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인생 전환기

혼자 건너면 방황이 되고, 함께 건너면 통과의례가 완성된다.

by 권민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은 비극이 아니라 신호다. 인생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시 ‘초심자’가 되라고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대개 몸이 약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의학적으로는 전두엽 기능 저하나 인지 기능 변화 같은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나는 이 신호를 다른 방향으로 읽고 싶다. 늙는다는 것은 퇴화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거대한 경계 앞에서, 무거운 역할을 내려놓고 새로운 정체성을 배우기 위해 다시 초심자의 상태로 돌아가는 사건이다. 이것은 굴욕이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인류학자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의 통과의례(Rite of Passage)다. 그는 전환기를 세 단계로 설명했다.

•분리 단계: 직함과 조직의 옷을 벗는 시기다. 기존 역할과 소속에서 떨어져 나온다.

•전환 단계(과도기): 가장 위험한 시기다. 과거의 나는 끝났지만 새로운 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익숙한 세계가 사라지고 낯선 세계가 시작돼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훈련과 동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합 단계: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고 다시 사회와 연결되는 시기다. 인생이 이전과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의사가 암 환자에게 암의 전이를 설명한 뒤 다음 치료 방법을 안내하듯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이 중장년의 현실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은퇴를 이 세 단계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부분 은퇴를 “정년이 왔으니 떠난다”는 사건으로만 처리한다. 떠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리 단계에서는 상실감만 겪고, 전환 단계에서는 길을 잃고 방황한다. 통합 단계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준비가 열어주는 문이다.


은퇴가 위기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퇴는 쉼이 아니라 정체성의 공백으로 찾아온다.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이 서 있던 땅이 꺼지는 경험을 한다. 사람은 일 자체보다 역할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그러나 이 구조를 이해하면 은퇴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통과의례다. 통과의례는 본래 다음 삶으로 넘어가기 위한 의식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듯 은퇴를 준비하면, 은퇴는 불행이 아니라 전환의 축제가 된다. 우리는 결혼식은 몇 달씩 준비하면서, 왜 인생 2막을 여는 은퇴식은 준비하지 않을까?


은퇴를 변화(變化)로만 받아들이면 외부 환경에 끌려다니게 된다. 하지만 은퇴를 변환(變換)으로 설계하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변환은 겉모습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삶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수입원, 관계, 하루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변환의 시작이다.


이제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은 축복이 된다. 늙는다는 것은 무력해지는 일이 아니라, 아이처럼 다시 배우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다음 인생으로 넘어간다.

은퇴는 시간표가 아니라 태도다. 준비하면 통합으로 이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과도기에서 조난당한다. 은퇴는 장례식의 예행연습이 아니라 두 번째 삶의 데뷔전이어야 한다.


전환기에는 훈련과 동료가 필요하다. 혼자 건너면 방황이 되지만 함께 건너면 성장의 의례가 된다. 은퇴를 위기가 아니라 변환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연합이 있다. 유니타스라이프(unitaslife.net)다. 이곳에서 인생의 통과의례를 함께 지나가보자.


My purpose comes first, I am second.

자기답게 사는 두 번째 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