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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29. 2022

휴먼브랜드 회고록(13)/웍샵

자기다움(2) -활용 편

자기다움과 자기기만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나에게 운동을 강권한 의사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심장을 괴롭히지 않으면 네 심장이 너를 괴롭힐 거야. 일단 자전거 페달을 돌려, 나중에 기계가 네 심장을 돌리지 않게 말이야.” 섬뜩했지만 나는 친구의 말에 순종하여 시간만 되면 자전거를 탄다. 가족력이 있는 협심증을 나는 이렇게 예방 운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협심증이 나에게 불행일까? 협심증 예방을 위해 열심히 운동해서인지 다른 신체 기관들도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는 날은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잘 수 있다. 고혈압이 눈에 띄게 정상화되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반강제적으로' 한 번에 30킬로씩 3번 이상을 자전거를 탄다. 날씨에 따라서 변동은 있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400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있다.


 신체 건강을 위해서 자전거를 탔지만 진짜 좋은 것은 나만의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자전거는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한다. 혼자 자전거를 타면 아무 생각 없이 페달만 밟고 두 시간을 보낸다. 디지털 방해없이 풍경만 보고 가는 것은 마치 컴퓨터 리셋을 하는 시간과 비슷했다. 일상에 디지털 기계를 잠시 강제 리셋을 하고 모든 것을 다시 맞추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자전거 낙상으로 인해서 두 번이나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자전거를 같이 탔던 지인 중에 한 명은 쇄골이 골절되었고, 다른 지인은 골반이 여러 단위로 골절이 되어 골반을 철로 묶는 수술도 받았다. 나는 심장 치료를 위해 자전거를 탔지만, 갈비뼈가 골절되어서 심장에 무리를 준 적도 있었다.


새옹지마 塞翁之馬. 

말 그대로 표현한다면 ‘국경지대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이다. 노인의 말 중에 늙은 말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도망갔다가 시간이 지나 젊은 말들을 끌고 왔다. 노인의 자식 중의 한 명이 끌고 온 말을 탔다가 낙마해서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아들은 전쟁에 징집이 되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다. 요약한다면 인생은 비극이 희극이 되었다가, 희극이 나중에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과는 느낌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이다. 새옹지마는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는 인생의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다.


회고록 쓰기의 어려움은 비극과 희극이 계속 얼굴을 바꾸어가면서 ‘지금도’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나의 경우에) 최소 20년 정도는 지나야만 비극과 희극의 영향권에 벗어나 실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사건의 중력에 벗어나야만 회고하고 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과 마음의 결정을 하지 않은 것들은 ‘회고록’을 쓸 수 없게 한다. 생각할수록 열받게 되니깐 … 나의 경우는 그렇다.


 휴먼 브랜드 교육생들의 회고록 원고를 리뷰할 때 지나치게 변명하거나, 특정 대상인을 증오하는 문장이 나올 때가 있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 아무리 말해도 수정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회고록 수업이 끝날 무렵에 스스로 고치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리뷰하면서 고쳐야 부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이 부분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회고록 작성도 하지만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회고록을 듣고 리뷰하는 교육 시간이 있다. 리뷰 시간에는 자신이 쓴 회고록을 낭독한다. 그때 수강생이 회고록이 아닌 진술서처럼 쓰는 부분이 나온다.


교육생은 자신의 글을 읽다가 울거나 욕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지점이 기억의 염증이 있는 부분이다. 피부에 있는 염증이 완전히 노랗게 변하기 전에 짜면 통증만 가져온다. 처음에는 기억의 염증을 짜는 것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 통점을 계속 누르다가 결국 휴먼 브랜드 회고록 수업을 포기하는 수강생도 많다.


너무 돌려서 말했다. 오늘 쓰는 나의 회고록 부분이 새옹지마 단계이다. 낮은 울타리까지는 인생 해석과 적용을 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아직도 미해결 된 사건이 많다. 몇 가지 사건과 사람을 생각하면 여전히 내 입에서는 욕이 뭉쳐서 가래처럼 나온다. [이때의 삶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어]라고 퉁치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산통이 크다는 것은 해산이 다가온다는 사인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산통에 비유하는 것을 아내가 참 싫어한다. 하지만 비유할 것이 이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Photo by Philippe Montes on Unsplash




2001년. 


가끔 22년 전에 썼던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은 읽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독자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권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독자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쓰시나요?”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라는 책을 쓸 때는 보통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책을 쓰거나 패션인사이트 원고를 정리했다. 그 이후로 글 쓰는 습관이 되어서 항상 6시 전후로 일어난다. 일어나면 책상으로 기어 올라가 8시까지 책을 보거나 아침 일기를 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6시 30분에 일어나서 8시까지 아침 일기를 썼다.


“아 요즘은 6시에서 6시 30분에 일어납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실망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나이가 들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죠. 어 … 그런데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지 않나요?”


