가 이렇게 하는 것이 목적의 조작造作과 주작做作이라고 폄하할 수 있다. 자기기만이며 자아도취적 해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자기 기억에 대한 악마적 편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해 내가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나도 예전에 똑같은 비난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믿느냐는 자신이 결정하는 문제다. 요즘에는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죽이는 세상은 아니다.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을, 사건보다는 섭리를, 결과보다는 목적을 선택했다. 나의 인생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오늘 그리고 여기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가 휴먼 브랜드 회고록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자기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패턴, 나를 움직이는 가치, 내가 반응하는 영역 그리고 내가 끌리는 그 무엇을 알고 싶다. 예전에는 어디선가 들리는 북소리에 발걸음을 옮겼다면 지금은 마음의 북소리를 따라서 나 자신으로 들어가고 싶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의미를 더하고, 내가 경험한 불쾌하고 역겨운 과거 경험일지라도 지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에 회고록을 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을 죽을 때까지 하기 위해서 과거에 모든 일을 지금의 하는 일의 목적으로 정렬시키는 것이다. 


회고록을 쓰면 내 기억에 뭉쳐있던 목적과 의미가 뚜렷해지고 뾰족해진다.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 태도, 관심 그리고 욕구가 자석의 자성을 따라서 철가루가 붙은 것처럼 연결된다. 

  1000개의 퍼즐 조각이 있다고 치자. 퍼즐만 가지고는 어떤 그림인지 맞추기가 어렵다. 결국에는 맞추겠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고 퍼즐 그림을 보았다면  쉽게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변과 산이 있는 풍경의 퍼즐 그림을 보았다면 어떻게 퍼즐을 맞출까? 일단 파랑과 녹색을 구분할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고 위치와 조각을 끼우면서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회고록을 쓰는 것은 미술의 프로타지(frottage) 기법과 가깝다. 탁본과 비슷하다.  프로타지는 동전이나 나뭇잎 같은 무늬가 있는 표면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파스텔 등으로 문질러 그 형태와 무늬가 종이에서 솟아나게 만드는 하는 방법이다. 


회고록을 쓰는(문지르면)것은 기억을 프로타지하는 것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 이것도 개인적인 편차가 있기에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회고록을 쓰고 읽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기억을 계속 문지른다. 무엇인가 문지르면 닳거나 광이 나는데 나의 경우는 후자이다. 인생의 목적이 드러난다. 


 휴먼브랜드의 회고록 글쓰기는 누차 말하지만 자서전이 ‘절대’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휴먼브랜드의 이유, 발상, 동기, 근거, 경험, 목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지른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수강생 중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회고록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도 못하는 사람도 과반수다. 휴먼브랜드 회고록은 누가 볼 것이기 아니기에 그냥 문지르면 된다. 


필요에 따라서 낙서도 하고, 단어들을 열거해도 좋다. 뭐든 좋으니 계속 기억하고 생각하고 탐색하면 된다. 이렇게 계속하면 과거 뒤에 숨어있는 목적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추할 수 있는 형태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아동기 때부터 부모들이 열심히 문지른 결과로 자신의 뒷면(재능, 관심, 목적)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을 천재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같이 평균 이하의 사람이라면 40대 중반에 희미하게 종이(인생) 밑에 숨어 있는 자기다움을 삶의 시행착오 경험을 통해서 ‘문지르면서’ 목적이 드러난다. 경험 없이는 기억도 없고, 기억이 없으면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20대에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남들과 달리 나에게만 끌리는 모든 것을 일단 해보라고 조언한다. 


  휴먼브랜드 회고록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될 수 있는 브랜드(자기다움의 ONLY 1), 되고 싶은 브랜드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브랜드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결정한 휴먼브랜드를 보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맞추는 것이다. 자신만 보는 글이기에 억지로 짜 맞추면 안 된다. 퍼즐(기억)이 없다고 다른 사건을 끼워 맞추어서도 안된다. 휴먼브랜드 회고록은 “왜 내가 해야만 하는가?”라는 이유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발견을 못했다면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떤 수강생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기억의 끼워 맞추기와 짜 맞추기, 그러니깐 추억의 돌려막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동의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종종 그렇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쓰다 보면 내가 나를 속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수학 문제 풀면 결국에는 답이 나오는 것처럼 회고록을 쓴다고 모두가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회고록이 추억의 돌려막기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 어려움의 가려 막기(shielding)가 될 수 있다. 자기다움과 자기기만은 동전 양면과 같아서 진짜와 가짜의 기준으로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회의적으로 들리겠지만 어쩌면 불가능할 수 있다. 회고록 교육 프로그램을 하면서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시점과 내용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고록이 주는 효과(?)를 경험하는 몇 가지 방법은 있다. 첫 번째는 먼저 자기 자신이 속이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나처럼 회고록을 쓰고 버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회고록을 쓰면 좋다. 누군가가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면 갑자기 기억이 왜곡된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악마의 편집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쓰고 버린다는 마음으로 회고록을 써보자.

 두 번째는 같은 사건을 여러 번 써보는 것이다. 한번 쓴 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쓰고 덮고, 또 쓰고 덮는 것으로 계속 써보는 방법이다. 나중에 한 번에 볼 때 자신이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보는지를 알 수 있다.  




거푸집의 사전 정의는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대로 속이 비어 있어 거기에 쇠붙이를 녹여 붓도록 되어 있는 틀.'이라고 한다. 


회고록을 쓰는 과정을 '탁본/프로타지'라고 한다면 

회고록의 결과는 '휴먼 브랜드의 거푸집/주물'을 만드는 것이다. 휴먼 브랜드의 회고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될 미래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이다. 





20살 ... 이때까지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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