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2069년 4월 15일 월요일, 오전 8시 정각.
4992번째 아침을 맞이하는 당신의 생체 신호는 안정적입니다.
기상 후 물 섭취와 햇빛 노출을 권장합니다.”
돌봄 로봇의 음성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 완벽한 중간에서 조율된 목소리는, 오히려 더 기묘하면서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로봇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밤새 굳어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소년의 눈앞에서 희미하게 떠돌던 먼지들은, 점차 밝아지는 실내 조도에 삼켜지듯 사라져간다.
“서울시 기준, 현재 외부 기온은 영상 12도,
오늘은 오후까지 약한 봄비가 예보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대기질 지수는 162,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입니다.
야외 활동 시 고효율 필터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며,
노약자나 호흡기 민감군은 외출 자제를 권합니다.
실내 공기 청정 시스템은 자동가동 중입니다.”
소년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자, 식탁에는 로봇이 데워준 뉴트리팩이 차려져 있었다.
“아침 식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영양 상담 알고리즘에 따라, 단백질 함량이 높은 대체식으로 제공됩니다.”
‘오늘의 아침은 Breakfast 4-A구나.’
소년은 뉴트리팩에 새겨진 일련번호를 보고 생각한다. 식사마다 생체 신호와 컨디션을 고려해 각기 다른 뉴트리팩이 준비되지만, 이상하게도 맛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고, 식사에 대한 기억도 남기지 않는다.
‘따뜻하게 데운.. 구름?’
그 식사를 먹고나면 마치 구름을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년은 배가 고픈지 부른지도 모른 상태로, 식탁에 앉아 습관처럼 그릇을 비웠다.
소년이 식사를 하는 동안, 로봇은 냉동실에서 레그밀(*)을 꺼내 해동을 준비한다.
아마도 소년이 학교로 나서면, 로봇은 레그밀을 데워 엄마를 깨우고 식사를 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로봇이 엄마를 어떻게 먹이고 씻기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소년은 자신이 정말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소년은 엄마의 방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간 적이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기억하는 한.
식사를 끝낸 소년이 양치를 하고, 옷장에 준비된 옷을 대충 주워입으며, 황급히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학교에 늦을까봐.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곧 엄마가 식사를 할 시간이라는 계산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신발을 신으며 평소처럼 뒷꿈치를 꾹 눌러 넣었는데, 발이 너무 쉽게 쏙 들어갔다. 신발이 작아진 것을 감지한 로봇이 이미 큰 사이즈로 교체해 둔 것이다. 소년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릴 적부터 늘 이런 식으로 돌봄을 받아왔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무언가가 먼저 준비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현관을 나서며 주머니에 손을 넣자, 새 마스크가 들어 있었다.
밖에 나서니 뿌연 연무가 거리를 덮고 있었다.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침의 소란 속에 학교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도시의 아침은 오래전에 소음을 잃었다. 무너진 건물과 고층 빌딩들이 뒤섞인 거리, 그 사이를 오가는 건 청소 로봇뿐이었다. 튀어나온 바닥을 로봇의 바퀴가 긁을 때마다 울리는 끼익- 소리가 인적없는 도시의 정적을 조금씩 메워갔다.
소년의 집은 도시의 교육 중심부에 있었다.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은 모두 이 구역의 집을 배정받아 살아간다. 무빙워크나 자동 모노레일로 도심 어디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소년은 걸어 다니는 쪽을 더 좋아했다. 도시의 크기가 작아 걷기에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걸어가면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낯익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반가운 인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년이 교실에 들어서자 손목에 감겨있는 모바일 워치에서 출석 알림 진동이 울렸다. 소년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니 조교 로봇이 다가왔다. 지난주 금요일에 무단조퇴를 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게 분명했다. 조교 로봇은 소년의 옆에 서서 붉은 센서를 깜빡이며 말한다.
“지난주 금요일 무단조퇴 3회차 발생, 무단조퇴 1회 추가 발생 시, 교정국 면담 예정.”
*regulated meal의 줄임말. 신체, 심리 건강이 위험군에 속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식사로, 영양학적 성분과 섭취방법 등이 정교하게 설계된 뉴트리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