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사느냐, 자기답게 죽느냐
인생 2막의 햄릿(3-1)
“사느냐 죽느냐”를 넘어 “나답게 사느냐”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3막 1장에 이르러 그 유명한 독백이 등장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흔히 은퇴 후의 삶을 인생의 ‘2막’이라 부른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 시기를 단정 지어 ‘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중장년의 시간은 매년 새로운 막이 오르는 무대와 같아서, 예상치 못한 전개와 절정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직장에서의 은퇴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장의 마무리가 아니라, 어쩌면 예정보다 이른 ‘조퇴’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은퇴자는 직장을 나온 후에도 여전히 ‘사느냐 죽느냐’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 서고, 결국 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게 된다.
인생 1막에서 우리 직장인들은 무대의 중심을 차지한 주연이었다. 그러나 은퇴와 함께 명함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내 인생에서조차 조연, 아니 무대 뒤편의 ‘배경 연기자(Background performer)’가 된 듯한 소외감을 느낀다. 왜 이런 박탈감이 찾아올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은퇴 이후를 연기할 ‘대본’이 없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서 있지만 대사가 없는 배우, 그것이 준비 없는 은퇴자의 초상이다.
우리는 그동안 직업, 직책, 직위로 자신을 증명해 왔다. 그 타이틀이 사라진 후, 우리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소개해야 할까. ‘임시직’이나 ‘은퇴자’라는 단어 말고, 나를 설명할 언어가 있는가? 이 질문은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라는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직업적 타이틀을 벗어던진 후,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인생 2막을 여는 가장 엄중한 독백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숨은 쉬고 있으되 죽은 듯 사는 사람들이 있다. 심장은 뛰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자아의 기능이 멈춘 상태다.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은 삶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역할과 나의 정체성을 동일시했던 사람들은 일이 사라지는 순간,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해진다. 우리는 일이 없어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직함 없이도 스스로 만족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주변에는 평생 다 쓰지 못할 만큼 넉넉한 노후 자금을 가진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도 똑같이 묻는다. 하지만 평생 ‘일하는 것’과 ‘돈 버는 것’을 삶의 전부로 여겨온 이들은 이 질문 앞에서 당혹해한다. 돈은 교환의 수단일 뿐, 존재의 증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면, 그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돈이 없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기에, 그들은 대답 대신 침묵하거나 회피를 택한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삶의 본질적인 방향이 보인다. 이는 당장의 생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앞으로 남은 40년의 시간을 ‘생존’이 아닌 ‘실존’으로 채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장 고독한 순간에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는가?”
매일 태양과 함께 내 인생의 막은 다시 오른다. 남은 시간을 원본(주연)으로 살 것인가, 복사본(지나가는 행인)으로 살 것인가. 내가 쓴 대본대로 움직일 것인가, 타인이 쥐여준 대본대로 움직일 것인가. 그것이 진짜 문제다.
이 질문은 결국 삶을 넘어 죽음의 태도까지 결정짓는다. 2025년 12월 19일, 배우 윤석화가 뇌종양 투병 끝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루를 살아도 윤석화답게 살고, 윤석화답게 죽겠다.”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서 던진 질문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었다. ‘자기답게 사느냐, 자기답게 죽느냐’였다. 햄릿의 고뇌가 인생을 뒤흔들 때, 우리는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 쥐어야 한다.
“나는 오늘, 자기답게 살아내고 있는가.”
one more thing
[2026년 1월 중장년의 나답게 살기 위한 uni time을 런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