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마중하기
안경을 맞췄다. 안경을 맞추러 간 날도, 안경을 받아 오는 날도 안경점의 직원 분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하고 한편으론 미안해하는 듯도 했다. 안경을 맞추기 위해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으며, 노안이 왔다는 건지, 노안 직전이라는 건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는 직원에게
”그냥 정확히 이야기하셔도 돼요. 노안이라는 거죠? “
라고 나는 말했다. 직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제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안경이 다 만들어졌으니 찾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방문했을 때는 또 다른 직원 분이 있었다. 이 분도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긴 마찬가지였다.
“기능성 안경이라 위아래 초점 따라 기능이 다르고요, 윗 초점으로 보면 멀리 있는 사물이나 글자 흐릿함이 좀 선명해지실 거고 아래 초점으로 보시면 책 읽거나 하실 때 가까운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실 거예요”
조금 더 연배가 있는 분들이 핸드폰이나 서류를 멀찍이 떼고 보는 것을 놀렸던 순간들이 시나브로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냥 노안이라고 하셔도 돼요 하하 저 그럴 나이예요 “
나는 웃으며 얘기했고 직원 분은 그제야 조금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며 안경을 테스트해 주었고 나는 안경을 쓰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차차 적응되겠지라고 중얼거렸다.
거의 20여 년 전, 1년간 해외 파견을 나가기로 결정이 되자마자 나는 라섹 수술을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불편한 생활을 겨우 이어나가기를 일주일 남짓, 사람들의 말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쓰던 안경을 쓰지 않는 삶은 실로 편하고 경이로웠고 자유로웠다. 여름에 땀 때문에 안경이 흘러내리는 일도, 겨울에 안경에 습기가 차 앞이 안 보이는 일도 없었고 선글라스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수영장을 가는 것도, 운동을 할 때도 안경을 벗으니 여러 가지 제약들이 한 번에 사라져 버렸다. 이후로 나는 라섹수술을 한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말하고 다녔다. 나는 라식이나 라섹 수술을 하면 으레 나타난다는 건조함이나 야간 빛 번짐조차 없이 좋은 시력을 자랑하며 안경 없이 사는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 2-3개월 전부터 밤에 운전을 할 때면 불빛들이 번져 보이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안과의 원장님은 라섹의 후유증이 이제 노안을 맞이할 시기에 나타나는 거라며, 단언하건대 3년 사이에 노안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직 안경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쓴다면 빛 번짐의 불편함은 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예언이 무색하게 명절을 전후로 밤뿐 아니라 낮에도 사물이나 글자가 번져 보이는 현상이 심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아지와 밤 산책을 할 때마다 경탄하며 보았던 달이 실루엣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흐릿하게 번지는 달을 보며, 명절이 지나고 올라가면 안경을 맞춰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명절을 보내고 올라오자마자 안경점을 찾았고 다행히 안경점은 설 연휴 당일을 빼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20여 년 만에 찾아온 안경점은 낯설었다. 두세 가지의 검사를 마치고 안경알을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 반복한 후에 지금의 눈을 보완해 줄 안경알이 정해진 듯 보였다. 그리고 안경테를 또 골라야 했다. 5만 원, 7만 원.. 가격대가 적혀 있었고 나는 가벼운 테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다가, 오랜만에 쓰는 안경이 어색하지 않도록 피부색과 비슷한 연한 색 안경테 하나를 골랐다. 안경 제작은 기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가 걸릴 것이라 하였다.
정확히 일주일 후, 안경점에서 문자가 왔고 나는 퇴근 후 안경을 찾으러 갔다. ‘노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꺼려하는 듯한 직원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그냥 웃으며 ‘그럴 나이’라 이야기하고는 어질어질 어색한 안경을 쓰지 못하고 안경집에 고이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났건만 여전히 안경은 어색하다. 산책할 때나 일상생활에서는 안경 없이 지내다가 일을 할 때나 운전을 할 때 주섬주섬 안경을 꺼내 쓰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안 쓰고 싶지만 쓰고 보면 선명해지는 세상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 안경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을 앞두고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지인에게 말했었다.
“나이를 든다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인 것 같아요. 피부 관리도 해야 하고, 새치 염색도 해야 하고…”
그러자 지인이 답했다.
“나이 드는 데 나이 들지 않은 척하려니까 돈이 드는 거야”
뼈 때리는 지인의 말에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맞네요, 그러네요”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안과의 원장님이, 안경점의 직원들이 ‘노안’이라는 단어를 쉬이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 그 많은 감정들의 흐름을 이 분들은 아마도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토록 그 단어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다행히 나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늙어간다는 것이 젊었을 때와 비교하여 그저 조금 불편한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말이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라면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눈이 안 좋아졌노라 핑계라도 대겠지만 그조차도 없지 않은가. 부정하고 부인하고 싶은 마음 또한 처음엔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동동거리며 거부한다 한들 기어코 그 일은 오기 마련이니, 편하게 받아들이고 또 적응해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혹시 더 열심히 관리했다면 더 늦게 올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 또한 의미 없는 수많은 ‘만약에’ 가정법에서 끝날뿐, 지금 이 순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걸 알아버린 덕분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삶이 가벼워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스트레스가 많이 없어졌다. 부모님의 연로해지심을, 나의 나이 들어감을, 아이들의 커감을 그저 바라보고 거기에 맞춰 또 적응하여 살아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다, 몸의 변화에 맞추어 마음도, 생각도 변해갈 것이라 생각하니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겨야겠다는 의지가 새삼스레 생긴다.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쓰기도 해야겠다, ‘노안 직전’이 아닌 노안이 성큼! 다가왔을 때, ‘그래 그럴 만했어’라는 핑계를 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