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 방문기
도쿄 여행 3일 차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이다. 와이프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최대한 여유 있게 구경하기 위해 오후 5시쯤 방문했다.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으나, 우리가 이 매장을 나온 시간은 8시 반! 거의 3시간을 넘게 여기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한국에서도 웬만한 스타벅스 매장은 다 가봤던 우리가 왜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을까? 아니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오래 있을 수 있었을까? 이곳은 단순 스타벅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이제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매하는 곳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되어 버렸다.
밀라노, 뉴욕, 시애틀, 상해에 이어 5번째 매장인 도쿄 리저브 로스터리는 연면적 약 900평으로 가장 큰 규모다. 이는 한국에서 가장 큰 매장인 종로점의 3배 규모다. 입장 시 번호표를 뽑고 대기 후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각각 4279, 4280 번호표를 뽑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총 4층 건물이나, 매장 내 들어오는 고객 유입량을 관리해 주문과 내부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큰 문을 열구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17m 높이의 구리로 된 커피 통과 기계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하나의 커피 공장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실사판이랄까? 기계들 위로는 투명 관을 통해 커피 콩이 이동하고 있었고, 로스터 기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커피콩을 우리들 눈 앞에서 볶고 있었다. 여기서 방금 볶은 커피를 바로 마실 수 있는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썼던 '우리가 몰랐던 스타벅스의 비밀' 글을 보면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진동벨이 없고 직접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커피를 전달한다고 적었다. 실제 한국에 있는 매장도 진동벨은 따로 없다.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더라도 고객이 적은 이름이나 별명을 불러 커피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 곳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은 주문 후 진동벨을 준다. 아무래도 이렇게 큰 매장에서 고객에게 이름을 부르며 음료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인 것일까? 아마 이름을 부르는 방식을 그대로 도입했다면 매우 정신없고 시끄러운 매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본인들이 기존에 운영하던 방식을 매장의 콘셉트와 규모에 따라 유동적으로 잘 변화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음료를 계산 시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데 이 이유 중 하나가 지폐를 받으면 돈은 자판기 기계 같은 곳에 넣고 거기서 바로 잔돈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많은 고객을 수용하고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계산하는 곳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것 같다.
1층은 커피, 2층은 티바나 바(티), 3층은 아리비아모(칵테일 바), 4층은 전 세계 최초로 토론 공간이 마련되어 커피 관련 교육도 진행된다고 한다. 우선 우리가 1층에서 주문한 커피는 이곳에만 있는 메뉴로 (왼) 반 카스카라 레몬 사워, (오른) 배럴 에이지드 콜드브루 2가지다. 역시 맛은 정말 최고였다. 커피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니,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내가 새로운 미각을 눈뜬 기분이랄까? 이곳에 온다면 커피에 대한 돈은 아끼지 말고 마실 것을 추천한다.
#카스카라 레몬 사워
메이플 시럽과 신선한 레몬, 카스카라 설탕을 더한 콜드브루
#배럴 에이지드 콜드브루
버번위스키 배럴에서 숙성시킨 커피콩으로 추출한, 위스키 향이 나는 콜드브루
2층은 티바나 바로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스타벅스가 커피 외에도 티바나 바에도 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일본은 커피콩 생산량이 2014년 44만 6100t에서 2017년 46만 4520t으로 증가했을 만큼 커피 시장이 큰 곳이다. 사실 커피 외에도 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에 최대 규모의 티바나 바를 2층 공간에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스타벅스의 행보를 보면 잠재되어있는 중국 시장에도 티바나 바를 앞으로 더 강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약 500잔인데 반해 중국은 아직 1인당 5잔 정도라고 한다. 중국 스타벅스에 커피 외에도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제공된다면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훨씬 더 큰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 것이다.
3층은 아리비아모 칵테일 바로 피자 및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스타벅스 다움을 정말 잘 담아낸 바 느낌으로 우리가 주문한 칵테일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NAKAMEGURO ESPRESSO MARTINI (2,000엔)이다. 생각보다 알콜이 강해 한 잔으로 나눠 마셨는데, 부드러운 커피와 위에 뿌려진 초코 가루가 잘 어우러지는 맛이다. 한화로 1잔에 2만 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스타벅스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경험이 꽤 값질 것 같아 3번째 커피를 마셨다.
이 마티니 한 잔과 함께 우리의 도쿄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것 또한 공간의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물론 같이 마시는 음료도 서로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큰 역할을 하는데, 3층 아리비아모는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NAKAMEGURO ESPRESSO MARTINI는 꼭 마셔보시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 바로 앞은 메구로 강이 있는데, 벚꽃이 피는 시기에 오면 정말 아름답고 멋진 벚꽃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내부 디자인도 구리 커피통 주변은 모두 벚꽃 장식으로 인테리어를 해뒀다. 정말 이곳을 제대로 느끼려면 벚꽃이 피는 시기에 와야 할 것 같다. 2층과 3층은 벚꽃을 바로 눈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는데 4층은 그 모습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4층 내부는 로스팅된 커피를 포장하는 공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레일을 따라 패키지가 이동하면 마지막에 직원이 최종 검수하여 포장을 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1층 로스터 기계부터 4층 포장하는 과정까지 이곳에 오는 고객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 설비도 인상적이었다. 각 층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잡아뒀고 이 모든 것을 보고, 마시고 느끼느라 3시간이 흘러 버렸다.
최근 가장 핫한 커피 브랜드는 바로 블루보틀이다. 한국에 매장이 생긴 후 오랫동안 줄을 서야만 커피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사실 우린 아직 한국 매장은 가보지 못했다. 먼저 일본에서 블루보틀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왜 블루보틀에 열광하는지 아직까진 알 수 없었다.
블루보틀이 가지고 있는 커피의 철학을 공감해서일까? 로고가 이뻐서 일까? 커피 맛이 달라서 일까? 매거진 B를 통해 블루보틀에 대한 스토리와 역사를 들었지만, 커피 한 잔으로 소비자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번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를 다녀온 후 느낀 점은 하나다. 스타벅스는 이제 문화 공간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
같은 스타벅스지만 도쿄 매장은 일본의 특성을 살린 벚꽃을 콘셉트로 내부가 디자인되었고, 내부 목재 역시 일본의 전통 방식을 이용해 인테리어가 되어있다. 일본 사람은 이곳에 오면 누군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 바로 '문화'이다. 모든 스타벅스 매장이 이러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진 않지만, 앞으로 방향은 확실히 커피 산업을 넘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번호표를 뽑은 후 웨이팅 공간에서 대기 후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 역시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를 위한 큰 배려라 생각된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소비자의 경험인데 이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블루보틀과 스타벅스가 소비자를 대하는 차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