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년 3월 18일
지난겨울은 유독 길고 추웠다. 계절도 우리 사회처럼,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완충지대가 점점 사라져 가고 혹독한 추위와 더위만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주변 분위기가 너무 흉흉하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몇 년 전 유행한 NOVA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때도 무서웠지만, 그때는 ‘바이러스’라는 뚜렷한 원인이 있었고, 감염되지 않기 위해 충분히 조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죽음의 공포는 바이러스나 세균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건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누구도 뚜렷한 정답은 모른 채 두려워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말 자체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요즘 들어 나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도박중독에 빠져 있던 남편이 길에서 발견되었다고 연락이 왔었다. 교정시설로 이송된 뒤 약물교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수호를 로봇에게 맡기고 남편을 만나러 갔는데, 그곳에서 만난 남편은 이미 아무 의식도 없는 상태였다. 그동안 남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편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고,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고 푸석하게 상해 있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나는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타는 듯하게 조여오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다니 이상했다.
아빠에 대해 묻는 수호에게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남편이 수호를 보면 참 좋아할 텐데, 남편의 영혼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강건하던 그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외롭고 울적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슬픔과 우울의 감정은 극도로 위험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울한 사람을 보면 더럽고 위험한 것을 보듯이 피하고, 심한 경우 교정시설에 밀고하기도 한다. 그렇게 고발된 사람들을 병원이나 교정시설로 강제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약물 교화 프로그램이 합법화되면서, 강제적인 입원이나 약물 투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냥 말만 나눠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너무 외롭고 힘들고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제 그럴 수가 없다. 곧 전 국민 정서 모니터링 시즌이 시작되는데, 만약 내가 약물교화 대상이 되면 어떻게 할지 너무 걱정된다. 발표에선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국가에서 처방하는 약물치료를 받고 더 망가져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 보여서 무섭다.
내 정신이 망가진다면, 우리 수호는 누가 지켜주지?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리 수호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마음을 강하게 먹자. 외롭고 슬프고 답답한 감정은, 우리 수호를 사랑하는 내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호를 생각하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29편의 글이 실린 증발의 시대 1부를 여기서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연말에 잠시 재충전 시간을 가진 뒤, 새해 첫 토요일부터 증발의 시대 2부 연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가오는 연말연시, 모든 구독자 분들과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의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따뜻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