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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Nov 28. 2023

단상_호구의 역사 I

무이자로 300만 원을 빌려준 후

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호구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어수룩하다는 것의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꽤나 호구스러운(?)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소소하게 삶에 스며들어 호구스럽게 산 기간도 있었고,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호구스러운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이제 와 그런 경험들을 상기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중은 아니고, '나'라는 사람을 찬찬히 자꾸 뜯어보고 살펴보다 보니 잘한 일, 잘못한 일, 좋은 기억,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어서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지난 경험들 중에 좋은 기억들은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나쁜 기억들은 퇴색되어 나빴었다는 느낌도 없고 당시의 분노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냥 '그랬었지' 하고 툴툴 털고 넘어가게 되는 듯하다. 이런 걸 보면 마이클 A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의 한 단락처럼, 그 일이 그날이 기쁨이 되게 하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기억에 남는 나의 호구의 역사 중 획을 긋는 사건이 몇 개 있는데 그중 첫 번째 일은 친구 녀석에게 돈을 빌려준 일이었다.

내가 첫 직장을 다닐 때, 나의 고향 친구 녀석 한 명은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해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기, 경영학과인 녀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였고, 어학연수가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아는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내가 어학연수를 하던 곳으로 친구는 어학연수를 왔다. 가난한 학생이던 녀석에 비해 나는 과외며 알바며 이것저것 돈벌이를 하고 있었기에 비싼 한국 식당도 가끔 같이 갈 수 있었고, 내가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내가 살던 숙소를 그대로 넘겨받아 편하고 저렴하게(?) 여러 비용들을 아끼며 녀석이 살 수 있도록 나는 나름의 배려를 해 주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부모님들끼리 아실 정도로 가까운 친구 사이였고 친구니까. 그 이유가 전부였다.


녀석은 6개월 계획이었던 어학연수를 1년을 채우고 한국에 돌아와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대기업에 입사지원을 했다가 연이어 낙방을 하고는 사업을 생각해 보겠다며 대학 졸업 후 다시 어학연수를 했던 곳으로 갔다. 사업을 해 보겠다는 친구 녀석을 나는 열심히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운이 좋게 기회가 생겨 해외에 파견근무를 가게 되었고, 해외 근무를 하던 중에, 그 친구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여러 아이템들을 해 보다가 안정적으로 아이템을 선정하고, 사업을 세팅하고 조금씩 진행이 되는 중인데 한국돈 300만 원 정도가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업체들에게 지불해야 할 대금을 못 주고 있는데 이번만 넘어가면 사업이 풀릴 것 같다고 했다. 몇 달 후에 꼭 갚겠다며, 그리고 20%의 이자를 주겠다는 녀석의 부연 설명과 돈이 왜 필요한지, 사업계획 프레젠테이션 같은 친구의 설명을 한참을 듣고, 오죽 급하면 해외에 있는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싶어 나는 흔쾌히 300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파견근무를 하고 있었던 덕에, 나는 한국에서 받는 월급을 거의 대부분 모으고 있었기에 여유가 있었다.


"우주야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내가 이자 20% 줄게!"

평소에도 꽤나 허풍이 있던 녀석이라, 나는

"20%? ㅋㅋㅋ 야! 이자는 급한 불 끄고 나면 이야기해라 다시."

하고 바로 300만 원을 송금해 주었다. 그리고 한 달 즈음 후, 내가 급한 불은 껐냐고 연락을 하자 친구 녀석은 진행 중이긴 하나 아주 급한 불을 껐다며, 네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그 300만 원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며 녀석은 장황하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행이다~라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친구 녀석은 또 이야기했다.

"야 내가 진짜 이자 잘 쳐줄게!"

그리고 나는 또 대답했다.

"급한 거 좀 정리되면 다시 이야기하자, 잘해 봐"

그 이후 두세 달 정도 녀석은 연락이 없었다. 뭔가 정리는 된 건지, 별일은 없는지 나는 다시 녀석에게 연락을 했다.

"잘 되고 있냐?"

당시 공급업체들에게 당장 줘야 할 돈이 300만 원 정도였는데 그걸 나에게 빌려 주고난 후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녀석은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야 근데 우주야, 아직 너한테 갚을 정도는 아니다. 1년 뒤에 줘도 되겠냐?, 내가 상환 날짜는 정확하게 빌린 날로부터 1년 후로 할게"

"그래라"

"야! 내가 이거 이자에 더해서 백화점 정장 한 벌 해줄게!"

또 큰소리를 치는 녀석에게 나는 대답했다.

"그럴 여유 있냐? ㅋㅋㅋ, 이자 얼마로 줄지 지금 얘기할 수 있어?"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녀석은 몇 달 후에 한국에 잠시 귀국하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또다시 그러자고 했다.

