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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국 Jun 22. 2019

LUSH, NO SNS!

'NO SNS'를 선언한 러쉬의 비밀 (에스콰이어)

제가 에스콰이어 6월호에 기고한 '러쉬'에 관한 글을 더 많은 분들이 읽기 편하도록 브런치에도 공유드립니다. (editor 김은희, writer 한성국)

'NO SNS'를 선언한 러쉬의 비밀

2017년, 2018년 두 차례 런던을 다녀오면서 늘 먼저 가게 되는 브랜드 매장은 러쉬였다. 수많은 브랜드가 있는 거리지만, 러쉬만의 특별한 향 때문에 근처에 러쉬 매장이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미 후각으로 브랜드를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러쉬 매장으로 간 후 눈으로 보게 되는 다양한 제품들은 아무것도 포장되어 있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맛있게 생긴 치즈처럼 생긴 제품을 호기심에 만지게 되면 당연히 손에 제품이 묻게 되는데 매장엔 친절하게도 사용한 제품을 씻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어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아마 러쉬를 방문했던 소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2017년 런던에서

이런 경험은 런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러쉬 매장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러쉬 매장에서든 동일한 브랜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브랜딩이 잘 되어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완벽해 보이는 브랜딩을 보여주는 러쉬가 지난 4월 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운영을 종료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뷰티 브랜드, 아니 분야 불문 요즘 브랜드로서는 대단히 큰 결정이다. 러쉬 영국 법인 인스타그램은 약 58만 명, 페이스북은 약 42만 명, 트위터는 약 20만 명으로 총 12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러쉬 영국 법인은 브랜드의 SNS 운영은 종료하지만 소비자들에게 태그 #LushCommunity를 제안했다. 러쉬에 관해 포스팅할 때 이 태그를 사용한다면 러쉬에 대한 정보가 모일 것이고,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러쉬는 SNS에서 자생해나갈 것이다. 한편 러쉬 미국 지사는 채널을 계속 운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 본사의 선언은 다른 뷰티 브랜드들이 봤을 때 상당히 충격적인 행보다. 사실, 영국과 한국의 러쉬를 모두 경험한 필자의 입장에선 러쉬가 내린 이러한 결정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을 맡고,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사용해봐야 비로소 러쉬라는 브랜드를 접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SNS 채널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만으로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러쉬의 매장이다. 탈 SNS를 선언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장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일 것이며, 수많은 광고비를 사용해서 보이지 않는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고객에게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런던에 러쉬 매장이 한국 매장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매장에 있는 직원들이다. 런던 러쉬 매장에 있는 직원들이 일을 한다기 보다 빠른 음악에 맞춰 신나게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형형색색의 제품들과 신나는 음악 사이에서 건전한 클럽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품을 소개하는 것은 자신의 제품을 어떻게든 팔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신의 애장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쉬 영국 본사는 120만 명의 팔로워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정말 눈에 보이는 고객 120명에 집중하려는 것이 아닐까? 국내에 있는 많은 로드샵이 하나 둘 없어지고 있는 것과는 매우 상반된 행보를 가고 있다.

러쉬 영국 매장에서 브랜드의 철학을 볼 수 있다

“We’re Switching Up Social”