새벽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잠이 없어진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수년 동안 수면제와 멜라토닌을 복용하고 있다. 무조건 11시 정각에 자면 평균적으로 3번은 깨는 것 같다. 아주 심하면 12번 이상을 깼다. 한동안 자낙스 수면제를 하루 걸러서 복용했는데 부작용(흥분, 증가된 근육 경직, 수면장애, 환각과 같은 모순 반응 및 초조, 분노, 자극 과민과 같은 다른 이상행동 반응 및 공격적/적대적 행동)이 나타났다. 특히 아내의 말로는 새벽에 거실을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 


지금은 멜라토닌을 먹으면서 겨울 잠들고 약에 취해 어렵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처음 만난 독자에게 설명할 수 없다. 독자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저자가 이제는 늦잠을 자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당황할 뿐이다. 나는 그 책에 새벽이라는 시간이 지구 자전적 새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이 새벽이라고 분명히 적었는데 그런 구절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모라비안 바젤의 대표이사를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에 주인공가면을 썼기 때문이다. 직원 모두가 나를 조태현이 아니라 권민으로 회사는 경영하기를 원했다. 이런 징조는 낮은 울타리에서 먼저 나왔다. H 간사는 춘천 CBS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내가 썼던 [헬퍼십]을 읽고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결심해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헬퍼십을 읽고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마침 간사 자리가 있어서 그를 채용했다. 그 이후에 나는 항상 H를 의식하는 본부장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 책이 출간되었기에 나는 조태현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 되었다. 주변 사람은 나의 가치관과 사고 수준을 책에 나와 있는 권민과 동일시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즐겼다. 나중에서야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패션 관련 기사를 쓰는 권민이라는 사람의 글은 ‘업계 소식’을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기 개발서에 나온 권민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준과 가치를 설파하는 또 다른 권민이었다. 내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 나를 삼켜버렸다. 물론 이런 실수가 14년이 지나서 휴먼 브랜드라는 콘셉트를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런 권민이라는 가면을 쓴 상태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과 창업했다. 우리에게 최초의 오더를 준 사람들은 모두 패션인사이트 정인기 부장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이다. 나의 컨설팅 보고서 폴더에 있는 브랜드 이름은 다음과 같다. EXR, J.ESTINA, 카세텔바작, 애플 골프장, 국민은행 ,다음 리뉴얼, 덕평 휴게소, 루이까또즈,마코스, 닭실마을, MCM, 카파, 컨버스, 잭니클라우스, 코오롱스포츠, 엘로드, D2K, M Corset, Vness카스피. 월튼, 아이겐포스트, 써어드데이 아일랜드, 스포츠 리플레이 등 수십 개의 브랜드 론칭과 리뉴얼했다. 인원이 많을 때는 20명 넘은 컨설턴트와 일했다.


 이랜드에서 배운 현장 지식과 책을 통해서 배운 일반 지식 그리고 패션인사이트 에디터로 글을 쓰면서 조사했던 방대한 주변 지식이 패션 컨설턴트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야말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쪽팔려서 말도 못 하겠지만 패션계의 매켄지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이 꺼진 무대 뒤편을 보는 계기가 생겼다.


몸이 너무 아팠고 병원에 진단받았다. 결과적으로 오진이지만 나는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루푸스 판정을 받았다. 루푸스는 우리 몸을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면역세포들이 거꾸로 우리 몸을 공격하여 염증을 일으켜 장기의 손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이병은 난치성 중증질환으로 남성이 걸리는 경우에는 예후가 좋지 않다.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아내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쉬라고 했다. 의사도 현재의 상태로서는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회사는 코오롱 그룹에 약 3개의 브랜드를 컨설팅하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이 사실을 파트너들에게 알렸다. 파트너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내 몸을 걱정했지만 그다음 말은 ‘그러면 컨설팅을 어떻게 진행하죠?’였다. 그 누구도 나에게 당장 일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더의 진행이었고 현재 회사의 위치였다. 몇 달이 지나 병원에서는 루푸스가 아닌 면역성 저하로 인한 일시적인 감염이라고 통보가 왔다. 나는 그 사실을 파트너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이 궁금했지만 결국 그들은 내가 오진이라는 것을 말해줄 때까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누구도 병들어 가는 나에게 회사를 떠나 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당장 회사를 접어 버리고 싶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를 세울 때 40세에 대표이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처럼 약속했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권민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영리 조직이었고 그들의 목적은 나와 달랐으며 우리는 처음부터 동업자였기 때문이다. 동역자라고 서로 속이면서 동반자처럼 말하다가 ‘결국 돈’에 의해서 관계된 그렇고 그런 동업자였을 뿐이다.


 “왜 권민 대표님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내가 얼마나 너를 아끼고 키웠는데 그런 행동을 하냐?’라는 식으로 말합니까?”

 “우리 중에 일하다가 죽으면 가족을 책임집시다. 우리는 동지니깐.”