다시 3개월쯤 후,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는 녀석이 연락을 했다.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은 없어서 전화로 대신한다면서 돈을 갚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업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야 우주야! 내가 꼭 1년 안에 갚을게. 그리고 이자로 너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 내가 다 사줄게!"

어라? 이자 20%는 어디로 사라지고 책만이 남았네? 나는 전화를 끊으며 피식 웃으며, 그래 정신없겠지 지금.. 그렇게 녀석을 또 쿨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이후 녀석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돈을 떼일 일은 없었다. 녀석의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었고, 정말 튄 거라면 여전히 한 도시에 사시는 부모님이라도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나는, 낯선 땅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 녀석이 대견스러웠다.


친구 녀석의 사업은 점점 잘 되고 있다고 했다. 그 위기를 넘기고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에 친구 녀석의 사업체는 몇 십억 단위의 매출을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직접 연락이라도 한 번 하면 좋으련만, 조금씩 서운하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준 지 1년이 다 되었을 무렵, 친구 녀석이 업체들 미팅 때문에 한국에 잠시 들어올 거라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사업이 성장하고 있는 녀석이 한국으로 귀국한 나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단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사회 초년생들인 우리 기준에 꽤나 비싸게 느껴지던 강남 주변 어딘가에서 해산물 뷔페를 친구들에게 사주고, 친구 녀석은 또 미팅이 있다며 황급히 자릴 떠났다. 따로 나에게 이야기를 한 건 없었다. 지금 생각나는 건 지하철 역 근처의 분위기와 바쁜 척하며, 그러나 자신감 넘쳐 보였던 친구의 표정만이 떠오를 뿐이다.


돈을 빌려준 지 1년이 되는 날, 나는 녀석의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을 더 기다리고 나서 나는 연락을 했다.

"C야, 지난주 00일이 내가 너한테 300만 원 빌려준 지 일 년 되는 날이었다. 알고 있냐?"

"어, 야 우주야! 미안하다! 내가 너무 바빠서 놓쳤네. 오늘 당장은 안 되고 3일 후에 줘도 되겠냐?"

".... 그래라."

"야 내가 너무 바빠서 또 미팅 들어가야 돼서 끊을게"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는 녀석에게 나는 말했다.

"C야, 너는.. 사업한다는 놈이 이런 날짜도 못 지키면 되겠냐"

나는 참았던 말을 기어이 꺼냈다. 녀석은 잠시 침묵하다가

"야 미안하다. 나 미팅 땜에 끊을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일 뒤, 이자는 단 1원도 없이 정확히 300만 원을 녀석은 보냈다.

'고맙다, 급할 때 잘 썼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후로 녀석은 연락이 없다가, 결혼식을 한다고 하여 친구들과 함께 갔다가 얼굴을 한 번 봤고 그 이후 1세대 온라인 플랫폼 사업으로 승승장구하여 1000억대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도 들었고, 회사를 대기업에 매각했다는 이야기 또한 뉴스로 접했다. 나와는 돈을 갚은 후 진작부터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연락은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문득 생각이 나 녀석의 이름은 검색해 보았다. 회사를 매각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른 사업을 하며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녀석의 기사가 여러 개 눈에 띈다. 씁쓸한 마음으로 녀석의 기사를 읽는다.




약 15년 전, 당시의 300만 원은 꽤나 큰돈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고민 없이 그 큰돈을 빌려줄 수 있었던 건 녀석이 친구였기 때문이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알게 되어 대학까지 서울경기권에서 같이 다니며 함께 해 온 시간이 있는 나름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가질 때 이 사람과의 인연이 나에게 득일까, 실일까를 계산하지 않았다. 그 계산을 눈에 띄게 잘하는 녀석이었던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조건 없는 도움을 줬었고, 아마 이렇게 오랜 시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꽤나 서운했고 그 녀석이 미웠었나 보다. 잘 나가는 대표가 된 녀석이 부러웠을 수도 있겠다.


조금 세상 물정을 알고 나서 당시를 회상했을 때, 그때 그 급전 300만 원을 왜 회사 주식으로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싶기도 했다.

‘난 어쩜 이렇게 약질 못하고 호구짓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나 스스로 답답하기도 하고 속이 터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제야, 세상 이치를 알고 난 다음에야(참으로 오래도 걸렸고, 더디고, 아직 갈 길이 멀다만...) 생각해 보면, 아마 그 당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은, 내가 그 당시에 그걸 담을만한 그릇이 안 되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주었던 도움은 또 돌고 돌아, 내 삶의 어느 순간의 누군가에게 준 도움이, 너무도 절실한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고 또다시 돌고 돌아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 돌아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손해 봐도 괜찮아'..

손해 봐도 괜찮다고 하셔서, 약지 못하게 자라서 늘 손해 보며 사는 건 아닌가 억울할 때도 분명 있었지만,

‘세상이 빨라져서 또 돌아와'

라고 하셨던 엄마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따뜻하게 친절하게 살다 보면 또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계속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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