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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Apr 24. 2024

넌 널 위해 뭘 해 주니?

렌터카 타듯 나의 인생을 살고 있진 않나요?

1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출퇴근길 루틴이 있다. 집에서 출발하여 골목을 빠져나오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짧게는 2-3분, 길게는 5분 정도 출근한다고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전화를 끊으면 스픽 앱으로 영어 스피킹을 한다. 10-20분 정도. 분량은 알아서 조절하면 된다. 스피킹이 끝나고 나면 매일 아침 듣는 자기 계발 유튜브들을 듣는다. 여러 개 다른 걸 듣기도 하고, 하나를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그리고 책도 듣는다. 부동산이나 경제 등, 똑똑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듣는 것들을 분석하여 관련된 영상들을 올려준다. 퇴근길도 비슷하다. 회사 주차장에서 나와 큰길에 접어들면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면 다시 자기 계발, 책, 경제 등등의 유튜브들을 들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운전을 하는 시간들이 아까워서 많은 것들을 한다. 친구들과 통화를 하는 등 예외가 있는 날들을 제외하곤 매일 알차게 빈틈없이 출퇴근 시간들을 보냈다.




차에서 뭔가를 많이 하는데도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하지 않고 지냈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모든 소리들이 차 밖으로 크게 울려 퍼지는 것도 싫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로 연결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거치대를 끼우고 그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조작을 하는 것이 익숙해서 더 편했다.


나의 차를 처음 산 13년 전부터 나는 마치 렌터카를 타듯 내 차를 탔다. 차를 꾸미지 않았다. 집에도 잘 두지 않는 액세서리를 차에 둘 리는 없었다. 전에는 과한 인공적인 향이 싫어서 방향제를 두지 않았고, 요즘엔 방향제가 잘 나오지만 후각이 예민한 아지와 냥이가 차를 타기도 하니 두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다. 짐도 많지 않았다. 앞 좌석엔 그날그날의 가방이나 필요한 물건들이 자리했고, 뒷좌석엔 우산 하나, 담요 하나, 책 한 권 정도. 트렁크에도 장우산 하나를 제외하곤 비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화번호를 앞 유리 쪽에 올려둔 것 이외에 별 게 없다. 불편함도 없다. 그렇게 내 차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했다. 간혹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어떻게 차에 아무것도 없어요? 트렁크가 텅 비어 있어요! “


그렇게 지내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차의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출근길, 여느 때와 같이 엄마와 통화를 하고 유튜브 앱을 켜니 친구가 보내줘서 잠시 들었던 띵곡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순간 멍~해졌다가 영어 스피킹 앱을 켜지 않고 그냥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고 싶었다.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리다가 신나는 음악에 둠칫거리기도 하다가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을 까딱거리기도 하며 차 안 가득 울려 퍼지는 음악을 즐겼다.



"넌 널 위해 뭘 해주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송화가 익준이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우주야, 넌 널 위해 뭘 해주니?'  

성장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를 하고 유튜브를 들으며 지식을 쌓고 1분 1초 아깝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인 건 아닌지. 그냥 나 자신을 위해, 나의 좋은 감정을 위해, 행복한 나의 순간을 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건데 그 시간이 뭐가 그리 아까웠을까.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인데..


차 안에서 음악에 몰입하여 즐기는 그 순간엔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긴장하여 잔뜩 올라간 어깨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즐겁고 평온하고 행복했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아 또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출근길에 이어 주말,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왕복 7시간 넘는 시간 동안에도 쉬지 않고 좋아했던, 좋아할 노래들을 들었다.  




나는 오롯이 온전히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차임에도 불구하고 렌터카를 타듯, 남의 차를 타듯 차를 탔던 것처럼, 내 인생도 나에게 집중하는 나의 인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과 비교하거나 남들의 이야기에 흔들리며 남의 인생 살듯 살아온 건 아닐까.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몰아붙이고, 부족한 듯한 시간을 아끼느라 나를 재촉하면서 나의 현재를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닐까.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나를 대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특히 연애를 막 시작할 때) 우린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고 상대에게 다정히 대하고 많은 신경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를 보내듯, 나의 현재를 보내고, 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듯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해 주듯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해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하듯 나를 존중해 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걸 같이 해주듯 내가 원하는 걸 잘 알고 해줘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자,
내가 나라서 설레는 삶을 살자.
그렇기에 나도, 나의 세상도
언제나 Here&Now가 가장 중요하다


PS. 일주일을 꼬박 음악을 즐긴 후 어제부터는 편하게 음악도 들었다가, 자기 계발 유튜브도 들었다가, 북튜브도 들었다가, 최강야구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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