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 나를 놓아줘

by 송영채

소년은 서고 뒤쪽으로 급히 도망치면서 쌓여있는 책무덤에 걸려 자꾸만 넘어졌다. 자기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증발시킬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도 엄마처럼 침대에 누워 삶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발을 바닥으로 더 세게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소년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서로봇이 책무덤을 빙 둘러 소년에게 다가와서 팔을 내밀었다. 소년은 로봇의 팔을 잡고 일어나 서고 뒤편의 철문 앞에 다다랐다. 소년은 녹슨 손잡이를 잡고 돌려 보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온 힘을 다시 힘차게 열어보았지만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도서관 폐쇄 당시 후문에 전자락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강제 개방 불가.

시스템을 재부팅하고, 관리자 권한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관리자 권한? 그걸로 접근할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 지금 잡히면 안 돼. 나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울면서 절규하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봇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뒤로 물러나 주세요.”


로봇은 소년의 손을 물리치고, 문으로 향했다. 로봇의 금속 손가락이 손잡이 위에 놓였다.


“경고, 경고, 과부하 모드 진입 시 시스템 손상이 불가피합니다.”


사서로봇의 몸에서 붉은 불빛이 깜빡이면서 시스템 경고음이 울렸다.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일순간 손끝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검은 연기와 함께 금속 타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의 형제가 사라져 있었고, 그 충격으로 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었다. 사서로봇의 몸에서 점멸해 가는 불빛을 검은 연기가 감싸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곧 사서로봇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힘없이 무너졌다.


소년은 문턱에 주저앉아, 로봇 눈에서 깜빡이는 민트색 불빛이 점차 점멸하다가 흐려져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보던 소년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잠시 후, 도서관에 진입해서 소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소년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소년은 로봇을 뒤로하고 열린 후문의 밖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문밖은 검은 어둠 속에 우거진 수풀로 한 걸음을 떼는 것도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소년을 찾다가 열린 후문을 찾은 사람들이 ‘이쪽이야’를 외치며 소년을 쫓았다. 소년은 울면서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나무줄기와 뿌리들을 뿌리치며 겨우 걷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줄기와 뿌리들이 몸집이 큰 성인을 더 세게 잡아당긴다는 점이었다.


겨우 숲길을 벗어난 소년의 눈앞에 노란색 자동화 모바일이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그 안에 탄 남자가 소년에게 외쳤다.


“빨리 타!”


놀란 소년이 창문 안을 들여다보자, 교정국 청소년과 과장의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저, 잡아가시는 건가요?”


“아니야.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잡혀가면 안 돼. 일단 타봐. 급해.”


소년은 청소년과 과장의 재촉에 엉겁결에 차에 올라탔다. 차문이 닫히자마자 차는 급히 출발했다.


“과장님이랑 같이 일하시는 분들 아니에요? 저를 쫓아오던 분들..”


“응 맞아. 내 부하들이지.”


“근데 왜, 저를 태워주셨죠?”


소년의 질문을 듣고도 청소년과 과장은 한참 대답이 없었다.


침묵 속에 달리다 보니 차는 도시 외곽을 벗어나 어느새 시내에 진입하고 있었다.


“너랑 같은 나이였어. 내 아들.”

과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힘든 점이 있었나 봐. 하지만 내가 교정국 직원이니, 말하기 힘들었겠지. 아내는 경찰이었어. 부부 둘 다 강성이었지.”


과장에게 소년 같은 아들이 있었다는 갑작스러운 고백에 소년의 마음은 과장의 뒷 이야기를 짐작하느라 바빠졌다. 자신의 미래도 함께.


“마음의 힘든 점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아. 아들이 조금씩 우울해하고 방황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서 모니터링에선 큰 문제가 없게 나와서 방심했던 것 같아.”


소년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방 밖으로,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기 시작했지.”


과장은 한번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봤더니 정서 모니터링을 속이는 방법을 써왔던 거더라고. 알음알음 그런 정보가 퍼지고 있었나 봐. 실제로 다시 측정해 보니, 심한 우울증에 해당하더라고.”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빠져 있다가, 소년이 생각났는지 흘끔 뒤돌아 소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와 아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교정국의 처분에 따랐지. 교정국의 약물 교화가 오히려 사람들을 약물 중독으로 만들고, 그들의 영혼을 영원히 잠들게 하는 대가로 인구붕괴를 막는 고육지책일 뿐이라는 비난은 나도 익히 듣고 느끼고 있었어. 하지만 그건 초반의 이야기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정부의 이야기를 믿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요? 그게 사실이었나요?”


“처음에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은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자살 충동이 높아지는 결과가 보고되었어. 그래서 정부는 그런 충동을 더욱 억제하기 위해 더욱 강한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 시점 이후로 약물교화 대상이 되면, 오히려 숨이 붙어있는 시체가 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사실 현장에서 본 것도 그 말과 다르지 않았어.”


남자는 소년의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논란이 일고 인권 운동이 거세지자, 정부는 다시 약물교화 시스템의 방향을 다시 설정했다고 했지. 의료진의 경험을 앞세우고, 방대한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개인별 맞춤 처방을 정교하게 실시한다고 말이야. 나와 아내는 그 말을 믿었어. 아니, 믿어야만 했지. 그렇게 우리 아들을 맡겨야만 했어. 그게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 같았지.”


“아드님은 어떻게 되셨죠?”


“우울증은 없어졌어. 대신 다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


과장은 얼굴을 양손에 파묻으며 잠시 감정을 추슬렀다.


“아들의 인격을 잃은 다음에야,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이 시스템의 허상을..”


손에 파묻었던 얼굴을 다시 들어 보이며 남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고,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어. 하지만 그런 노력의 결과가 언제 우리 사회의 현실에 적용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지금도 내 손으로,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잡아서 교화대상으로 넘겨야 한다는 거야.”


“저도 이제 교화대상으로 넘겨지는 건가요?”


남자는 뒷자리의 소년을 흘끗 쳐다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널 오랫동안 관찰했어. 어디론가 도망치려 하다가, 단체상 담을 받으며 안정되어 가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방금 전 네 돌봄 로봇의 제보를 받고 적잖이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너에게는 적어도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어 졌어. 침대에 누워 잠만 자는 아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거든. 이렇게 숨을 억지로 붙여 놓는 게, 아들에게 좋은 선택인지.”


어느새 다시 도시 외곽을 달리고 있던 노란 차는, 오래된 구식 건물 앞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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