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집사의 잘못입니다.
거실에 있는 큰 책장의 가장 위 한 칸은 아지와 냥이의 간식이나 소분 사료를 두는 공간이다. 동선이 가까워 그곳에 두고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간식을 준다. 높이도 꽤 되고 칸들마다 책이 꽂혀있어 걱정을 안 했는데, 얼마 전 퇴근을 하고 보니 아침 출근길에 간식을 주고 급하게 나가느라 책장 가운데 칸에 두고 간 냥이의 소분 사료 봉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소형 지퍼백 절반 정도가 채워져 있었는데, 바닥에 부스러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운 듯했다. 지퍼백만 없었다면 완벽한 범죄 현장이었다.
"이걸 둘이 다 먹은 거야?!"
둘을 불러다 물어봐도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리는 녀석들. 냥이는 여느 때처럼 두 번째 칸 책장까지 올라가 호시탐탐 책장 가장 위칸을 노렸을 것이고, 여느 때와 다르게 가까이 있는 사료봉투를 어찌어찌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것이다. 그걸 본 아지는 달려왔을 것이고, 깔끔한 녀석은 봉투를 입으로 뒤집어 쏟은 후 바닥에 쏟긴 사료를 청소기 빨아들이듯 쭉쭉 흡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냥이는 그에 질세라 엄청난 식탐을 자랑하며 최선을 다해 먹었을 터였다. 봉투만 남은 사건 현장을 발견한 집사는, 결국 그날 저녁을 다 같이 굶자고 선언, 냥이의 조르는 소리를 무시하며 그냥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언제나처럼 드라이기 소리에 옆으로 온 냥이를 빗질을 해주는데 목덜미에 휑한 부분이 있었다.
"이거 뭐야? 왜 이래?"
원형 탈모라도 생긴 것처럼 목덜미 한쪽 털이 새끼손가락 마디만큼 휑하게 비어 있었다. 아마도, 확신하건대, 바닥에 떨어진 사료를 먹다가 둘이 아웅다웅 다툼이 있었던 듯했다. 바닥에 한 움큼 보였던 냥이의 털이 여기서 빠진 거였나 보다. 덩치가 4배는 큰 아지와, 먹을 거 앞에선 지지 않는 냥이의 결투의 결말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아지를 혼내 보려고 불렀지만, 어제 일을 기억할 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서 혼내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기에 혼내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출근길 엄마와 통화를 하며 아지와 냥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를 혼내신다.
"니가 잘못했지! 그걸 거기 두면 어떻게 해. 냥이가 책장 자주 올라가던데 위험하게 거기 두면 안 됐지. 어디 서랍에 넣고 닫았어야지. 그러다가 책장 넘어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니가 잘못한 거지!"
그렇지.. 내가 잘못했네.. 책장이 넘어갈 수도 있을 거란 엄마의 상상은 좀 오버이긴 하지만, 어쨌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건 나였다. 다른 애들에 비해 아지의 성향 탓인지 둘 다 조용한 편이고 크게 사고를 치지도 않는다. 멀 깨거나 부순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다. 집사의 옷이나 신발, 물건을 물어뜯은 적도 없다. 그런 걸 보면 이번 사고는, 순전히 사료 봉투를 가까이 둔 집사의 탓이었다.
천재견 호야처럼 똑똑한 강아지가 아닌 담에야, 반려동물들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해 주기를 기대할 순 없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내가 늘 마음에 두는 건 이런 것들이다.
이 아이들은 언제나 나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도 바랄 수도 없다.
아이들에게 거의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나의 바램에 호응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기에, 그저 강아지는 강아지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그들의 습성대로 본능대로 자기들 딴에는 나름 최선을 다해 인간 집사와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기대가 없기에 화가 날 일도 없다. 있는 그대로 존재함에 감사하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고, 함께 한 시간이 더해지면서 서로 배려해 주는 뭔가를 더 하면 너무 예쁘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그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걸 거기에 둔, 혹은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든 집사의 잘못이다 ㅎㅎ
아지, 냥이와 함께 살면서 나는 나의 잘못을 잘 인정한다. 어릴 때, 젊을 때, 끝까지 너는 틀렸고 내가 맞았노라 고집을 부리며 연인과 싸우던 것을 생각하면,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허탈해 웃음이 날 때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를 것임을 알고, 그 다름을 인정해 주고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면 조금은 싸울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관계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내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고, 무작정 나에게 맞춰 달라 요구할 일도 적을 것이고 나의 기대에 맞지 않음을 답답해하지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고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생활과 사람들의 관계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상대를 받아들이고 기대를 낮추면 열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안 싸우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여 줄 것, 다름을 인정해 줄 것, 나의 기준대로 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 것.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관계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