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2학년이 되던 해, 공립 학교에는 더 이상 인간 선생님이 남지 않았다.
전사회적으로 AI와 로봇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국가는 위기를 막기 위해 기본 소득제를 시행했는데, 이 제도는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꺾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전 업종에서 자발적 퇴사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학교에는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으로 끝까지 교단을 지키려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 돌봄이 무너지고, 아이들의 정서도 무너져가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품으려던 많은 선생님들은 보호막 없이 소모되었다. 남은 교사들의 교권은 점점 더 약해졌고, 결국 교사들도 하나둘씩 교단을 떠나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마침내 홀로그램 선생님과 로봇 조교만이 남게 되었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교실 앞 교단에 입체 홀로그램 AI 선생님이 서서히 나타난다.
10시 정각, 1교시가 시작된다. 생명윤리시간이다. 매일같이 자살 예방 교육이 반복된다.
2교시는 기초 학습 시간. 기본적인 읽기, 쓰기, 계산 같은 최소한의 교육이 시행된다.
점심 시간에는 균형잡힌 영양으로 구성된 따뜻한 식사가 나온다.
집에서는 로봇이 데워주는 뉴트리팩이 ‘집밥’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학교의 점심시간은, 누군가가 직접 조리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드문 순간이다. 물론 그 ‘누군가’도 로봇이다. 하지만 갓 데워진 국에서 김이 오르고, 따끈한 밥 냄새가 식판위로 번질 때, 아이들은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낀다. 학교에서 받는 유일한 위로의 순간인 것이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3교시는 취미개발 시간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의미있는 활동으로 채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은 매일 여러 가지 취미를 탐색해본다.
마지막 4교시는 정서통합 시간.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고 안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정서통합의 일환으로 1주일에 2회 정도는 체육수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방과 후엔 자살이나 자해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이 남아 개별적인 정서 모니터링과 방과후 돌봄을 받는다.
소년이 다니는 공립 학교는 더이상 고등 교육을 담당하지 않는다. 이곳은 그저, 아이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붙들어 두는 곳이 되었다.
1교시 종이 울리자, 푸른빛의 홀로그램 속에서 에덴 선생님이 나타났다.
“여러분 개개인의 생명은 사회적 자산이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차분하지만 카리스마 있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교실 앞 스크린에는 관련 법령이 하나씩 떠올랐다.
「생명보전기본법」 (2060년 개정안)
제4조 (생명보호 의무)
모든 국민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타인의 생명 유지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제7조 (사전 정서검진 의무)
자살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는 자는 주1회 이상 정기적인 정서 검진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거부 시 정서회복 프로그램에 강제 등록된다.
제12조 (자살 시도 행위 금지 및 처벌)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획한 경우, 사회 안전망에 위협을 가한 것으로 간주하며,
생명중재센터로의 격리 보호 조치가 취해진다.
“우리는 과거에 기술의 발전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선조들을 지지해줄 구조적 안전망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기술 발전에 발맞추지 못한 사회 윤리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우리 사회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스크린에 과거 통계 그래프가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그 슬픈 과거에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반적인 안전망을 완비했습니다.”
에덴 선생님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양 팔을 펼쳤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여러분을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여러분을 지켜 줄 것입니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로봇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그래.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소년의 엄마와 소년 자신, 그리고 지금 이 교실에 앉아 있는 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사회의 돌봄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돌봄은 단순히 숨을 쉬게 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것 말고도 지켜야 할 게 더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지켜준다, 지킨다…’의 말뜻이 무엇인지, 소년은 그 말의 본래 뜻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때 로봇 조교가 소년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전면의 에덴 선생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학생, 수업에 집중해 주세요. 제가 방금 ‘자살과 관련된 말을 하는 것’도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죠. 그 죄명을 뭐라고 했는지 대답해 보세요.”
놀란 소년은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죄…죄송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정답은 ‘불건전 사고 유포죄’입니다. 이제 아셨지요?”
에덴 선생님의 홀로그램이 시선을 다른 학생들에게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의 생명은 여러분의 것만이 아닙니다.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 한마디, 생각 하나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또 툭 하고 끊어지는 듯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고, 교실이라고 불리우는 이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더는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1교시를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소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열었다. 무단 조퇴가 한 번 더 쌓이면 교정국 면담이 있다는 생각조차 따라올 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