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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Dec 05. 2023

엄마와 운동 사이

훗날 나는 어떤 선택을 덜 후회할까

어느덧 70대 중반도 넘어버리신 엄마의 디스크가 다시 탈이 났다. ‘다시’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년도 더 전에 간단한 축에 속했던 시술을 받으신 후 7년 전 통증이 재발하셔서 주사 시술을 받으셨고, 잘 지내시다가 한참이 지난 얼마 전, 참을성이 상당히 많은 엄마는 병원을 예약해 달라고 하셨다. 어지간히 아프신 모양이었다. 부랴부랴 다녔던 병원에 예약을 하고, 엄마는 날짜에 맞춰 김장을 끝내고 올라오셨다. 엄마는 딸 집에 도착한 그날부터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3일을 내리 주무셨다. 어지간히도 피곤하셨나 보다. 잠시 잠시 나누는 대화에서 엄마는,

“내가 이렇게 편한 적이 있나”

라고 하시면서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셨다. 하긴..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지금은 아빠 식사 챙겨드리느라 엄마에겐 휴일이라곤 없었다.


걱정스럽지만 회사에 가야 하는 나를 대신해 냥아들이 할머니 곁을 지켰다. 할머니 다리 옆에서 내내 같이 잠을 청하던 나의 냥아들은, 할머니가 깨시면 간식을 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보채며 할머니를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고 했다.

 



3일이 지나 엄마는 새벽에 나와 같이 일어나시기 시작하셨고, 내가 회사에 가고 없는 시간 동안 냉장고를 비롯한 집구석구석을 치우시기 시작하셨다. 지난번에 너무 잘 고쳐놔서 안 아끼고 허리를 쓰신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를 더한 병원 진료와 치료 후에는 통증도 조금 나아지신 듯했다. 조금 나아진 엄마를 보니 슬그머니 다시 나의 일상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마침 가장 좋아하는 운동 세션이 있는 날이라 출근길에 운동복을 챙겨 나가며 밤 9시나 돼야 집에 들어올 거라 미리 말씀을 드렸다.

“밤 12시에 들어와도 엄마는 괜찮다”

라고 엄마는 대답하셨고, 나는 며칠 하지 못한 운동을 다녀와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불편해지며 여러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통화를 하며 점심을 챙겨 드셨냐고 묻자 엄마는 "혼자 있으니 대충 먹지 뭐"라고 하셨었다. 운동도 가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저녁도 먹고 싶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난 훗날 무엇을 후회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를 스친 생각을 붙잡아, 차분히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무엇을 더 후회할까..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한 오늘을 후회할까, 운동을 가지 않은 오늘은 후회할까.'

그렇게 질문하니 답이 명쾌해졌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을 후회할 것 같았다. 더 고민할 것이 없었다. 운동 센터에 카톡을 보냈다.

‘이번 주는 운동 쉬겠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짐을 챙겨 후다닥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그냥 집으로 갈게~ 같이 저녁 먹자~ 이번 주 운동 쉬려고"


12시에 들어와도 괜찮다던 엄마의 반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럼 무가지고 온 걸로 된장찌개 끓이고, 양배추 삶아놔야겠다. 천~천~히 조심히 와".

신나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괜스레 울컥했다. 어쩌면 당연히 엄마와 저녁을 먹어야 하는 건데, 그걸 고민하고 있던 나라는 딸년도 참 어리석다.. 자책도 했다. 이틀을 더 엄마와 저녁을 먹고, 산책길에 편의점에 들러 2+1 월드콘을 사서 밤 10시에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하며 먹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엄마와 냥아들의 밀당을 깔깔거리며 동영상을 찍었다.


엄마를 모셔다 드리던 날, 일주일을 엄마와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나의 고백에 엄마는,

“엄마가 있어서 귀찮거나 불편하진 않았나”

하셨다. 나는 '너무너무너무 좋더라'라고 대답했다.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엄마가 자주 오면 좋겠다고도 대답했다.




훗날, 나중에 나이를 더 먹은 후에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고, 흘러간 시간에 미안해지지 않게 살아내자고 나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그저 마주하는 일상에 쫓겨, 살아가는 것이 아닌 생존하며 시간을 보낸다.

언제나 항상 그럴 순 없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마주하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 훗날 나는 어떤 선택을 더 후회할지 저울질해 보고 덜 후회할 선택을 해야겠노라고 새삼스레 다짐한다. 그러면서 내가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이 이리도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열심히만 살지 말고..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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