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 피로 물든 발자국을 남기며 집을 찾아오는 동안, 소년은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거리에는 청소 로봇만이 끼익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청소 로봇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소년은 자신의 방 침대로 피신하듯 몸을 던졌다. 돌봄 로봇은 그런 소년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봄 로봇은 돌봄의 기능만, 로봇세계의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네트워크의 내부에서 어떤 데이터가 오갈지, 소년은 알 수 없었다. 소년은 한참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다가 로봇의 인기척에 정신을 차렸다.
“문 앞에 붕대가 있습니다. 처치 후 식탁으로 오세요. 아침 식사를 차려놨습니다.”
소년은 도저히 아침 식사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밤새 숲길을 달려왔지만, 피곤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신의 몸상태가 어딘가 이상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씻고 나서 먹을게.”
소년은 짧게 답하고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붉고 검은 구정물이 되어 바닥으로 흘러 내려가서, 생활감 없이 깨끗하던 바닥 타일을 순식간에 더럽히고 있었다.
소년의 몸에 샤워기의 물이 닿자, 잊고 있던 어깨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엄마가 소년을 찌른 상처였다. 어깨와 발바닥의 통증과 손목의 따가운 감각이 돌아오자,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정처 없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X 박사에게 가서 증발하면 된다는 소년의 아주 간단한 삶의 정답지가 찢겨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약물치료를 받게 되는 걸까? 잊고 있던 생각이 다시 어렴풋이 찾아왔다. 그리고 소년은 증발센터의 굉음과 구름모양의 폭발운을 다시금 떠올렸다. 박사는 증발한 걸까? 이제 그는 더 이상 고통 없는 세계로 간 걸까? 마지막으로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나 샤워를 끝낸 소년은 왼발에 붕대를 두르고 새 옷을 입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침은 도저히 못 먹겠네.”
소년은 식탁을 지나치며 돌봄 로봇에게 말했다.
“스무디를 드리겠습니다.”
소년은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로봇이 스무디 한 컵을 들고 왔다.
“4대 영양이 골고루 함유된 식사대용 블루베리맛 스무디입니다. 남기지 말고 다 드세요.”
소년은 컵을 받아 들곤 귀찮다는 듯이 문을 닫았다. 요일감각이 없어진 소년은 문득 시계를 보았다. 로봇이 엄마에게 레그밀을 줄 시간이지만, 밖은 너무나 조용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소년은 잠시 후 조용한 틈을 타서 거실로 나갔다. 엄마의 방이 고요했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엄마의 방문을 다시 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바로 어젯밤에 엄마에게 어깨를 찔렸다는 생각이 났지만, 지금 당장 문을 다시 열고 싶다는 충동은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아마도 찢겨져서 펄럭이고 있는 소년의 마음 속에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처럼 느껴졌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엄마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소년에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런 걱정도 더 이상 현실감을 잃은 소음처럼 느껴졌다. 어깨를 찔린 상처 따위도 더는 소년을 묶어둘 수 없었다. 엄마의 방문을 돌려 여는 것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고, 소년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의 떨리던 손은, 오히려 방문을 잡는 순간 고요해졌다.
소년은 방문을 돌려 열었다. 문이 열리자 소독약 냄새와 약냄새, 그리고 오래된 먼지 냄새 같은 것이 소년의 코를 찔렀다. 닫힌 블라인드로 새어들어오는 빛이 방안을 쟂빛으로 밝히고 있었다. 어제의 사건 이후로 진정제를 높은 용량으로 맞았는지, 엄마는 아직 침대에 묶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뒤돌아 나가려는 찰나, 엄마의 화장대가 소년의 눈에 띄었다. 펼쳐진 엄마의 노트 위에 피 묻은 펜이 그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로봇이 바닥에 떨어진 피는 닦았지만, 펜과 노트에 묻은 피는 놓친 모양이었다. 소년은 갑자기 어젯밤의 소동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가, 살며시 다시 떴다. 펼쳐져 있는 노트에 새겨진 흔적이 얼핏 눈에 비쳤다. 검붉은 핏방울 옆에 무슨 글자가 보이는 듯했다.
소년은 화장대에 가까이 다가갔다. 펼쳐져 있는 노트에 떨어진 핏자국 사이로,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득 차 있었다. 엄마처럼 조용히 무너져 내린 글자들이었지만, 무너진 그대로도 읽을 수 있는 글씨였다.
소년은 그 글자들을 읽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