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명함부터 다시 만든다.

직책이 아니라 새 이름으로

by 권민

중장년 자기다움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이 끝날 때 수료증을 주지 않는다. 대신 교육이 시작과 함께 자기 명함을 기획하고, 교육이 끝날 무렵 그것을 완성한다.


50대에 퇴직하거나 은퇴한 사람들에게 “명함부터 만들자”고 하면 대개 의아해한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명함부터 만들라니, 순서가 거꾸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은퇴 후의 명함은 조직에서 쓰던 명함과 결이 다르다. 과거의 명함이 “내가 조직에서 누구인가”를 알리는 도구였다면, 은퇴 후의 명함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드러내는 도구다. 과거를 증명하는 종이가 아니라, 미래를 선언하는 종이다.


퇴직을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사원증을 반납할 때, 그리고 ‘명함이 없어졌을 때’다. 처음 만난 사람과 가장 어색한 순간은 명함 교환이다. 요즘은 디지털 명함도 있고 에어드롭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종이 명함이 먼저 오간다. 그런데 내 손에 명함이 없으면 잘못한 일도 아닌데 묘하게 뒤처진 느낌이 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지?”라는 질문이 몸에서 먼저 올라온다.


우리나라에서 직함은 이름처럼 불린다. 직함이 나를 대신해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함을 잃는 상실감은 이름을 잃는 것처럼 크게 다가온다.


직함은 일종의 갑옷이다. 나를 보호하고, 때로는 상대를 제압한다. 퇴직 후 불안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라게가 껍데기 없이 불안해하듯, 사람도 직함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은퇴 이후에도 이전 직장 명함을 지갑에 넣어 두는 사람이 있다. 그 종이는 연락처라기보다 “내가 누구였는지”를 붙잡아 주는 마지막 손잡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지금의 나로 설 수 있다.


그래서 교육 첫 시간에 명함 만들기에 착수한다. 이번에 만드는 명함은 ‘아무나 갖고 있는 명함’이 아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직책을 적는 명함이다.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은퇴 후의 직책은 작위나 직급이 아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까운 직책이다.


부장, 차장, 과장 같은 호칭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먼저 말해 준다면, 은퇴 후 명함은 방향이 반대다. “나는 어디 있었나”가 아니라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적는다. 그 한 줄이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첫 기둥이 된다.


예를 들어 ‘부장’ 대신 ‘연결하는 사람’, ‘돕는 사람’, ‘설계하는 사람’ 같은 직책을 적어 본다. 직급을 내려놓는 순간, 역할이 보이고 목적이 보인다.


퇴직 후에 필요한 것은 “이전 명함을 버리는 용기”만이 아니다. “새 명함을 만드는 결단”이다.


‘명사’의 직함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동사’로,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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