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다니던 도서관 사서 로봇의 데이터에서 주소 하나를 찾았단다. X박사의 증발센터를 찾아가려고 했던 모양이지?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주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위치를 옮겨야 했거든.”
예상치 못한 청소년과 과장의 말에 소년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네? 그걸 알고 계셨나요?”
“여기가 몇 년 전 새로 옮긴 주소란다.”
과장의 답을 듣고 놀란 소년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했다. 청소년과 과장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따라가기 벅찼다.
“왜 저를 여기로 데려다주신 거죠?”
“정부가 원하는 건 자살률의 안정뿐이더구나.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고 해서, 신고되는 건수도 적고, 그런 미미한 수치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 그래서 나는 선택권을 주기로 했어. 적어도 내 아들 또래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말이야. 이제 네 미래는 네 선택에 달렸다. 들어가 보렴. 안에 X박사가 있을 거야.”
소년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면의 야트막한 3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콘크리트가 발라진 오래된 건물의 창문에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년은 잘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따라가려 애쓰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 무작정 집을 나와서 도서관을 찾았던 첫 번째 이유는, 깊은 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서로봇의 기억을 되살려 다시 X박사의 위치를 손에 넣게 되면서, 소년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금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삶은 비로소 다시 단순해졌다. 하지만 교정국 청소년과 직원들이 찾아와서 도망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과장을 만났고, 그 과장이 데려다준 곳이 바로, X박사의 새로운 증발센터 앞이었다.
소년의 뒤에선, 소년을 이곳으로 데려다준 노란 차가 다시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손목에 전자팔찌가 채워져 있던 자리에 대신 남은 작은 상처를 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나는 이제 정말 자유로워진 걸까?’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그 상처를 쓰다듬었다가, 상처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얼굴이 일순 구겨졌다. 현실감을 되찾은 소년이 정문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착한 현관문 앞에서 소년은 담담하게 버튼을 눌렀다.
‘띵동’
벨 소리가 울렸다. 아주 오래된 소리처럼 느껴졌다.
‘누구시죠?’
로봇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저는… X박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미처 생각지 못해 당황한 소년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잠시 후에, 현관에서 ‘띠링’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간 소년은 길게 나있는 복도를 따라서 걸어 들어갔다. 낡은 외양과는 다르게, 건물 안쪽은 최신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년의 키만 한 보조 로봇이 소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3층으로 올라가세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년은 로봇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엔 수많은 버튼이 달린 책상이 놓인 작은 방이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으로 내부가 훤히 보였다. 건너편에는 유리로 된 원통형 캡슐이 세워져 있었다. 방 어디에도 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소년에게 로봇이 말했다.
“캡슐 안에 계십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
소년이 의아해하며 캡슐 앞으로 다가가보았다. 원통형 유리 캡슐의 앞에 달린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중년 남자의 마르고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한참을 말없이 소년을 바라봤다. 꿰뚫어 보는 듯한 서늘한 눈빛에 기가 눌린 소년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X박사님을 뵈려면 3층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내가 X박사다. 왜 왔지?”
박사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물었다.
“증발을 돕는다고 하셔서. 책에서 봤어요.”
“아. 그 메시지를 보았나? 아마도 10년도 넘은 것 같은데. 이제 책을 읽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 책을 보고 왔다니, 조금 신기하군.”
박사는 소년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읊조리더니, 다시 소년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증발을 하고 싶어서 온 건가? 어떻게 이곳을 찾았지?”
“사실 이사하기 전 주소로 갈 뻔했는데, 교정국 직원이 직접 앞에 내려주고 갔어요. 제가 여길 찾는 걸 알고 있더라고요.”
소년의 말을 듣고 박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부의 교화정책에 반대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어.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선택과 자유를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지. 몇 번 정부로부터 쫓기고 도망칠 때도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교정국에서 사람들을 하나 둘 데려오더군. 세상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말끝을 흐리며 다시 소년을 바라보기 시작한 X박사의 서늘한 눈빛에 주눅이 든 소년은 눈을 떨구며 박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주무시고 계셨나요? 너무 늦게 죄송합니다.”
소년의 말을 듣고 박사는 주위를 둘러보다 뭔가를 깨달은 듯이 말했다.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이건 침대가 아니야. 이게 바로 증발 캡슐이지.”
“증발 캡슐이요?”
“이 캡슐로 지금까지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죽을 자유를 선사했단다.”
소년은 생각보다 큰 숫자에 깜짝 놀라 다시 박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작년에 불치병을 진단받았어. 처음엔 평소와 별 다를 게 없는 몸상태여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갈 수 있을지 알았어. 그런데 최근들에 통증이 심해지더구나. 나도 이제 이 캡슐에서 증발할 시간이 다가온 거지. 그래서 마지막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현관에서 벨이 울리더구나.”
“지금 여기서 증발하려고 하신 거라고요?”
소년은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질문했고, 스스로의 소리에 약간은 더 움츠려 들었다.
“그래. 그런데 막상 내 버튼을 누르려다 보니, 주저하게 되더구나. 사실 1시간 가까이 이 캡슐 안에 들어와 있었어.”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박사의 얼굴에 일순간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