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반응이 아니라 자기다움의 탐침봉이다
“감사는 어떻게 ‘나’를 드러내는가요?”
세미나에서 만난 독자 K님은 내가 쓴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장 핵심을 찌르는 질문 하나를 꺼냈다. 나는 질문을 업으로 삼아 편집장으로 살아왔기에, 어떤 질문은 대답을 구하는 말이 아니라 생각의 뿌리를 찾기 위해 땅속을 더듬는 탐침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3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녁에 일기를 쓸 때 감사 제목을 최소 다섯 개 씁니다. 그러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K님도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순간은 대개 요란하지 않다. 너무 작아서 자주 놓친다. 그래서 나는 감사로 그 변화를 더듬는다. 감사는 운명의 ‘발자국’을 따라 달려가는 추격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에 남은 의미의 흔적을 확인하는 마음의 시력이다. 그렇게 감사는 내 인생의 의미와 ‘나’를 찾게 해 준다.
감사는 그저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자동 반응이 아니다. 감사는 의도를 가진 관찰력이다. 방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적용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먼저 감사한 일에 대해 왜 감사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감사 제목 하나에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쯤 파고들면, 내가 인생을 누리는 자리가 어디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오늘 저녁 일기를 쓰면서 북 콘서트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할 것이다.
왜?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다시 묻는 자리가 열렸기 때문이다.
왜? 그 질문을 품게 한 작고 결정적인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던 병가 휴직 경험’이 내게 멈춤의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왜? 그때 읽었던 책들이 내 안의 언어를 다시 세워 주었기 때문이다.
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건이 결국 내가 무엇을 붙잡고 사는지를 찾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왜?’는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의 표면을 한 겹씩 더듬어 걷어 내며 본질로 파고든다.
그러나 감사의 이유를 찾는 일은 이런 말잇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일주일, 한 달, 분기 단위로 다시 읽어 보면, 내 감사가 유독 민감하게 닿는 어떤 ‘결’을 발견하게 된다. 감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다. 달이 해의 빛을 받아 밤을 비추듯, 감사는 무엇인가를 비춰 준다. 감사의 건너편 공간에서, 감사함을 인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감사는 그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록된 감사를 다시 읽는 순간, 감사는 ‘되새김’이 된다. 그 되새김이 쌓일수록 나는 내가 무엇을 붙잡고 사는지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이처럼 감사는 내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고, 무엇을 되살리는지를 알려 준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드러난다. 감사 리스트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에 반응하는 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는 반응이 아니라 자기다움의 탐침봉이다. 감사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내 삶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