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인간인가?
“저는 조림인간입니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 하는 척했습니다.”(최강록)
최근에 방영한 〈흑백요리사 2〉에서 우승한 최강록 셰프가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소개하며 한 말이다.
사실 ‘척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다.
영화에서 죽는 척, 맛있는 척, 우는 척을 어설프게 하면 ‘발 연기’가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상대가 그 ‘척’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은 유치한 잘난 척으로 보이기 쉽다.
다만 이 글에서 말하는 ‘~인 척’은 속이기 위한 위장이 아니다. ‘되기 위해 먼저 사는 훈련’이다.
그래서 나는 ‘척’을 두 가지로 나눈다.
•속이기 위한 척: 인상관리와 위장
•되기 위한 척: 반복과 습관의 훈련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휴먼브랜드가 자칫 ‘포장 기술’로 오해되는 순간 곧바로 무너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휴먼브랜드에도 ‘인 척하기’를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브랜드인 척 포장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의 관점과 가치가 먼저 내 삶이 되는 것, 그것이 휴먼 브랜드(브랜드 인간)다.
예를 들어 환경친화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웹사이트에서 고객에게 설명하고 있다면,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어떤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된다.
파타고니아 회장의 주말 캠핑과 나이키 회장의 주말 캠핑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에서 차이가 난다.
예컨대 캠핑에서조차 ‘더 멋진 장비를 소유하는 즐거움’을 좇는지, ‘덜 남기는 방식’을 선택하는지, 이동·소비·처리의 전 과정을 얼마나 불편함으로 감수하는지에서 갈린다.
그 차이는 브랜드가 달라서가 아니라, 가치와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휴먼브랜드란 브랜드의 가치와 기준대로 브랜드처럼 살아내는 인간을 말한다.
유명한 브랜드인 척하며 살아가는 트릭이 아니다.
브랜드인 척은 포장이고, 브랜드가 되기 위한 인 척은 습관의 훈련이다.
휴먼브랜드의 핵심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 먼저 사는 삶’이 결국 ‘브랜드로 사는 삶’으로 굳어지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인 척’하는 방법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문장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윌 듀런트(Will Durant)의 정리로 전해지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인 척’이 위험해지는 지점과 유익해지는 지점은 여기서 갈린다. 무엇을 반복하느냐가 곧 내가 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도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 Elephant, 1936)』라는 에세이에서
“가면을 오래 쓰다 보면, 얼굴은 그 가면에 맞춰 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가면은 위험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얼굴로 굳어질지 선택하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오웰이 말한 가면은 ‘속이기’라기보다, 역할과 기대에 맞추려는 수행이 결국 사람을 바꿔 버리는 과정을 경고한다.
〈흑백요리사 1〉에서는 에드워드 리가 최종 경쟁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비빔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비빔밥처럼 많은 문화가 있어요.
한국, 미국, 다른 나라 요리 공부… 솔직히 말하면 제가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고생했어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도 두 사람은 ‘무슨 인간’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정체성의 혼란을 견디기 위해, 자기를 설명할 단어를 꺼낸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간인가.
최강록 셰프는 타인에 의해 불린 별명으로 자신을 조림인간이라 했고,
에드워드 리 셰프는 자신 안과 밖의 수많은 조건 때문에 자신을 비빔인간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정의할 수 없다면 정의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의하지 않은 채 반복해 온 습관이 이미 나를 정의해 버린 것일까.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스스로 어떤 인간으로 반복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흉내를 내다가 남의 얼굴로 잘 사는 척하다 끝나고 만다.
나는 내가 반복하는 것으로 이미 정의되어 있다. 이제는 그 정의를 선택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