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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밤송편과 남은 마음

by 하우주

추석 긴 연휴를 핑계 삼아 5박 6일을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얼마 되진 않지만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명절 동안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식구라고 해 봐야 못 오는 형제들을 빼면, 조카가 하룻밤 들렀다 가고 오빠네는 당일에 와 밥만 먹고 돌아가니 주로는 부모님과 나, 셋이었다. 셋이 연휴 기간 동안 잘 먹고 잘 지내보겠다며, 배추를 사 김치를 담그고, 아빠는 딸에게 맛을 보이겠다며 거금을 들여 국내산 송이버섯을 사 오셨다. 손이 많이 가는 송편이나 전은 몇 해째 조금씩 사다 먹는다. 조카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배추전, 고구마튀김 등을 하던 풍경은 이젠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까마득하다. ‘시끌벅적했던 그때가 재밌었지’하고 웃다가도, 아지까지 지금의 네 식구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지내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짧은 방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길어야 1박 2일 잠시 다녀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알아채지 못했던 변화들.. 올해 1월 설에도 엄마의 치매 증상이 작년보다 심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10월 추석에도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엄마의 기억이 전보다 더 흐려진 것 같았다. 여전히 멀쩡하실 때도 많기에, 그 괜찮지 않은 순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빠를 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명절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안 한다, 안 먹는다, 안 간다’가 입에 붙은 엄마를 설득해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억지로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나가 보는 일이었다.




추석이니 송편은 먹어야겠다 싶어 미리 SNS에서 봐 둔 떡집에 밤송편과 서리태 송편을 주문해 일찌감치 집으로 보냈다. 추석 당일 온 오빠네와 간식으로 먹으려고 엄마에게 송편을 물었지만 엄마는 떡을 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냉동실을 뒤져 서리태 송편을 찾아 쪄 먹으며 방송편의 행방을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서 그 송편의 존재는 사라진 듯했다.


과일을 즐기지 않는 엄마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일이 단감이다. 일반 단감보다 크고 아삭하다는 태추단감을 2주 전에 보내 드리며, 아껴두지 말고 바로 드시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나의 잔소리에 알았다고, 아빠가 오시면 같이 먹겠다며 아웅다웅하기까지 했는데, 단감을 다 드셨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단감이 어디 있어?”

라고 대답하셨다.


냉장고를 뒤져 보니 오래 보관하실 생각으로 빈 김치통 바닥에 신문을 깔고 단단한 단감을 맨 밑에 넣고, 그 위에 복숭아를 올려두신 채 잊고 계셨다. 이미 아삭함은 사라지고 무르기 시작한 단감을 보고 속상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미안해하시고,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또 속이 아렸다. 과일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엄마에게 먼저 깎아 달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냉장고 속 과일들의 존재를 잊으셨다. 그렇게 비싼 과일들은 냉장고에서 퍼석해지고 물러갔다.


결국 다이소에서 수납 선반을 사 와 냉장고, 김치 냉장고, 냉동고를 모조리 비우고 정리했다. 라벨을 붙이고 고기는 고기대로, 생선은 생선대로 모았다. 깔끔해지고 찾기가 쉬워졌다며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냉장고 음식을 먼저 드시고, 그다음 냉동을 꺼내 드세요. 단출하게 식사하시지 말고 반찬을 이것저것 해 드세요.”

하고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쏟아냈다.

모든 곳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송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떡을 받아 냉동실에 넣어놨다는 엄마의 말에 안심하고 있었으니, 발송 누락이었는지, 엄마가 누군가에게 한 봉지를 주신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맛있어 보이던 밤송편을 맛보는 일을 내년으로 미뤄졌다.



기억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휴 내내 비가 와 서늘하긴 했지만,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엄마가 경량 패딩을 입고 나섰다.

“엄마 아직 그 옷을 입을 날씨는 아닌 거 같은데?”

라고 내가 말하자 엄마는,

“왜? 날씨 추워, 이거 입어도 돼.”

라고 답하셨다. 비싼 옷은 아니라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으라고 늘 말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계절과 어긋난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억력과는 다른 결의 변화였다. ‘치매에 걸리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 떠오르며, 당황 정도가 아니라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엄마 다른 옷도 많은데.. 내가 다음에 와서 옷장 정리해 줄게”

그렇게 엄마에게 다른 옷을 권하며 내 머릿속도 덩달아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렸다.



하루 날을 잡아, 습관처럼 안 간다고 말하는 엄마를 겨우 설득해, 두 분을 모시고 단양에 계신 오랜 지인을 만나고 왔다. 엄마가 동생을 낳았을 때,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해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엄마 몸조리를 도와주셨던 분. 우리 형제들을 데려다가 밥을 먹이던 그분들을 우리 가족은 늘 고마움으로 기억한다. 지팡이를 짚고 배웅을 나오신 어르신들을 뒤로하며,

“엄마 거봐, 오길 잘했지? 와 보면 좋은데 맨날 안 온다 그래.”

라고 타박하자 엄마는

“내가 언제 안 온다 그랬어”

라고 웃으신다. 습관처럼 뱉은 말인지, 정말 기억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다. 나의 기억과 다른 엄마의 기억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서늘해진다.




긴 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아쉽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걱정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고향을 다녀오면 심한 허기가 찾아왔다. 집에 도착한 밤, 라면을 끓이고 과자와 과일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다음 이틀을 꼬박 쉬었다. 그나마 아지 덕분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지겹도록 계속되는 비와 눈치 싸움을 하다가 비가 조금 잦아졌다 싶으면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다녀와서도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가 밤에 캔을 먹으러 올 길냥이 생각이 나 주차장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 둔다. 이번에도 나의 의지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일으켰다.


어쩌면 장거리 운전이 힘든 게 아니다. 잔뜩 싸 온 음식들을 옮기는 것이 버거운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를 달라던, 커트 보니컷의 [제5도살장]의 문장을 떠올린다.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는 엄마의 기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무너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남아 있다. 싸 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어 정리하고, 엄마가 기어이 몰래 넣어둔 단감을 깎아 한 입 베어 먹어본다. 비가 그치면 산책을 나서고, 밤사이 싹싹 비워진 길냥이 그릇을 씻어둔다. 사라진 밤송편은 내년에 다시 주문하기로 한다.


할 수 없는 큰일들 대신,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하며 버틴다. 무너지는 것도, 다시 일어서는 것도, 모두 엄마를 사랑하는 딸의 일상이다. 잊히기 쉬운 오늘의 작은 기쁨들을 오늘 꺼내어 맛본다. 그것들이 엄마의 기억을 되돌리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함께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 내 몫의 오늘을 꺼낸다. 220km 떨어진 엄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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