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장. (3) 잊혀진 도서관

by 송영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온 소년이 향한 곳은 폐허가 된 도서관이었다. 이 장소를 찾은 것은 한 달 전쯤이었다. 그날도 학교 수업을 듣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무단조퇴를 하고 하릴없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년은 집을 지나쳐 외곽의 숲속을 헤매다가, 깊은 숲 속에서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을 발견했다. 건물 입구에는 ‘교육중심부 국립도서관’이라는 낡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도서관이 뭐지?’ 처음 그 장소를 발견한 소년은 궁금증에 사로잡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현관을 지나니 밝은 홀이 나왔다. 커다란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뿌연 먼지와 거미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무로 된 커다란 가구 같은 것들이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서 있었고, 그중 몇몇은 조용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무너진 잔해 사이사이로 무언가가 마치 무덤처럼 가득 쌓여 있었다.


소년은 습관처럼 주머니 속 마스크를 꺼내 썼다. 오래된 먼지 냄새 속에 처음 맡아 보는 향이 섞여 있었다. 쿰쿰하면서도 약간 달콤하고, 아릿한 계피향이 배어 있었다. 어떤 냄새를 맡아 본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의 냄새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약간의 따뜻함을 머금고 있었다.



소년은 도서관 곳곳에 쌓여 있는 무덤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이것을 어디서 봤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 이것이 책이라는 것이구나.’

언젠가 학교의 취미 개발 수업 시간에 봤던 고전 영화에서, 책을 읽고 있는 주인공을 본 기억이 났다. 에덴 선생님은 그것이 ‘책’이라고 설명해주며, 영상 기술과 정보 저장 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가 지식을 적어 서로 나누던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소년은 책 무더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앉아서 책을 한두 권 집어 들었다. 작은 글씨가 생각보다 빼곡해 눈을 찡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책 무더기 아래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년은 깜짝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그 순간 책 무덤 속에서 무언가가 불쑥 솟구쳤다. 소년은 주저앉은 채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것은 로봇의 한쪽 팔이었다.



“긴급 배터리 구동, 긴급 배터리 구동. 충전이 필요합니다. 충전이 필요합니다.”


깜짝 놀랐던 소년은 눈앞에 정체를 드러낸 로봇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안도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로봇에게 말했다.

“야,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최종 구동 시 방전 예방을 위해 휴면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현재 움직임이 감지되어 긴급 구동 상태입니다. 충전이 필요합니다.”


“충전기가 어디 있어?”


“입구 근처 사서 테이블에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도와줄게.”


소년은 로봇 위에 쌓인 책들을 치우고, 로봇의 팔을 잡아당겨 앉혔다. 그리고 로봇 근처에 쌓여있는 책도 치운 후, 앉은 상태의 로봇을 힘껏 밀어 입구 근처 테이블까지 데리고 갔다. 테이블 측면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구형 배터리 충전 케이블이 있었다. 소년은 충전선을 끌어서 로봇의 허리춤에 있는 충전 단자에 꽂았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왔다.


“충전이 시작됩니다.”


“너는 무슨 로봇이야? 근데 되게 오래돼 보인다. 요즘엔 이렇게 생긴 로봇이 별로 없던데.”


“생산 일자 2050년, 최종 구동 일자 2059년 12월 3일.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관리하는 사서 로봇입니다.”


소년은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 2069년인데, 만들어진 지 거의 스무 해나 됐네? 대단하다. 그런데… 도서관이라고 그랬지? 그게 정확히 뭐야?”


“당신은 ‘도서관’의 개념을 요청하셨습니까?”


소년이 대답하기도 전에 로봇은 설명을 시작했다.

“도서관은 과거의 인간들이 잊지 않기 위해 남겨 둔 말들의 저장소입니다.

여기에는 지식, 기억, 감정, 상상, 사랑, 고백, 고통, 심지어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문장의 형태로 책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소년은 로봇을 바라보았다. 사서 로봇은 낡은 금속 몸체 그대로 정면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시선은 어딘가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일부를 책에 남기곤 했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읽는다면 그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소년은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처음 듣는 설명이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가운데가 살짝 아려왔다. 그것이 바로 사서 로봇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소년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도서관을 찾았다.



keyword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