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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Oct 30. 2023

나는 오늘도 퉤! 근을 한다.

회사 생활의 기록

회사의 근무 시간은 정해져 있다. 보통 9시부터 6시, 점심시간 포함하여 9시간이다. 출퇴근 시간,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등등을 합하면 아마 1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 이상 소요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면 그 시간은 더 늘어난다. 내가 하루에 일을 위해 몇 시간을 쓰고 있는지 계산해 보았다. 나의 경우 준비시간+출퇴근 시간+근무시간을 합하면 12~12.5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이니, 이 시간이 즐거워야 하고 알차게 보내고 싶다. 그래, 즐겁게.. 즐겁게 보내고 싶다.


아침 출발을 조금 서두르면, 도로가 조금 덜 막힌다. 5분 빠르면 10분 정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회사에 도착해서 보면 이미 도착해서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잠을 잘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책을 읽는다. 한 페이지를 읽는 날도 있고 서너 페이지를 읽는 날도 있다. 그래도 한 줄이라도 읽는 게 어디냐.. 스스로 위안을 하며 근무 시간 15분 전에 사무실로 올라간다. 사무실에 근무 시간 한참 전에 도착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언제나 매번 일찍 나온 윗분들이 일을 시켰다. 일을 하려고 일찍 나온 게 아니라 아니라 내 시간을 가지고 싶어 일찍 나온 건데 그조차도 내 맘대로 안 된다.


오전에 일들을 끝내고 나면 엄청나게 허기가 진다. 점심을 건너뛰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간식으로, 요깃거리로 속을 달래는데도 오전 내내 배가 고프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회사 식당 밥을 먹는 날이면 후다닥 먹은 후 나가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산책을 하며 햇빛을 쬔다. 겨울이 다가오니 해가 짧아져 햇살을 볼 시간이 없다. 코딱지만 한 창문들만 겨우 열 수 있는 회사 건물에서는 광합성도, 비타민 D 생성도, 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점심시간 30분이라도 코에 바람 좀 넣어주고 얼굴에 기미가 생기더라도 햇빛을 받아야겠다며 전투적으로 점심을 먹는다. 커피를 사 들고 간식도 먹는다, 달달한 커피로 당충전을 한다. 조금 살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열심히 일한다. '칼퇴'가 아니라 '정퇴'를 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 일할 거리를 4시간 혹은 하루 내내 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해서 빨리 끝내고 다른 걸 하고 싶다. 그런데 눈치가 보여 다른 걸 할 수도 없다. 창의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시 퇴근을 한다. 눈치를 주는 윗분들도 있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기지 않는 한, 내 업무량을 조정하여 퇴근 전에 다 마친다. 그럴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한다.


같은 부서, 혹은 다른 부서에서의 이야기들도 들려온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며 하소연을 해 오는 동료들도 있다. 회사 전체에 무슨 무슨 일이 있다는 이야기들도 전해 듣는다. 어느 팀장이 또 이렇게 저렇게 했다더라, 누군가 또 퇴사를 했고, 경비절감을 하라며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더라, 회사가 어려워 구조조정이 있을 것 같다더라 등등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즐겁고 밝은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무덤가에 온 듯 적막하고 침울하다. 사람들이 겪은 일들과 근거 있는 소문으로 회사의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는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 힘이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고 서둘러 나온다. 결국 오늘도 퉤! 근을 한다.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하아~~" 하고 긴 숨을 내쉬며 쌓여있던 것들을 한 번 내보낸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안도감과 시원함과 허탈함과 연민 등등..


언젠가, 일이 너무 많아 기진맥진하더라도 마음만은 뿌듯하기를, 내일이 또 기대되는 오늘의 마무리가 되기를, 나의 일 때문에 즐거웠던 하루의 끝 퉤근이 아닌 퇴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퉤! 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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