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 허무주의 명상가

by 송영채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며 무너져 내린 혜린이모를 보자마자, 소년의 눈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둘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병실 바닥에 무너져내려 있었다. 눈물이 나오다 나오다 말라버린 후에도, 둘은 흐르지 않는 눈물까지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다.


슬픔이나 눈물 모두 소년에겐 익숙지 않은 단어였다. 소년은 자신이 왜 이렇게 무너져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그 거대한 흐름에 스스로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후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그 거대한 흐름을 끊어냈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근데 누구시죠?”

여자가 겨우 감정을 추스르며 일어서며 말했다.


“아 저는 이 요양원에서 일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퇴근하는 길에 병상을 좀 둘러보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혹시 힘든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 안녕하세요. 동생이 여기 이렇게 누워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이제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

떨림을 삼키며 여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 혜수환자분 언니시군요. 반갑습니다.”


“저희 동생… 치료해 주시는 분이신가요?”


“아 저는 아직 의식이 있는 분들만 만나고 있어요. 주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자신의 의지로 찾아오지 않는 분들께는, 효과가 별로 없는 치료여서요.”


“그러시군요. 아쉽네요.”


어색한 공기를 둘러보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사실 무너져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구해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사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혜수뿐만 아니라, 의식이 아직 남으신 분들도.. 제 실력이 형편없어서겠죠.”


“아니에요. 가족도, 의학도 하기 힘든 일인걸요.”


소심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더 왜소하게 느껴지는,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는 여자의 따스함에 이끌려서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스러져가는 사회에서, 무너져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남자도 무너지려는 스스로를 간신히 지탱했다고 했다.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인류의 역사에서 대대로 ‘명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의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치듯이 깨달음이 왔다. 이 희미해져 가는 세상에서, 남자는 자신의 소명을 그렇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남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깨달아야 했다.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물어물어 명상하는 사람들을 찾아 배우고 또 배웠다. 모두가 자신의 방법이 인류 대대로 이어져내려 온 방법을 전수받은 정통이라고 내세우는 선생님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배우면서도 남자는 정답을 찾은 것 같다가도 또 미끄러지고, 다시 또 답을 찾아가며 10년의 세월을 매달렸다. 그때즈음 남자는, 자기의 마음 하나는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다음 목표는, 사람들을 구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명상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우러나와야 시작되는 것이지요. 제가 아무리 설파한다 해도,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순 없더군요.”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게 이 사회를 바꿀 힘이 있으면 뭔가 바꿀 수 있을까 싶어서 보건국 공무직으로 지원했지요. 하지만 채용과 동시에 저는 이 요양원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의식이 없고, 나머지의 절반 정도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나머지의 절반 정도의 환자들만이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지요. 물로 그중에 몇 명의 마음을 제가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그분들을 대상으로 명상치료 같은 걸 하시는 건가요?”


“네. 지금은 개인상담과 집단상담, 이렇게 두 가지로 명상의 씨앗을 심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나 미디어를 이용하는 인지행동 치료사분들과는 좀 다르게, 저는 아날로그적인 접근만 하고 있지요.”

“효과가 좀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아픈 세상과 아픈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너무 괴로운 건 마찬가지고, 이렇게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까지 들어서.. 요즘엔 오히려 제 마음을 다스리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명상수련을 했기 때문에, 다행이랄까요?”


남자의 표정은 더욱 씁쓸해졌다. 여자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수련한 명상인데, 바꾸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도구가 되었네요.”


이 말을 듣고 소년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허무주의.. 명상가?”


소년의 말을 듣고 여자와 남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잠시간 세 사람은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더 큰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소년의 농담에 웃던 남자가 갑자기 자신의 의무를 깨달은 듯, 옷을 가다듬으며 말을 했다.


“아, 사실 지난주부터 단체상 담을 시작했습니다. 개인 상담은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입원환자와 외래환자, 그리고 교정국에서 의뢰받은 환자들이 대화하는 자리인데, 일주일에 3회 운영되고 있어요. 주제나 사회자도 없는 자리인데, 환자들이 이야기하다 보면, 저도 의도치 못했던 깊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좀 기대가 되기도 하고..”


허무주의 명상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자리에서 대화가 잘 풀려나갈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도 물론 제가 유능해서라는 느낌은 역시나 들지 않아요. 그저 그 자리에서 그 회원분들이, 아 대화하러 오신 분들은 서로 회원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분들의 내면에서 나오는 진솔한 마음이 그 대화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목격자가 된다고 할까요.”

남자가 겸연쩍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여자가 소년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수호야 너도 한번 가볼래? 교정국에서 의뢰하면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같이 할 수 있을까요?”


허무주의 명상가의 풀이 죽은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소년의 마음을 끌었다. ‘우리 사회가 안전망을 다 갖추었다. 여러분을 지켜주겠다’고 떠들어대는 확신 어린 말이 늘 지긋지긋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못해서 내 마음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그 중년 남자의 진심 어린 고백은, 오히려 소년의 숨통을 시원하게 트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처음으로 속 마음을 다 털어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속마음 안에 털어낼 게 과연 있는지,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