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
‘정성스럽다’
사전적 의미로 ‘보기에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 있다.’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의 온도를, 어느 가을날 다니는 요가센터에서 또렷하게 느꼈다.
그날도 센터는 계절을 닮아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접수대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꽂혀 사람들을 맞았다. 한 시간의 수련을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앉아 있는데, 유리창 앞 화병에도 가을을 닮은 국화가 꽂혀 있었다. 그 국화가 너무 예뻐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일 센터에 오는 건 아니지만, 수련실 앞의 화병은 늘 싱싱했고 계절의 꽃들로 바뀌며 각자의 속도로 수련하는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센터의 구석구석이 다시 보였다. 따뜻한 차와 간단한 다과, 코너에 놓인 목재 트레이와 색을 맞춘 따뜻한 소품들, 여기저기 놓인 화병의 각기 다른 꽃들과 잘 정돈된 매트들, 과하지 않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공간에 딱 맞는 향까지. 평소엔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 유난히 또렷했다.
‘와, 여기엔 정성이 빠진 자리가 없구나.’
공간이 주는 정성스러움에 감동하며 센터를 나섰다. 어느 곳 하나 마음을 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센터 원장님은 수업할 때도 모든 순간 정성을 다했다. 수업 시간이 종종 초과될 만큼, 한 시간의 플로우가 부족함이 없도록 촘촘하게 수업을 진행하셨다. 동작 하나를 안내할 때마다 우리의 몸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부드럽게 짚어주고, 수업을 끝내면서는 몸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얼마 전엔 센터 5주년 선물이라며 아로마 스프레이를 나눠주셨다. 센터 이름이 인쇄된 라벨과, 작은 쪽지가 하얀 파우치에 들어 있었다. 병의 질감, 고민하여 골랐을 향의 잔향, 리본 매듭까지—모든 것이 “대충”과는 아주 멀었다. 그걸 받고는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원장님은 모든 일에,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야”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가 말해 온 현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문다는 것—그건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태도와 닿아 있지 않을까. 정성은 속도를 늦추고, 시선을 가까이 붙이며, 마음을 한 점으로 모으게 한다. 그래서 정성은 결과를 화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맑게 만든다. ‘잘한다’ 이전에 ‘깊어진다’는 변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정갈하게 돌보는 연습이 매 순간 쌓이면 어느 날 문득 다른 결과로 돌아온다.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현존 그 자체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일상의 대부분은 커다란 결단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다. 문을 여는 손길, 컵을 씻는 물의 각도, 메시지에 붙이는 한 줄의 마음. 여기에 정성이 얹히면, 같은 하루가 전혀 다른 결로 빛난다. 정성은 시간을 더 쓰라는 명령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이 하나를, 인식하고 있든 하지 않든 마음을 담아 제대로 만나는 살아냄이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만나는 결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일상을 다시 살피게 되었다. 문득문득 나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보지 않고 지나쳤던 곳에도 눈길을 두고, 각기 다른 아로마의 호흡을 깊이 음미해 보았다. 가끔 흐트러지는 수건을 다시 잘 맞춰 걸어놓고, 일을 마칠 때는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들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밖으로 향했던 마음이 안을 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렷해진다. 그날의 요가센터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원장님의 미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공간, 시간과 물건을 대하는 태도 - 모든 곳과 모든 것에 배어 있는 정성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정성은 관계의 온도를 바꾸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며, 돌고 돌아 다시 나의 존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의 나는 무엇에 정성을 더할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자주 ‘정성스럽게’를 조용히 읊조린다. 거창하진 않지만 작은 정성의 합이 나의 순간과 하루를, 그리고 삶을 조용히 바꿔 놓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을 정성스럽게 사는 것이 현존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정성은 느림이 아니라 온전함이다.
작은 정성 하나가 오늘의 결을 바꾸고 그 결이 내 삶의 방향이 된다. 유리창 앞 국화처럼 단정히 서서 지금 할 일 한 가지를 온전히 마치기로 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