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소년은 간호데스크에서 의료용 테이프를 빌려서 혜수 병상 근처의 서랍장 위, 침대 헤드, 그리고 천장 곳곳에 8개의 종이배를 붙였다. 혜수가 눈을 뜬다면, 어디에 붙이면 잘 보일지, 그런 의논을 해가며 배를 붙인 뒤에 여자는 도시락을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하며 입을 열었다.
“혜수야 오늘 혜수 생일 파티한다고, 축하하러 친구도 같이 왔어. 수호라고 해. 봐봐. 잘생겼지?”
소년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뻣뻣하게 서 있었다.
“여기 보여? 수호가 접어 온 종이배야. 수호한테 소중한 책으로 만들었대. 귀엽지?”
여자는 소년을 돌아보며 덧붙여 말했다.
“수호야 혜수한테 인사 좀 해봐.”
소년은 흠칫 놀라 망설였지만 해맑은 여자의 얼굴에 못 이긴 척 목소리를 가다듬어 보았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혜수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는지, 소년이 막상 입을 떼자 어느새 말들이 길게 이어졌다.
“아… 안녕? 나는 수호야… 오늘 생일이라고 해서 축하하러 왔어. 저기… 종이배 붙여놨어. 사실 종이비행기가 훨씬 접기 쉬운데, 비행기는 좀…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 너무 외롭고 불안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배를 접었어. 만드는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 기억해 내느라 한참 걸렸어. 네가 나중에 눈뜨면 꼭 저 배들을 봐주면 좋겠다.”
어색하지만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는 소년을 잠자코 바라보던 여자가, 이내 도시락 뚜껑을 열며 말했다.
“여기 집에서 밥이랑 미역국, 그리고 잡채 만들어 왔어. 오랜만이라… 내가 제대로 맛을 냈는지 잘 모르겠네. 엄마가 해준 맛이 나면 좋겠는데… 자, 냄새 맡아봐. 참기름 냄새나니? 이거 만든다고 참기름 진짜 힘들게 구했다.”
여자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떨며 상을 차렸다. 약간은 비릿하지만 고소하고 담백한 바다 냄새, 그리고 깊고 달큼한 기름내가 병실 가득 퍼졌다. 자기도 모르게 소년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수호야. 여기 앉아서 우리 같이 먹자. 혜수 양만큼 네가 더 양껏 먹어.”
소년은 침대 발치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소년은 숟가락을 들어 국을 먼저 맛보았다. 생일에 뉴트리팩에 항상 포함되던 미역국을 먹어본 기억이 났다. 혜린이모의 미역국은 그보다 맛이 더 깊었고, 진한 감칠맛이 감돌았다. 맛있게 먹기 시작한 소년이 무심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목이 메는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수저로 국을 의미 없이 휘젓고 있었다.
“뉴트리팩 먹을 땐,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내가 식사 준비를 해서 먹다 보면, 이상하게도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던 시간이 떠올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셨는지,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되고…”
여자는 착잡한 생각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잠시 가로젓더니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오늘은 내 동생 혜수의 생일파티고, 너도 같이 축하해 주러 왔으니까. 청승 그만 떨고, 맛있게 먹어봐야겠다.”
여자는 애써 웃어 보이며 숟가락 가득 밥을 퍼서 입에 넣고, 미역국도 한입 먹었다. 여자의 양볼이 불룩하게 부풀었다. 소년도 입안 가득 밥과 잡채를 먹어 보았다. 소년과 여자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킥킥 웃었다.
“이건 국가에서 배송해 준 미니 케이크!”
밥을 다 먹은 여자는 작은 박스 안에 들어있던 미니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에는 ‘Happy Birthday! 5844th day’라고 쓰여 있었다. 여자는 케이크 위에 같이 동봉된 일회용 홀로그램 초를 꽂았다.
“우리 같이 노래 부르자.”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혜수의~ 생일 축하 합니다~”
여자가 노래를 다 부른 후 소년에게 같이 초를 끄자고 했다. 여자와 소년은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함께 초를 불었다. 여자는 케이크 한 조각을 소년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내가 생일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 바로 이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는 거.”
“제 생일 땐 케이크가 무슨 맛인지 잘 몰랐는데, 오늘 먹어보니까 엄청 맛있네요.”
케이크 한 조각을 한입에 몽땅 해치운 소년의 접시 위에 여자가 남은 조각을 모두 덜어 주었다.
“한 달에 한번, 혜수 면회 갈 수 있거든. 오늘은 네가 가줄래?”
“면회요? 지금 온 거 아니에요?”
“지금 개발 중인 프로그램이 있어. 베타 테스트 버전인데, 메타버스 세상에 접속해서 혜수 모습을 볼 수 있거든. 혜수가 스스로 생각하는 혜수 모습으로.. 어떨 땐 대화도 가능한데, 아직은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잘 안될 때가 많아.”
여자는 베타 테스트 버전은 해상도도 실제 버전보다 훨씬 낮고, 접속 제한 시간도 있어서 중독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게 설계되었다고 소년을 안심시켰다.
“왜 직접 만나러 가시지 않고…”
“나 거기서 혜수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너무 힘들더라고. 며칠 동안 정신 차리기 힘들었어. 혜수를 그곳에 두고 돌아오는 마음이, 비참하고, 뭐랄까, 절망스러운 기분이랄까. 그리고 매번 혜수가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새 친구가 가면, 혜수도 좀 새롭게 받아들일까 싶어서….”
여자는 오늘이 혜수의 생일이라며 가상 세계 안에서 예쁜 옷을 사줄 예정이라고 했다. 혜수가 예쁜 옷을 입은 모습을 한번 봐주고 와달라고 했다.
“이왕이면 예쁘다고 칭찬도 한번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