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알고 나는 모르는 나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by 권민

아이돌 가수들이 방금 무대에서 했던 춤과 노래를 모니터 화면으로 다시 보며 자신들의 안무와 동선을 확인하는 모습을 본다. 서로의 손 높이와 동작도 체크하면서, 준비한 것이 왜 현장에서 흐트러졌는지까지 즉시 파악한다. 영화를 찍는 배우들도 감독과 스태프가 모여 방금 촬영한 장면을 다시 확인하면서 문제점을 짚고 개선점을 찾는다. 스포츠 선수들도 자신들이 했던 경기를 다시 보며 실수의 원인과 보완점을 정리한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일상을 모니터링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일하지만, 그 일이 어떤 표정과 말투와 태도로 수행되고 있는지 ‘재생’해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과물은 평가받지만 과정은 기록되지 않고, 과정은 쌓이지만 ‘자기 인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래서 직장에는 늘 맹점이 생긴다. 내가 나를 아는 영역과, 타인이 나를 보는 영역 사이에 커다란 틈이 생긴다.


자기다움 교육 시간에는 그 틈을 줄이기 위해 ‘나는 모르고 남이 아는 나’를 파악하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 피드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모든 과정이 끝난 뒤, 무기명으로 평가해 주는 피드백이고, 또 하나는 회의 시간과 협업 시간에 합의하에 촬영한 영상을 참여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두 방식 모두 목적은 같다. “잘했는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는가”를 스스로 보게 하려는 것이다.


먼저 독서 모임과 주제 발표 시간에 전체 진행 상황을 촬영한다. 각자가 토론하는 모습, 상대와 의견을 나누는 모습,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이 그대로 영상에 담긴다. 누가 어떤 말투로 말하는지, 어떤 순간에 끼어드는지, 어떤 표정과 태도로 반응하는지, 그리고 내가 내 생각을 어떻게 나누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된다. 모임이 끝난 뒤 그 영상을 각자에게 나누어 준다. 말 그대로 ‘자기 일상의 리플레이’다.


반응이 어떨까. 밀림에 거울을 설치해 두었더니 야생 동물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과 비슷하다. 자기다움 피드백도 비슷하다. 거울 효과를 통해 나는 지금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치 않던 모습으로 굳어지고 있는지를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교육 중간에 초반 단계에서 그만두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생각보다 낯설고, 그 낯섦이 생각보다 아프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자기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한다. 상대의 말을 자르고, 무시하고, 반박부터 하고, 웃기려고 하고, 딴청을 부리는 자기 모습을 화면으로 직면하기 때문이다. 영상은 변명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라는 말이, 화면 속 장면 앞에서 힘을 잃는다. 여기에 더해 지난 2~3개월 동안 함께 모임을 가졌던 동료들의 의견이 담긴 평가서도 함께 나누어 준다. 그 평가는 어디서도 쉽게 듣기 힘든, 솔직하고 냉정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임에서 자기 말만 하고 있다.”

“특정 A에 대해서 반감을 품고 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자른다.”

“대화와 소통이 어렵다.”

“미팅 중에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다.”


이 피드백이 가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장년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적나라한 평가를 정면으로 받는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우리는 직급과 역할 뒤에 숨어서 평가를 피해 왔다. 평가를 받아도 ‘업무 결과’에 대한 평가였지, ‘관계 방식’에 대한 평가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 피드백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건드린다.


매일 거울로 보는 자기 얼굴은 익숙하지만, 녹음해서 들어본 자기 목소리가 낯설게 들리는 것처럼 남이 알고 있는 나에 대한 낯선 평가는 적잖이 상처가 되고, 많은 사람이 창피해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상처를 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처참할 정도의 자괴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오히려 반대다. 자괴감의 늪에 빠지기 전에,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습관을 발견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모니터링은 벌이 아니라, 리셋을 위한 거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 과거의 경험에 더 의지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경험이 학습을 대신하고, 경험의 돌려막기로 오늘을 버티게 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늙어감의 한 징후일 수 있다. 어른은 경험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른에게 필요한 배움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리셋에 가깝다. 리셋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쌓아온 것 가운데 굳어버린 습관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직장에서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가 직급과 직위로 포장된다.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나’는 대개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다. 문제는 ‘나는 모르고 남만 아는 나’다. 그 영역은 아무도 말해 주지 않고, 설령 말해 주어도 우리는 듣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형편없던 자신과 마주할 때 충격은 크다. 그러나 그 충격이야말로 어른이 다시 태어나는 출발점이 된다.

나이가 지혜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신화에 가깝다. 과학은 사람들이 나이 들수록 더 현명해진다는 사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신호가 더 많다. 그래서 어른의 훈련은 ‘남이 알고 내가 모르는 나’를 경계하며, 더 조심스럽게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데서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