지금도 그들이 말한 이야기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권민] 놀이에 빠져있어서 모두가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비전과 가치는 정신적인 성감대가 되어서 자기기만에 취해있는 기괴한 쾌락주의자가 되었다. 마치 개그맨들이 개그 짜고 나와 방금 일어난 일처럼 행동하고 관객을 웃기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라비안을 만들어서 서로 이야기만 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기뻐했다. 그냥 개그를 한 것이다.


 이렇게 상처받은 나를 치유한 것은 [루푸스 환자]들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루푸스 카페에 가입해서 루푸스 환자로서 살았다. 카페에 모인 루푸스 환자와 가족들은 나를 환대했다. 나에게 하루에 한 번씩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다. 그들은 핀란드와 스웨덴 왕립 병원에서 발표한 루푸스 보고서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미국 병원에서 치료받은 루푸스 진료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정보를 나누면서 서로 독려했다.


나는 권민이라는 가짜를 보내고 루푸스 환자라는 진짜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비영리 단체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함께 죽음을 맞서는 전우들이었다.

 나의 병이 오진이라고 밝혀졌지만, 루푸스 카페를 나올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내가 오진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하고 창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올 수 없었던 더 큰 이유는 그들의 사랑과 관계가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가 난파되어 물에 떠 있는 생존자가 서로 몸을 비비면서 저체온증을 막는 것처럼 아주 가깝게 있으면서 서로의 호흡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런 관심을 더 받고 싶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결국 탈퇴했다. 그러나 카페지기는 계속 메일을 보내면서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분(카페 관리자)의 메일은 그렇게 오다가 갑자기 끊겼다. 카페지기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가 치유되었는지 아니면 악화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종달새 둥지에 있는 뻐꾸기 같은 나에게 계속 정보를 주면서 안부를 묻고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해서 항상 50페이지 넘는 자료를 주었던 사람이었다. 나의 상태를 물어보면서 여러 자료와 사진을 전해주면서 그 어떤 의사보다도 나의 루푸스의 진심이었다.


 내가 돕고 싶은 비영리단체의 원형은 이런 것이었다. 탈퇴 이후에 나는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고 정규적으로 오는 메일도 몇 달 뒤부터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받았던 동질감과 공동체 의식은 나에게 문신처럼 심장에 그려졌다. 더 이상 비영리단체에 대한 원형을 처음 잡았던 [모라비아 교도]로 삼고 있지 않다. 참고로 모라비아교도들도 결국에는 재산 싸움으로 법정 싸움을 하다가 조직이 와해되면서 수많은 조직들이 그렇게 되듯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Photo by Angel Luciano on Unsplash




모라비안바젤을 창업하지 않았다면

건강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건강이 나쁘지 않았다면 루푸스 오진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루푸스 오진을 받지 않았다면 루푸스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루푸스(lupus)는 늑대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질병은 늑대에 물린 듯 보이는 빨간 발진을 의미한다. ‘자가면역 질환(自家免疫疾患, autoimmune disease)은 정상적인 화학 물질과 신체의 일부 세포들에 대해 면역계가 건강한 세포를 해롭게 보고 그들을 공격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조태현에게 권민은 일종에 자가 면역 질환이었다. 조태현에게 글만 쓰는 패션인사이트 권민은 자가 통제가 가능했다. 자아가 분열되거나 혼란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 나라에 사는 ‘자칭’ 거인으로서 권민은 조태현이 감당할 수 없었다. 분명 권민은 내 안에 존재할 수도 있었던 가치와 목적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조태현에게는 적이었다. 결국 나는 7년 동안 권민 흉내를 내는 조태현의 삶을 살았다.


그것보다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을 쓰지 않았다면?

[패션인사이트]에서 권민 에디터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새옹지마가 아닌 권민지마(권민의 말)또한 계속 그 모습이 바뀌었다.


휴먼브랜드 교육 과정에서 수강생에게 내가 나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회고록을 쓰게 한다. 이 말을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다.


아마 체로키 인디언의 늑대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가 살고 있어. 검은 늑대와 하얀 늑대는 매일 싸우지. 검은 늑대는 화, 질투, 후회, 분노,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하얀 늑대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함, 친절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이 두 마리의 늑대는 항상 으르렁거리지. 너는 이 늑대들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 같니?" 그러자 아이가 "하얀 늑대가 이기면 좋을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다."라고 말했다.


권민은 항상 졌다. 그렇다고 조태현이 이긴 것도 아니다.

내 안에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보다 더 무서운 늑대가 있었다.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가 싸울 때 항상 먹이를 가져가는 것은 회색 늑대였다.


휴먼 브랜드 회고록을 쓰는 이유는 

회색 늑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식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 ..

하얀 털을 가진 늑대, 

점정 털을 가진 늑대 그리고 회색 털을 가진 늑대 ... 모두 적이 아니라 같은 늑대 무리이다.

모두 내 안에 있는 늑대 무리이다. 





나도 죽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

내가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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