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7) 너의 세계 속으로

by 송영채

소년은 소녀의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고글과 글러브를 착용했다. 사실 자신이 중독될까에 대한 우려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말주변이 없는 자신이 혜수와 잘 만나고 올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을 뿐… 자신 때문에 혜린 이모가 동생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게 될까 봐 염려되기도 했다. 게다가 예뻐 보인다는 말은,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왜 혜수를 만나러 들어가 보기로 한 걸까? 소년은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 그 세상을 몹시도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 그 세상에 있는 혜수의 표정은 어떨지, 언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지 그런 궁금증이 소년의 마음을 오히려 설레게 한다는 것도, 소년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간호 로봇이 옆에 다가와 고글과 글러브를 끼워주며 말했다.


“어지럼증이나 두통 등의 증상이 있으면 손에 낀 글러브를 꽉 쥐세요. 말하는 것도 모두 모니터링 중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세요. 접속 제한시간 10분, 종료 30초 전에 알람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접속 시작합니다. 5, 4, 3, 2, 1. 접속.”


소년이 감았던 눈을 떠보니, 연한 핑크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집이 저물기 시작하는 빛 속에 서있었다. 채도가 낮아서 현실감은 적었지만,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소년은 알록달록 피어난 꽃밭을 지나 현관문으로 다가가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띡’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살짝 열렸다. 소년이 문을 열어 집에 들어가니,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에서는 정원 방향으로 크게 뚫린 통창으로 정원의 꽃밭과 멀리 펼쳐진 녹음. 그리고 더 먼 바다의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황혼이 낮게 깔리며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깨질듯이 시린 푸른색과 연보라색, 그리고 연어색과 밝은 노랑빛이 황홀하게 섞인 풍경에 홀린 듯, 소년은 잠시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소년은 거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거실 한편에 놓여있는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하고 다가간 소년은 검지 손가락으로 건반 하나를 눌러보았다. 묵직하게 건반이 눌리면서 깊이 울려오는 피아노 소리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피아노의 진동에 소년은 깜짝 놀라 피아노에서 손가락을 뗐다.


“누구세요? 오늘 손님이 한분 올 거라고 메시지는 받았는데.”


“아, 안녕하세요. 저는… 혜린이 이모… 대신 왔어요. 수호… 수호라고 해요.”

소년은 용기를 내서 말해보았다. 자신의 수줍음 때문에 놓쳐선 안될,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 혜린이 이모? 혜린… 아, 우리 언니…”


“네. 오늘 생일이라고 들었어요. 생일 축하해요. 혜린이 이모가 예쁜 옷을 선물한다고 하던데…”


“이 옷, 정말 마음에 들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인데, 드디어 입어보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소년의 머리에, 10분의 시간 중 몇 분이 흘렀을까 하는 걱정 어린 생각이 스쳤다. 소년은 다시 소녀와의 대화에 집중하고자 눈을 굳게 감았다 떴다.


“정말 예쁘네요. 잘 어울려요.”


어색한 칭찬을 한 소년의 입에서, 이번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쑥 튀어나왔다. 준비하고 있던 질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소녀와 대면을 하자, 소년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스로 튀어나온 질문 같았다.


“여기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잘 지내나요?”


“응. 편안하고,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예쁘게 꾸밀 수 있지. 그리고 안락하고, 위험한 것도 없어. 나는 평소에 보통 집을 예쁘게 가꾸고, 얼굴과 몸도 예쁘게 꾸며.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의 옷과 집을 구경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하지.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


“아프거나 힘든 건, 없어요? 이 세계에서 나갔을 땐, 어지러워서 토하고… 그랬다고 하던데.”


“이 세계? 나간다고? 아 잠시만, 나 지금 머릿속이 살짝 빙빙 도는 것 같아. 생각이 잘 안나.”


“근데, 언니가 그립진 않아요? 언니를 잊은 건 아니죠?”

소년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언니. 언니는 내 엄마이자 아빠이고, 내 전부였어. 여기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지내다가도, 다시 어딘가에 묶인 듯이 돌아오곤 하는데, 그곳엔 늘 언니가 있어. 그런데 언니를 만나려면, 사실 너무 멀미가 나. 언니가 있는 세상은, 너무 텅 비고, 두렵고, 무서워. 그리고 왠지 너무 죄책감이 느껴져. 나는 살아야 해서, 도망쳐야 해. 이곳에 있어야 해. 이곳 만이 안전해.”


“여기에 들어오기 전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요?”


“모르겠어. 사실은 뭐가 진짜인지 헷갈려. 가끔은 나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도 들고. 어쩔 땐 나의 몸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을 때도 있지. 그런데 어디선가 언니가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내가 아직도 언니 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져.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맞아, 같은 이름을 가졌어.”


‘종료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소년의 귀에서 작게 알림이 울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더 빨리 흘렀다는 것에 놀라며, 소년이 혜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도 바깥에서… 혜수라는 이름, 자주 불러줄게요. 나중에 우리 실제로 만나면, 같이 놀아요. 그리고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책으로 만든 선물도 있거든요? 나중에 꼭 봐요.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요.”


자기 자신도 놀랄 정도로, 소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음을 느끼던 와중에 접속이 종료됐다. 소년의 눈앞은 암흑이 되었고, 소년은 무언가에 압도된 듯한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잠시 눈을 더 감고 있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소년의 눈과 머릿속, 그리고 가슴과 손끝을 맴돌다가 찬찬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소년은 고글을 벗으며 눈을 떴다.


소년의 앞에서 여자가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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