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장. (5) 물음과 응답

by 송영채

소년은 하이데거의 책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사서로봇에게 처음 추천받은 책,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 읽게 된 책,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잊혀졌을지도 모를 이 두꺼운 책은, 소년에게 ‘역사의 유물’처럼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소년은 저도 모르게 그 책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넣었다. 왠지 돌봄 로봇에게 들키면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옷장 한쪽 구석에 조심스레 책을 숨겼다.


“식사 시간입니다. 오늘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열량 강화식으로 준비했습니다.”


로봇의 부름에 소년은 방에서 나와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로봇은 내가 무단 조퇴 후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소년은 마치 방 안에 맛있는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사람처럼 저녁을 급히 해치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KakaoTalk_20250924_121159929.png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옷장을 연 소년은, 깊숙이 숨겨두었던 책을 다시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눈을 찡그리며 책을 읽던 소년은 곧 책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든 소년이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책을 잡고, 카드를 섞듯이 후루룩 책장을 넘기던 소년의 눈에 낙서가 되어 있는 페이지가 들어왔다. 소년은 얼른 지나가 버린 페이지를 다시 찾아 펼쳐보았다.


하이데거의 문장이 인쇄된 페이지 아래 누군가가 검정 펜으로 적은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존재란 그저 살아있음이 아니라,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고 그 응답이다.

나는 이제 그 답을 찾았다. 그래서 존재를 위한 증발을 돕고자 한다.

— DR. X’


‘존재? 증발?’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의 나열에 헛웃음을 짓던 소년의 머리 속이 일순간 바빠진다.


‘그래, 바로 증발이었어. 이제 기억이 나.’


소년의 마음이 바빠진다. 지금 당장 도서관에 가야 한다고, 소년은 생각한다.


소년은 잘 준비를 다 마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깊은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엄마의 착란 증세가 심해져 돌봄로봇이 한동안 엄마 방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소년은 그때를 기다렸다. 졸음이 밀려왔지만 꾹 참으며, 옷장에 숨겨둔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17페이지였지. 다시 한 번 볼까.’

KakaoTalk_20250924_121346405.jpg


‘존재, 근본적인 물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과 응답... 그리고 증발...’


소년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건넌방에서 엄마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돌봄로봇이 약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힌다.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급한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4월의 밤은 여전히 쌀쌀했다.

keyword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