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다*

나이를 뱉다

by 권민

아이에게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고슬고슬한 밥과 달리 떡국은 식감이 미끌거린다. 처음 떡국을 먹는 아이는 그 느낌을 싫어했고, 나는 숟가락으로 비행기 쇼를 하며 “이걸 먹어야 형아가 되고 유치원에 갈 수 있어”라고 달래곤 했다.


나 역시 어릴 적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때는 정말로 떡국이 나이를 먹게 해주는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Ambrosia)인 줄 알았다. 가래떡 같은 긴 시간을 잘게 썰어 놓은 것처럼, 떡국 한 숟가락은 시간의 조각처럼 보였다. 그 숟가락에 시간을 얹어 한 그릇을 비우면, 시간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나를 한 단계 올려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떡국은 일종의 새해 의식이었고,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이 되는 통과의례 같았다. 물론 떡국을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이가 들었다기보다 ‘나이를 먹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말은 때로 거칠게 튀어나온다. 길거리 말싸움에서 “나이는 어디로 처먹었냐?”라는 비난으로 들릴 때가 있다. 무례한 말이지만 그 무례함 속에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가 숨어 있다. 나이를 먹었으면 그만큼 성숙해야 한다는 기대, 그 세월을 버티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그 말의 뼈대다. 그래서인지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람됨’의 의무처럼 다가온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의무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산 결과가 곧 성숙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두 갈래 길 앞에 더 자주 선다. 하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굳어지는 노인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통과하며 성숙해가는 어른이 되는 길이다. 둘은 같은 방향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나이는 ‘섭취’가 아니라 ‘습득’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앞세우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에 걸맞은 태도를 익히는 훈련이다.


떡국은 해를 표시해 주는 음식이지, 사람을 노인에서 어른으로 바꿔 주는 암브로시아는 아니다. 달력은 한 장 넘어가지만, 삶은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술이 사람을 마시는 때가 있다. 그때 사람은 취한 채로 자기 자신을 잃고, 자신이 되지 못한 채로 망가진다. 시간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시간을 통제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시간이 나를 삼켜버릴 때가 있다. 그 순간 사람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로 그저 나이만 가진 노인이 되어 버린다.


나이를 먹을수록 필요한 것은 고집이 아니라 조절이고, 충동이 아니라 절제다. 새해는 한 살을 더하는 날이 아니라, 시간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어른의 기술을 다시 연습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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