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며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며 겨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 본다. 또다시 돌아오지 않을 겨울의 시간들이다.
[모든 건 살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시력도 떨어지고 빛 번짐도 심해져서 안경을 맞췄다. 다~ 노안 탓이려니 하며 정기적으로 가던 안과 진료를 빼먹었다. 안경을 써도 뿌연 듯 시야가 밝아지지 않길래 부랴부랴 안과에 갔더니 왼쪽의 안압도 높아져있고 시력도 더 떨어져 있었다. 망막과 시신경 검사를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혹시 살이 너무 쪄서 콜레스테롤이나 당뇨가 생겨서 그럴 수 있냐고 선생님께 물었지만 한쪽의 안압만 높은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안약을 처방해 주시며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시며, 살이 많이 쪘냐고 물으셨다.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진료오는 거 빼먹지 말고 안약 잘 넣고 운동 좀 하라고 마지막 잔소리를 하신다. 무산소운동이 아니라 유산소운동을 하라고… 운동이 아니라 먹는 걸 줄여야.. ㅎㅎ
[가족은 다 같이 살찐다]
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족 중에 한 명이 찌면 모두가 다 찌는 듯하다. 아지는 그동안 털이 찐 거라고 감추고 있었지만, 몸에서 나는 통통 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다. 내가 집에서 뭘 먹을 때마다 어느 순간 뒤에 조용히 와 절대 거절하지 못할 눈망울로 앉아있는 아지를 보면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간식을 주게 된다.
냥이는… 하… 한숨이 나온다.. 다른 냥이들처럼 자율급식을 시도해 보려다 살만 찌웠다. 녀석은 순식간에 몸무게 앞자리를 두 번이나 바꾸고 밤마다 집사의 귀에 대고 울어대기도 하고, 집사가 반듯이 누워있으면 가슴을 타고 다니며 밥 달라고 조른다.. 부족한 집사 탓이다. 세 식구가 모두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할 타이밍이 오고야 말았다.
[길냥이들을 통해 배우는 중]
겨울 동안 돌보았던 길냥이 가족들을 보며 한갓 인간의 분별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깨닫는다. 가끔 항상 보이던 길냥이 가족들이 안 보이는 날이 있었다. 우연히 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맞은편 회사 창고에 길냥이들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궁금해졌다.
‘왜 따뜻한 집 놔주고 여기 있는 걸까, 왜 항상 사료가 채워져 있는데 이런 곳에서 굶고 있는 걸까’..
녀석들이 배가 고플까 봐, 손이 닿는 곳에서 츄르라도 주려고 한파에,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동네를 헤맨 날이 몇 번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의 기준으로 길냥이들의 행동을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더 이상 그 장소가 안전하지 못하다거나, 밥이 맛이 없다거나, 핫팩이 너무 뜨겁다거나 등등.. 내가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유들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나는 우습게도 인간의 시선으로, 나의 기준으로 길냥이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인간이 모든 걸 알 거라는 교만과 나의 기준이 맞을 거라는 착각을 나는 시시때때로 하고 살아간다. 너는 참 어리석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길냥이들이 안 보이는 날이면 속을 끓인다, 날이 추운데, 눈이 오는데, 배가 고플 텐데 등등.. 내가 길냥이들을 만나는 건 아침저녁 합쳐봐야 40분 남짓, 그 이외의 그들의 삶을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을 일으켜 나를 괴롭힌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진리를 까맣게 잊었다 기억해 내고 또 까먹었다 깨닫는다.
‘안다는 것’에 대해 겸손해지는 겨울이었다. 그러면서도, 아기냥이들을 본 날은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삶은 늘 내 편이다]
괴롭던 지난 회사 생활 중 틈틈이 짬을 내어 준비했던 사업을 드디어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기획해 온 자식 같은 첫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적인 월급이라는 유혹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리 쉬이 살게 되지 않았다. 퇴사를 결정해야만 하는 좋은 핑곗거리들이 생겼고, 퇴사를 한지 두 달 만에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거짓말처럼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 세상은, 내 계획처럼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흐르는 물 위에 떠 있는 통나무처럼 그저 온전히 맡기니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몇 명의 사람들을 정해놓고 연봉의 25~50%까지 삭감을 요구 중이라는 전 회사의 소식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를 다시금 상기한다. 삶은 늘 내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걸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사장이 되어간다]
감사하게도, 일을 같이 해주는 팀원들이 이 제품을 세상에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무척이나 열정적이고 진심으로 본업 외 일을 해주고 있다. 아직 내 회사로 데려올 수도, 그들이 만족할 만큼의 노동에 대한 대가도 주지 못하는데..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한편으론 그들이 언제나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내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의 의견을 참고하되 결정은 결국 내가 내려야 한다는 것도 배워간다.
내가 그들에게 실망할 때도 있고 그들 또한 나에게 실망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일이고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저 그럴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운다.
어차피 처음부터 대단하고 원대한 꿈을 그리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을 하며 행복함을 오롯이 느끼고 그들 또한 그들의 가족과 행복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한 명의 직원이 행복하게 잘 산다면, 그들의 가족들 또한 행복할 것이니 그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그뿐이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더 잘 조율하고 잘 어우러져 멋진 한 팀을 만들까.. 그 고민을 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장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