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 ‘틈’에서 선택하기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lies a space. In that space lie our freedom and power to choose a response. In our response lies our growth and our happiness.
-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 저자 빅터 프랭클의 사상을 요약한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티븐 코비가 자주 인용하며 알려졌다.*
우리는 ‘자동 반응 시스템’으로 산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의 자극 속에 살아간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 갑작스럽게 던져진 업무의 압박, 혹은 간밤에 꾼 개운치 않은 꿈으로 인해 밀려오는 불안 같은 것들. 예전의 나는 이 자극들이 들어오는 즉시 반응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즉시 방어막을 쳤고, 불안이 올라오면 곧바로 더 큰 걱정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써 내려갔다.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 같았다. 자극이라는 피드가 올라오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감정적 반응’이라는 버튼을 클릭해 버리는 자동 시스템. 이런 반응은 매우 일반적이어서 자기 계발의 구루 밥 프록터는 그의 책 『부의 확신』에서 빅터 프랭클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모든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대응 사이에는 틈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틈은 1,000분의 1초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반응’reaction 할 것인지, ‘대응’response’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P154.
앞에서 이야기해 온 REMEMBER의 흐름 – 기억하기, 관찰자의 자리에서 바라보기,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허용하기 – 은 사실 이 자동시스템에 조금씩 균열을 내는 연습이기도 하다. 자극이 오면 즉시 반응하는 삶에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내는 삶으로.
틈(Space)의 발견: 반응하기 전에 멈출 수 있는가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발견했던 것은, 외부의 자극이 아무리 가혹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었다.(불교의 일체유심조와 맞닿아 있다.) 그 선택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다.
관찰자의 자리는 이 ‘공간’을 벌리는 지렛대가 된다. 자극이 올 때 곧바로 반응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아, 지금 이런 자극이 왔구나’라고 바라보는 순간, 우리 안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한 틈이 생긴다. 그 틈은 거창한 명상이 아니라, 단지 멈춤의 찰나가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굳이?’: 내가 만든 공간의 이름
몇 달 전,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된 사람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인집에서 심하게 학대를 받아 구조한 강아지를 입양하여 8년째 키우고 있고, 진도믹스 특성상 실내 배변을 하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키며 생활하고 있다는 나의 이야기에 상대방이 말했다.
“어휴... 왜 그렇게 살아요?”
“네?”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깐 멈췄다. 하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쾌함이라는 감정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고 스타트 라인에 발을 떼려는 찰나, 한 문장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나는 출발을 멈추고 다시 정지선으로 돌아와 그 사람을 바라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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