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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가족 이야기 2

제 이름은 ‘별’이에요

by 하우주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눈앞의 순간들을 채우고, 그 순간들이 모여 또 삶을 만들어낸다. 나의 삶도, 길냥이들의 삶도..




얼마 전 우연히 뜻밖의 장소에서 옆동네에서 길냥이들을 돌봐주는 분을 알게 되었고, 나는 집 근처에 겨울을 앞두고 새끼들을 낳은 길냥이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분은 겨울에 태어난 새끼들은 죽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안타까워하셨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까 싶어 황급히 연락처를 교환한 것이 짧은 만남의 전부였다.

그런데 길냥이 가족들에게 집을 놓아준 지 이틀 후에 그분께 연락이 왔다. 아기냥이들을 또 보았는지, 잘 있는지 궁금하다며 전화를 하셨기에 쿠팡으로 급히 주문한 길냥이 집을 하나 뒀고 아침에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있는데 아기냥이 하나가 눈에 눈곱이 많이 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허피스에 감염된 것 같다며, 약을 좀 먹이면 좋겠다, 집에 핫팩을 좀 넣어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수의사 선생님에게 안약과 안연고를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노라 답했는데 먹는 약이 있다고 하시더니 좀 알아보고 연락을 다시 주시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른 길냥이 돌봐주시는 분께 전화를 해 두었으니 약을 받아가 길냥이들 사료에 뿌려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기에 그러겠다 하였다. 그날 밤 약을 받아와 사료 위에 츄르를 짜고 그 위에 약을 뿌리고 물에도 약을 타 주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강한 양말냥이를 제외하고 어미냥이와 눈곱냥이는 츄르 냄새를 맡고는 적극적으로 다가와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24년의 마지막 날, 두 분은 길냥이 전용(!) 따뜻한 집과 공사판에 부탁해 구했다는 벽돌, 츄르, 약 등등을 차에 싣고 우리 동네에 오셨다. 스티로폼으로 마감된 탄탄한 집 안에 핫팩과 따뜻한 이불을 든든히 넣어주셨고, 어설프기 그지없던 내가 주문한 길냥이 집을 가지고 가 뽁뽁이와 스티로폼으로 바깥을 꽁꽁 싸서 따뜻하게 변신시키고 안에는 따뜻한 이불들을 채워 주셨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아이들의 거처는 따뜻한 집 두 개와 든든한 먹거리, 눈비를 막을 천막까지 더해져 그럴싸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두 분이 부탁하신 대로 아침에 츄르에 약을 챙겨주고, 저녁엔 핫팩을 데워 집안에 넣어주고 이불을 한 번씩 털어 정리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아침저녁마다 만나기를 며칠, 이제 어미냥이는 경계를 하긴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가 사료 위에 츄르를 올려 앞에 놔주면 열심히 먹고, 깨발랄하지만 경계심이 심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양말냥이는 어미냥이 주변까지 와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먹는 걸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눈곱냥이는 내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녀석을 위해 따로 준비한 습식 사료를 맛있게 먹는다.



1월 3일, 약을 챙겨준 지 5일째 되는 날. 저녁에 아기냥이들이 먹을 습식 사료와 핫팩을 가지고 갔다가 내 앞에 다가와 사료를 기다리고 있는 눈곱냥이의 눈을 보았다. 이젠 눈곱냥이라고 할 수 없을, 맑은 눈에 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힘없이 아파 보이던 녀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당당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는 아기냥이. 그 모습을 사진을 찍어두고 사료를 챙겨주고, 차갑게 식은 어제의 핫팩을 꺼내고 따뜻하게 데운 핫팩을 넣어준 후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빛나는 별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녀석의 이름을 별이라 지었다. 자연스레 다른 녀석의 이름은 달이 되었고, 어미냥이의 이름은 하늘이가 되었다. 너무 정이 들까 봐 그동안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섣부른 마음만으로 아이들을 거두기엔 집에 아지와 냥이가 있어 쉽지 않은 일이라, 별일이 없길 바라며 심란한 마음으로 어설픈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인연은 기적처럼 이어져 길냥이 가족에게 보금자리와 살아갈 힘을 마련해 주었다. 녀석들을 돌봐 준 며칠 사이, 아기냥이들은 일주일 전보다 조금 더 커진 듯하고, 고단해 보이기만 하던 어미냥이의 눈빛은 조금은 편해진 듯 보인다. 여전히 겨울은 많이 남았고 날씨는 더 추워질 것이라 하고, 녀석들의 거처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전보다는 살만하지 않을까라고 내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해 본다.




길냥이들의 평균 수명 3년. 배를 채우는 모든 순간, 잠을 청하는 모든 순간들이 길냥이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것이다. 먹지 못해, 마시지 못해, 여름엔 너무 더워서, 겨울엔 너무 추워서, 그리고 수많은 사고들로, 녀석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허피스에 감염된 경우 낫지 않으면 결국 눈을 적출해야 한다는데 몇 번의 약만 먹어도 낫는 걸 보고 나니, 그 몇 번의 약을 먹지 못해 병들고 죽어가는 녀석들의 삶이 참으로 야속하기도 하다.


부디 이어진 인연들로 길에서 돌보게 된 길냥이 가족의 이 겨울이, 많은 순간들이, 마주하는 삶이 조금은 편안해지길.. 어디에선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할 다른 길냥이들의 삶 또한 그러하길 바라본다.


호사롭진 않으나 평안하길,

언제나 그들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나기를,

두 손 모아 본다.


PS. 입양처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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