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4) 그럼에도 사랑

by 송영채

금요일은 교정국에서 정서 모니터링이 있어서 단체 상담 세션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소년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이 모여 앉아서 자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금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화를 한다고 해서, 정답을 알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좀 무섭게 돌변하는 무명 화가의 고성을 들으면, 왠지 소년의 마음에도 그런 폭발하는 에너지가 전파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교정국에 와서 교정프로그램을 듣는 것보다는 여전히 훨씬 나은 선택지로 느껴졌다.


“단체 상담은 어떠니? 네가 너무 어린것 같아 걱정했는데, 심리치료사 님이 잘 돌봐주겠다고 말씀하셔서 특별히 허가했거든.”

청소년과 과장이 물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좀 어색했는데.. 그래도 좋았던 것 같아요..”

잠시 머뭇거리던 소년은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왠지 너무 좋아하는 티도, 혹은 싫어하는 티도 내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니터링 점수가 점점 더 잘 나와서. 조만간에 교정국 프로그램은 종료될 것 같다. 그런데 전자 팔찌도 풀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 알다시피 네가 가출하거나 하면, 우리가 쓸데없이 너무 바빠지거든.”


소년은 아무 대꾸 없이 잠자코 앉아 청소년과 과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잘해봐. 단체 상담이라는 거. 아직 약물치료받긴 너무 어리잖아.”


청소년부 과장의 의외의 말에, 소년은 순간 흠칫 놀랐다.

“네…”


거슬리는 게 있을지라도, 앞으로도 당분간은 단체상담에 꼭 가야겠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다음 월요일의 단체상담에는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차 사람들이 하나 둘 강당에 들어와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지정석은 아니었지만, 모두 같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늘은, 여러분이 최근에 받은 상처,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이벤트가 있었다면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괜찮아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검은 단발머리의 힘없어 보이는 여자가 첫 번째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좀 남들보다 마음이 약하고, 자주 우울해진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물론 이런 제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것도요. 아무래도 마음이 약하다는 건, 우리 사회에 위협으로 여겨지니까… 그래도 가족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 좋을 텐데…”


여자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양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꽉 쥐며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부터 제 아들들이 저를 피하더군요. 제가 물었더니, 엄마의 눈물은 자기들에게도 너무 벅차다면서. 그냥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면 안 되겠냐고. 진심으로 부탁하더라고요.”


여자는 다시 용기를 내듯 고개를 들어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제가 그렇게 위험한 존재인가요? 약물 치료 용량을 늘릴 수도 있다고 하던데, 저는 지금 이렇게 잘 숨 쉬고 있는데, 이대로 지내기에 제가 그렇게 위험한 상태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허무주의 명상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회원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는 긴 역사 속에서 모두 감정을 나누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쁜 감정은 외면받는 사회가 되어버렸죠. 그것뿐입니다.”


무기력에 빠진 배 나온 중년 남성이 손을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꿈이 없는 채로 일을 계속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도 제가 꾸준히 일을 하니까, 남들보다는 좀 더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큰 무력감이 찾아오더라고요. 집에 있으면 손끝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어져요. 며칠 전엔 아내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왜 혼자서만 유난이냐고. 제가 너무 의지가 약해서 문제라고…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남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잠시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노년의 여성이 말을 시작했다.

“저는 지난주에 아들 면회를 갔다가, 아 다들 아시겠지만 아들이 중독으로 입원 중이라는 건 다들 아실 테지요. 그런데 지난주에 아들의 손 발이 베드에 묶여있는 걸 보게 되었어요.”


노년 여성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들이 저를 보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며…”


여성의 어깨가 살며시 들썩였다. 지금까지는 담담하게만 말하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는지 다음 차례로 넘어가라는 손짓을 보였다.


허무주의 명상가가 다음 사람을 쳐다봤다. 바로 소년이었다.

“저는.. 상처받았던 기억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순간 같은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습니다. 억지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난번 봤을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울적해진 모습의 화가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저는 최근 며칠 동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엊그제 제가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젊은이 무리들이 다가오더군요. 저는 제가 그린 정원의 햇살과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소년의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다가와서 제 그림을 보고 비웃더군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라며. 저 같은 사람 때문에 세금이 줄줄 새는 거라고 했죠.”


화가는 잉크가 지워지지 않아 얼룩진 투박한 손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면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옮기는 그림이, 그리고 그걸 옮기려고 노력하는 제 노력이, 비웃음 거리가 되어야 할까요? 그래요. 저도 알아요. 제 일은 하나도 생산적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하고, 이제 더 이상은 누군가를 어떻게든 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남자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리며, 점점 상기되어 가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가장 절망적인 건 뭔지 아세요? 제 눈은 걸신들린 듯 침을 흘리며 이 세상을 계속 바라봐야 하고, 저도 모르게 계속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내고 있고, 그걸 그려내지 않으면 못 산다는 거예요. 저를 비웃던 그 청년들, 자기들끼리 말을 하며 웃는데, 왜 그 모습까지도 눈물 나게 아름답게 보이는 거죠? 저에게 막말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까지도, 저는 왜 사랑하게 되는 거죠?”


화가는 점점 흥분을 참지 못하고, 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어 높아져 갔다.


“회원님, 알겠습니다. 너무나 슬프셨겠어요.”


“저도 무감해지고 싶어요.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제 삶만 살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상처받더라도 제 마음은 곧 활짝 열리고 말죠.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남자가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로 절규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저는 사랑하고 싶어요.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저 자신조차도. 그냥 사랑하면 안 될까요? 버려지고 상처 나고 깨지더라도, 저는 사랑해야겠어요. 그게 바로 제가 숨 쉬는 방식이에요. 마음껏 느끼고 사랑하겠어요. 그게 절 죽음으로 내몬다 해도, 저는 사랑할 거예요. 사랑할 거라고요!”


남자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양팔을 허공에 저으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완전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허무주의 명상가는 젊은 화가를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화가는 결국 바닥에 누워 흐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복도에 있는 간호 로봇이 강당으로 들어와 있었다. 화가는 절규하면서 로봇에 의해 끌려 나갔다. 아마도 약물 용량이 증량될 것이다.


남성이 끌려 나가고도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소년의 마음속에서도 그 남성의 고함소리가 쉬지 않고 메아리쳤다.

‘사랑? 그게 아무리 상처를 줘도, 계속 사랑하고 싶다고?’


소년은 그 말의 어떤 부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계속 울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계속 화가의 외침을 곱씹을 뿐이었다.


허무주의 명상가는 가슴이 아픈 듯 한동안 입술을 앙 다물고 마음을 다독이다가, 드디어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뜨렸다.


“오늘 시간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잠시간 소란이 있었던 것, 죄송합니다. 그 화가 회원분은 곧 안정을 찾으실 거예요. 최근에 힘든 일이 겹쳐서, 잠시 흥분했던 것뿐일 겁니다. 여러분 모쪼록 안전하게 귀가하시고, 다음 시간이 뵙겠습니다.”


모두들 조용히 강당 밖으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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