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 Aug 22.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9)/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자를 한글로 따서 이렇게 불렀다.

‘I아이고, M미치고 F환장하겠다.’ 아재 개그가 아니라 진짜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




나는 광고 기획자에서 티니위니라는 브랜드 기획자가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브랜드 기획자라는 새로운 임무를 받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하는 일은 브랜드 리뉴얼 전략을 기획하는 일이다. 그때는 이 모든 변화가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인 줄 알았다.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 광고가 아니라 브랜드 업무를 하고 있다. 그때는 광고 기획자와 카피라이터로서 꿈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인생의 씨앗이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만 식물이 되는 것처럼, 나도 옛 꿈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것이다. 5년 뒤에 나는 광고가 씨앗이고, 브랜드가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IMF 시절에 내가 하는 일은 푸마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의 리뉴얼 보고서를 만들고 경영자에게 발표하는 일이었다. 부서도 리드 커뮤니케이션에서 그룹 마케팅팀으로 이동했다. 그때 처음으로 ‘에너지’라는 TFT team에 합류해서 리서치, 마케팅 그리고 전략을 배우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광고가 경영의 꽃으로 알고 있었다. 브랜드 리뉴얼을 하면서 광고는 꽃이 아니라 꽃에서 나는 여러 향기 중에 하나라는 알게 되었다.


이때의 충격은 마치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으로 알았는데, 나중에는 태양계도 은하계의 주변부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비슷했다. 광고 기획은 브랜드의 범위에서 본다면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달의 공전과도 같았다. 이처럼 IMF가 모든 것을 부수었지만 나에게는 창조적 파괴였다.


  이때 나를 또 한 번 부수려고 나의 상대역이자 내 인생의 악역과 악연이 된 ‘그’가 나타났다. 사고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새롭게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예상하지 못 한 사람과의 갈등은 너무나 힘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배우려는 태도는 좋지 않았지만, 나의 장점 중에 하나는 관찰이다. 관찰과 배우려는 마음은 엄격히 말하면 다르지만, 어느 정도 뭔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만 관찰이 작동된다.

 (엄청나게 돌려서 말을 하는 중이다. 내가 다시 읽어도 모르겠으니 그가 읽어도 모를 것 같다)


 나는 나와 직접적으로 충돌한 사람과 주변 악인(?) 들을 보면서 책을 썼다. [리더를 리더 되게 하는 리더십, 헬퍼십]이다. 나는 그를 관찰하면서 리더 주변에 팔로우로써 팬, 에이전트 그리고 헬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을 몇 년 후에 나는 그때의 기억을 정리해서 [리더십 바이러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랜드에 다니면서도 나는 비영리 단체 경영에 관한 관심과 모임은 계속 이어졌다. 두란노에서 만났던 함께 행사 기획을 하는 코엘 커뮤니케이션 비영리 단체를 운영해서 다른 기관을 돕기도 했다. 그리고 선교단체에서 비즈니스 간사를 하면서 mission for business 모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서 “왜 비영리단체는 경영도 하지 못하고 성장도 하지 못할까?” 항상 의문이었다.


또 한 번 나의 인생의 궤도를 바꿀 책을 보게 되었다. 책 이름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비즈니스 선교]이다. 체코 모라비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청교도들의 비즈니스 이야기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돌이켜 보니 이 책은 나에게 좋은영향 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비영리단체 경영에 관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9년. 어느 날 낮은 울타리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낮은 울타리 대표가 강사로 위촉된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두란노에서 발행한 [예배 기획, 행사 기획] 외 여러 책 때문에 나는 문화기획 세미나 강사로 그곳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아마도 대표가 강사에 대한 점검 미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대표를 만났다. 그는 내가 두란노 간사와 이랜드 그룹 마케팅 직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흥미로워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었다. 나는 행사 기획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에 이런 잡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이곳에 와서 그 일을 같이하면 어떻게냐라고 제안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지금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광고에서 브랜드로 변했지만 하다 보니 좋아했고 잘했다. 후아유, 푸마, 티니위니와 같은 브랜드를 리뉴얼과 론칭을 하면서 나름 상관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비영리 단체 경영 모임을 하면서 문화 기획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도 강렬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아동 사업부 임원이 나의 자리로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사업부 보고서를 검토하고 제안을 달라고 했다. 아동복은 나의 담당이 아니었다. 나는 임원에게 내가 이것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수십 장이 넘는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은 엄청난 리소스가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마사지를 잘하잖아!”

