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 이모와 허무주의 명상가가 모두 국가 공무직이라는 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될지는 소년도 몰랐다. 교정국에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은 햇살 요양원의 단체상담에 참여해도 좋다는 회신이 왔다. 금요일은 모니터링을 위해 꼭 교정국에 와야 한다는 첨언과 함께.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소년의 머릿속은 곧 불안과 걱정의 소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단체 상담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내가 가장 어린 건 아닐까?’
‘내가 할 얘기가 있을까?’
‘괜히 간다고 한 걸까?’
소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무 섣불리 참여하겠다고 한 것은 아닌지,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정국의 교정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점이었다.
소년은 학교 수업시간이 끝난 뒤, 햇살 요양원으로 향했다. 인구붕괴시기 이후, 전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멸되면서, 도시들도 크게 축소되었다고 했다. 서울과 광역도시들만 남아서 살아남은 인구들이 집결했고, 자녀가 있는 가구나 1인가구, 노인가구 등 가구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지역부에 집을 배정받아 각 거주단위 별로 필요한 인프라가 구성된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서울은 예전 서울의 1/6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주 외곽이 아니고선, 무빙워크와 무상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웬만해선 30분 이내에 어디든 갈 수 있는 시스템이 그때 구비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소년은 언제나 걸어 다니는 것―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서 다니는 것―이 제일 좋았다. 일부러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며 30분 정도 걷고 나니 소년은 햇살 요양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강당으로 올라가니 벌써 6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있었다. 소년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비집고 들어가 빈 의자에 걸터앉았다.
“여러분은 각자 다른 사연, 다른 상처를 갖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 방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소소한 이야기들을 편하게 나눠보도록 할게요. 다른 특별한 규칙은 없습니다. 자살이나 생명을 경시하는 표현은 하지 말 것, 이 한 가지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것은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지금 임시 허가를 받고 진행 중인데, 불미스러운 대화가 보고되면,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될까요?”
병실에선 의기소침해 보였던 허무주의 명상가가 강당에서 사람들 앞에 서있으니 웬일인지 좀 더 반듯하고 당당해 보였다.
“바로 폐강입니다. 그러면 안 되겠죠?”
냉랭한 공기를 풀고 싶었는지 농담조로 말을 던졌지만, 의자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에게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허무주의 명상가는 얼른 입을 떼어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럼 오늘 단체 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새로 온 친구 한 명을 소개해야겠군요. 수호야, 잠시 일어나 볼래?”
허무주의 명상가가 목을 가다듬은 후 수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14살, 아직 많이 어린 친구입니다. 여러분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대해주세요.
수호는 처음 왔으니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 수호 이제 앉으렴.”
소년은 알아채기 힘든 정도로 작게 목을 숙인 후 자리에 앉았다.
“혹시 지난번에 우리 이야기 나눈 이후로, 특별한 일이 있었던 분이 계실까요?”
“저, 이야기해도 될까요?”
몇 초의 침묵이 흐른 뒤 한 여자가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부스스한 검은색 단발머리, 약간 누런 끼가 도는 마른 얼굴에, 큰 눈, 다크서클이 짙게 새겨진 피곤한 모습이었다.
“저는 지난번에 상담하고, 만 하루 정도는 우울감이 많이 없어졌어요. 여기서 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 내 감정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 위로도 받았고, 외로움도 가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나도 이제 이 우울을 달랠 방법을 찾았구나, 하고 오히려 즐거운 마음까지 들었죠. 하지만 어젯밤, 갑자기 제 마음이 또 무너지더군요. 그 우울감을 들여다보니, 어두운 터널이 끝없이 뚫려있는 것 같았어요. 그 깊이에 또 압도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어요. 아주 커다란 폭포 위에 서있는 기분이랄까, 제가 빨려 들어갈 거 같았습니다.”
여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년의 한 남성이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우울은 아니고, 좀 허무한 감정이라서 다르긴 한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도 허무감이 몰려올 때, 제 안에 있는, 커다란 호수 속으로 빠져가는 기분이 든 적이 있거든요. 그럴 때, 가끔은 죽을 것 같이 두렵기도 해서, 이걸 어쩌지.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남자의 말을 듣고 다시 강당은 침묵에 휩싸였다. 허무주의 명상가는 주먹을 두세 번 쥐었다 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우울감, 허무감, 여러분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의 덩어리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아주 깊고 검은 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잡아먹을 것 같은 두려움을 주는 점은 똑같군요.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또 계실까요?”
남자의 질문을 듣고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노년의 여성이 손을 들었다.
“저는 제 아들을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 듭니다. 사랑으로 키운 귀한 아들이었어요. 뭐든지 열심히 하고, 늘 1등을 놓치지 않는 자랑스러운 아이였죠. 하지만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지 못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알코올 중독이 되고, 지금은 약물중독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너무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마음으로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총알이 쏟아지면, 제가 대신 맞았을 텐데, 우리 아들을 공격하는 것들은 제가 어떻게 대신 막아줄 수도 없어서 더 큰 무력감이 들었죠."
노년의 여성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랑해 주고, 관심을 주고, 신경 써줘도, 제 아들은 망가져만 갔습니다. 그때의 그 감정, 그 자체가 바로 깊은 구멍에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스러져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죠. 지금도 우리 아들은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제가 아는 아들은 이미 사라진 것 같아요. 그걸 느낄 때마다 너무 절망스럽습니다.”
“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도 슬픈데,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도, 정말 아픕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독증상에 시달리는 인구가 1/3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이 많죠. 하지만 사실 그 가족들의 상처와 심리적 타격도 상당한데, 그걸 다룰 수 없는 현실도 큰 문제입니다.”
한참 동안 마음속의 검고 깊은 구멍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구멍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모두 그 구멍을 만나면 압도되어 겁에 질리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점은 똑같았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소년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도 저런 검은 구멍이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소년의 마음속에서도 검은 구멍이 서서히 번져나가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커다란 검은 구멍에서 처음 떠오른 장면은 초점 없는 엄마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엄마의 눈동자에서 지워진 초점처럼, 스스로의 마음을 지우려고 애쓰던 소년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이어졌다. 소년의 머릿속 필름들이 검게 물들어 가다가, 잘게 잘게 잘라져 나가면서 파편이 되어 부유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검은 구멍 안에 부유하던 검은 조각들은 엄마가 자기 방에서 소리치는 절규 소리가 되어 소년의 마음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 절규를 들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른 척 잠들려 애쓰는 스스로의 모습이 구멍 안의 검은 물속에 천천히 잠겨갔다. 소년은 갑자기 숨이 가빠왔다.
다행히 세션이 끝나면서 소년의 이상 반응은 강당 안에 있는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다. 소년은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행인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목례를 하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소년은 왠지 허무주의 명상가와 더 이상 말을 섞이기 싫어서 사람들 틈에 섞여 황급히 강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