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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가족 이야기 1

너희의 삶은 왜 이리 고단한가

by 하우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아지와 산책을 하는 중에 눈에 띈 동네 길냥이 가족들. 고단해 보이는 어미냥이는 아무렇게나 놓인 널빤지 위에 올라가 있었고 이제 겨우 두 달이나 됐을까,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녀석 하나가 똥꼬 발랄하게 어미냥이 앞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배트맨 같은 가면을 쓰고 몸 전체가 까만데 얼굴 아래와 배, 그리고 네 발에 흰 양말을 신고 있는 너무 귀여운 녀석이었다. 그리고 또 비슷하게 흰색, 검은색이 적당히 섞인 아기냥이가 눈에 눈곱이 잔뜩 낀 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눈병이라도 난 걸까.. 그날부터였다. 눈이 반쯤은 감긴 녀석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자려고 누우면 어느새 옆에 와서 보채는 냥이를 보면 다시 눈곱 낀 녀석이 생각났다.

이틀 정도 뒤척이다 크리스마스 날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러 물과 사료를 잔뜩 주고 가시는 분이 계시지만, 들르신 지 며칠 된 건지 사료는 없고 물은 꽁꽁 얼어 있었다. 집에 들어가 냥이의 사료를 좀 덜어오고 물을 데워 텀블러에 담아 와 사료를 채워주고 얼음을 버린 후 따뜻한 물을 채워줬다. 녀석들은 아주 멀리 도망가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자리를 뜨기만을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듯이.. 가까이서 본 눈곱냥이의 눈은 며칠 전보다 더 심해 보였다. 똥꼬 발랄하던 녀석은 경계심이 많은지 어딘가로 쏙 들어가 버려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좋니 너희를...’




길냥이들의 삶은 왜 이리 고단한 것인가. 그리고 어쩌다가 어미냥이는 겨울을 앞두고 새끼들을 낳은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하루종일 짓누르다가 우선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해 보자 싶어 쿠팡에서 녀석들의 사료와 길냥이 집을 주문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주문한 지 24시간이 안 되어 사료와 길냥이 집을 문 앞으로 배달해 줬다.


26일 오후, 냥이의 방광염 사료를 사러 동물병원에 간 김에 수의사 선생님에게 눈곱냥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쓸 수 있는 약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수의사 선생님은 안약과 연고를 넣어야 할 것 같은데, 냥이를 잡아서 눈에 약을 넣을 수 있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녀석이 쉽게 잡히지는 않을 듯했다. 일단은 잘 먹고 잘 자면 좋아질 수도 있을 거란 이야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6일 밤, 아지의 산책을 마친 10시부터 길냥이 집을 한 시간을 조립하고 집 바닥에 뽁뽁이와 신문지와 매트와 따뜻한 옷 하나를 깔고 11시에 녀석들의 사료가 있는 주변에 집을 놔줬다. 누군가 부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산책 길에 들러 멀리서 보았더니 다행히 아기냥이들은 안에 있는 듯하고 어미냥이는 보초라도 서는 건지 쏙 들어가지 못하고 머리를 내놓고 밖을 보고 있었다. 사료와 물을 주러 다시 갔더니 아기들이 먼저 집에서 나와 도망가고 어미냥이는 멀지 않은 곳에서 하악질을 했다. 어제보다 더 꽁꽁 얼은 얼음을 깨 버린 후 따뜻한 물을 채워줬다. 겨울이 추워서도 힘들지만, 물을 마시기가 더 힘들어 냥이들이 많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 밤 산책길에도 멀리서 보니 아침의 풍경 그대로 어미냥이가 머리만 내놓고 집 안에 들어가 있었다.




별 거 아닌, 바람만 막아주는 그런 집이라도 들어가 사용해 주니 그저 고맙기만 했다. 사료와 물을 잘 먹어주니 그 또한 고맙다. 이 겨울을, 어떻게든 이겨내 보자.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도록 살아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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