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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Nov 02. 2023

엄마와 엘리베이터

키보드의 입장

한 8년 전쯤, 평생을 시골에서만 사신 엄마가, 한동안 자주 올라오셔서 나와 같이 지내신 기간이 잠시 있었다. 답답하시다며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좋아하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 챙기시던 아빠의 끼니도 안 챙겨주시고! 올라오셔서 딸을 챙겨주셨다. (남편보다 자식이 중요할 때도 있으신 것으로...) 엄마와 딸은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그것이 또 속상해 서로서로 화를 내며 싸우기를 반복했다.


어느 하루, 엄마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시 살았던 오피스텔이 7층이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화살표가 아래로 향하는,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다. '잘못 누르셨나 보다' 생각하며 올라가는 버튼을 다시 눌러놓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다음 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엄마는 7층에서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상향 버튼을 누르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엄마는 1층 엘리베이터의 하향 버튼을 누르셨다. 단순한 실수가 아닌 듯하여 나는 물었다.

"엄마 우리 올라가야 하는데 왜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 아침에는 7층에서 올라오는 버튼을 누르더니?"


엄마의 대답..

"1층에선 내려오는 거 눌러야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엘리베이터 내려오라고. 7 층서는 올라오는 거 눌러야 엘리베이터가 올라오지"

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마의 대답에 나는 한참 멍해져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1층으로 엘리베이터 내려오라고 내려오는 버튼 누른 거야? 7층에서는 엘리베이터 올라오라고? ㅋㅋㅋㅋㅋㅋ"

엘리베이터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엄마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겨서 나는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었다.

"엘리베이터야 올라와~ 우리 태우러 올라와~

엘리베이터야 내려와~ 우리 태우러 내려와~"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는, 언제나 이렇게 늘 배려가 넘치는 분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늘 조심하면서 사신 분이다. 식당에 가서도 내 돈 주고 먹는 밥인데도 엄마는 항상 과하게 고마워하시고, 오피스텔을 청소하시는 분께도 아줌마 특유의 붙임성으로 맥심 커피를 타다 주시고 경비실 아저씨께도 오며 가며 음료수라도 하나 주셔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때론 식당에서 반찬을 더 달라고 하여 더 갖다 주면 무조건 다 먹어야 하는 일도 있고, 불필요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도 있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다. 평생을 길바닥에 쓰레기 하나 버리시는 일 없고, 풀 한 포기 벌레 하나(모기 녀석 제외) 함부로 하시지 않으셨고, 여행을 가 호텔을 이용하면 체크아웃을 할 때조차도 마치 체크인을 한 듯 쓰레기 하나 없이, 이불 정리까지 깔끔함을 유지하셨다. 남의 것이라고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조금 더 부지런해야 했고 더 피곤해야 하고 더 신경 쓰며 사셔야 하는 수고로움을 평생 감당하고 사신다.


엄마의 엘리베이터 일을 겪은 후, 나는 엄마의 몸과 정신에 배인 '배려'라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했다. 벌써 8년도 전의 일임에도 나는 그날 느꼈던 엄마의 배려에 대해 감탄했고, 그리고 한편으로 평생 그렇게 가족들과 타인들과 모든 것들을 배려하고 사셨음에, 그래서 아마 본인은 정작 돌보지 못하신 건 아닐까 속상하기도 했다.  




오늘 엄마의 엘리베이터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은, 보통 부서마다 한 명씩은 있는, 키보드에 화풀이하는 직원을 이틀 겪고 나니 정신이 산만해져서이다. 이들은 키보드를 통해 본인의 기분을 드러낸다.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탁! 탁! 탁! 언제나 마무리는 엔터 키를 탁! 탁! 세게 내려치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 직원의 기분이 괜찮은 날이면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는 조용하고, 기분이 별로인 날은 저러다 '키보드 부서지겠다' 싶을 정도로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가 커진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잠깐이 아니라 몇 시간씩 지속되면 귀에 키보드 소리가 따라다니며 귀가 먹먹해져 온다.


타 부서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어? 그 직원도 그래요? 저희 팀장님도 그래요!"

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직원이,

“키보드를 없애야 해요, 온 감정 표현을 키보드로 해요. 자판 부술 거 같아요"

라고 하길래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키보드는 죄가 없어, 사람이 문제지. 키보드도 고통받는 중이야."

"ㅋㅋㅋ 맞아요 그래요, 키보드도 불쌍해요"


이렇게 웃으며 쌓인 스트레스들을 풀다가 불쌍한 키보드를 생각하니 엄마의 엘리베이터가 떠올랐다. 엘리베이터를 배려한다는 건 조금 웃기지만,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엄마의 배려로 엄마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중한 듯하다.

엄마가 소중히 대하듯, 상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도 엄마를 소중히 대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글을 쓰다가 문득, 나의 키보드 자판 소리를 들어본다. 키보드 소리가 파티션을 넘지 않도록… 늘 조심할지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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