이 말은 내가 경영자의 입맛에 맞게 보고서를 잘 쓴다는 뜻이다. 이것은 누군가에는 칭찬이다. 나도 낮은 울타리에서 제안만 오지 않았다면 폄하가 아니라 칭찬으로 믿고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예전에 교육부 교관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직장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한가요? 남이 알고 있는 내가 중요한가요?”


나는 나의 상대역인 그분과 20여 명의 직원 앞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 경영자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가스 라이팅을 하면서 항상 나에게 새로운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다. 결국 자기 생각을 넣으려는 의도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발표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왜 어떤 것으로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있는 회의장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고객을 위해서 보고서를 만들지 경영자를 위해서 보고서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만 기억한다.


그랬던 나에게 아동복 임원이 와서 나에게 보고서 마사지를 부탁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에 낮은 울타리의 제안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하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이 알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직도 어려운 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퇴사 명분을 만들기 위한 일종에 자기 최면이었다. 결국 나는 두란노에서 이랜드, 이랜드에서 다시 두란노 같은 조직인 낮은 울타리로 이동했다.



로카르도의 법칙


20세기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1877-1966)는 로카르의 교환 법칙을 통해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고 주장했다. 100년이 지난 현대 과학수사에서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회고록을 쓰기 위해 나의 기억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억도 필요하다. 특히 나와 부딪힌 사람에 대해서 만나서 그때 상황에 대해서 솔직히 인터뷰를 할 때 기억나지 않았던 기억과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가까이 왔던 숙명도 만나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만나면 무조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괜히 만나서 악연만 확인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기에 불편했던 사람과 만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것은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먼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리스트를 적어본다. 그중에서 나에게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 아래 질문에 대답해본다.


나는 왜 분노했을까?

나는 왜 그것을 결정했을까?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만남은 숙명이었을까?

그와 좋은 관계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를 통해서 내가 지금 알게 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를 싫어할까?

그 사람이 나와 부딪히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싫어했을까?

만약에 나와 좋은 관계였다면 나는 어떻게 대했을까?


사람에 관한 회고록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너무나’ 솔직하게 써 보는 것이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도 상관없다. 그러나 조건은 딱 하나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쓴 내용을 시간을 두면서 다시 읽어 본다. 일주일 혹은 한 달 간격으로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변명이 아니라 설명해본다. 그럴 때 나 자신이 유치하거나 쪼잔하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메여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회고록은 용서가 목적이 아니라 정리다. 내가 감정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목적을 찾는다. 내가 사람에게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관계 속에 숨겨진 목적에 반응한 것인지를 찾는다. 분명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는 숙명의 흔적이 존재한다.


  악연을 통해서 나에게 남은 흔적은 무엇일까? 나는 유사한 사람에게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나와 그 사람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와의 충돌은 가치관인가? 아니면 이익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떤 것인가?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 기분 나쁜 감정에 뭉개지거나 그냥 덮어서도 안 된다. 흔적을 찾아야 한다. 만약에 악인은 내가 주연이 되기 위한 상대역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악인과 악연을 통해서 남겨진 것은 나의 거부(분노) 반응점이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은 직접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회고록을 쓸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직접 만나거나 메일을 교환했다. 그래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왜 회고록을 쓰는지(우리는 휴먼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를 알려주면 전혀 기억하지 못했거나 의외의 기억을 줄 수 있다. 여기에서도 나의 흔적을 찾는다. 내가 왜 반응했는지 무엇에 기뻐했는지를 확인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휴먼브랜드 회고록(8)/웍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