정확히는 “We’re Switching Up Social”이라고 선언한 이번 러쉬의 결정은 명확한 브랜드 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러쉬 브랜드에 대해 잠시 설명하면, 러쉬(LUSH) 브랜드 네이밍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 베넷이라는 고객이 제안한 것으로 ‘신선한, 녹색의, 술에 취한 사람’을 의미한다. 지금은 로고가 블랙&화이트로 바뀌었지만 기존 화이트, 옐로우, 그린의 컬러로 로고가 만들어진 것도 이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러쉬를 창업한 마크 콘스탄틴은 살롱에서 일하는 모발 학자로, 살롱에서 사용하는 화학 성분 때문에 생기는 알레르기 반응을 없애고자 자연 성분을 활용해 자연주의 화장품을 만든 것이 바로 러쉬의 시작이다. 이런 러쉬의 핵심 가치는 '신선한 핸드메이드'로 원료 수확에서 제조, 유통, 포장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맨 처음 마크가 과일, 채소, 식물에서 원료를 추출해 비누를 만드는 방식을 지금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명확한 원칙을 가진 러쉬의 신념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사용하여 가장 자연에 가까우면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러쉬의 모든 제품은 핸드메이드로 생산되며 전 제품의 70%가 무방부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러쉬의 신념은 제품 패키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러쉬는 제품을 포장하지 않는다. 대체로 많은 뷰티 브랜드들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한다. 러쉬는 이와 다르게 과일 가게처럼 입욕제, 비누, 마사지 바, 팩 제품을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진열해서 판매하고 있다. 이는 런던의 마켓에서 제품이 진열된 것을 보고 착안한 방식이라고 한다. 실제 거친 표면이 있는 배쓰 밤 제품을 구매하면 별도의 포장된 제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 종이에 말아서 건네준다. 물론 액체나 가루 형태의 제품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지만 그 패키지 역시 세련되었다고 볼 수 없다. 오로지 제품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매장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포장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제품이 진열된 매장은 러쉬의 정신을 그 어느 곳보다 잘 나타내고 있다. 억지로 예뻐 보이려는 것보단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매장은 욕실을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면서 재래시장에 놀러 온 듯한 활기를 느낄 수 있으며, 매장 곳곳에는 자신의 철학과 정신을 적어두기도 했다.

러쉬는 왜 제품을 포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러쉬는 왜 제품을 포장하지 않을까? 단순히 브랜드의 정체성을 위해서 선택한 결과일까?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환경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콘스탄틴은 오염된 바다를 보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러쉬 제품의 절반 이상은 포장이 없는 날 것 그대로 전시되어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액체와 가루가 담긴 제품은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제품 가격에 대한 문제도 포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데, 포장을 하게 되면 돈이 많이 들게 되고 소비자는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포장을 간소하게 할수록 소비자는 더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은 제품을 포장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러 향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포장재로 꽁꽁 싸매 놓으면 고객이 그 냄새를 맡아보기 어렵잖아요. 우리는 이걸 '벌거벗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포장지 회사가 도산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러쉬는 제품과 매장에 담긴 브랜드 철학을 캠페인을 통해 고객과 함께 행동한다. 러쉬 제품을 사용하고, 러쉬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캠페인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브랜드 캠페인은 브랜드의 인지도와 판매를 촉진시키는 프로모션의 느낌이 강하지만, 러쉬는 공공의 목적을 기반한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매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사회적인 캠페인을 하기 때문이다. 러쉬는 동물 실험 반대, 오소리 보호, 상어 보호 캠페인 등 다양한 진행 했고, 중국이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은 반입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중국 시장 진출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통의 회사가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캠페인이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캠페인의 진정성과 의미가 퇴색되고 한계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러쉬는 캠페인과 비즈니스를 별개로 보고 진행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다. 러쉬에게 캠페인은 하나의 브랜드 정체성이자, 올바른 직원을 채용하는 척도가 된다. 러쉬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에 반대하는데 입사하려는 직원이 없기 때문이다. 러쉬는 캠페인을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 에너지를 만드는 운동'이라 정의한다. 즉,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가치가 담긴 사회적 책임에 동참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러쉬 캠페인이 제품이 아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치를 가진 러쉬를 단순 뷰티 브랜드로 볼 수 있을까? 러쉬에서 진행하는 동물 실험 금지, 과대 포장 금지는 다른 브랜드에서 봤을 땐 불편한 캠페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러쉬가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이에 동참하는 이유는 단 하나, 러쉬는 올바른 이야기를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을 기반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 하여 틀린 길이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 가지 못하는 길을 용감하게 갈 때 더 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기 마련이다. 러쉬가 無 광고, 無 포장, 無 SNS 임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이유는 바로 용기 있는 목소리와 실행 때문이다.

에스콰이어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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