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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삶, 길 위의 아이들

일호 이야기

by 하우주

1.

길냥이 별이와 달이네 가족이 밥터에 오지 않은지 3개월 정도가 되었다. 어미냥이인 하늘이가 먼저 녀석들의 독립을 위해 떠난 듯했고 아빠인지 윗배인지 모르겠던 뉴페 녀석이 별이와 달이를 데리고 밥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몇 번 놀더니 어느 순간 별이와 달이도 더 이상 밥터로 오지 않았다. 사실 밥터는 냥이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하늘이는 겨울에 태어난 아기냥이들을 키우기 위해, 열악하지만 그래도 밥과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그곳에 잠시 머물렀던 듯했다.


그래도 별이와 달이는 멀리 가지는 않고 밥터 맞은편 회사 주변, 물과 흙이 있는 장소들을 위주로 생활하는 듯 보였다. 약 3주 전 아지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녀석들을 보고, 산책이 끝난 후 캔과 츄르를 싸 들고 녀석들을 봤던 위치로 갔더니, 기억을 하는 건지 뭘 아는 건지 별이와 달이가 쫄래쫄래 거리를 두고 쫓아왔다. 녀석들은 여전히 둘이 사이좋게 같이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번, 먼발치에 캔과 츄르를 주고 실컷 먹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가 어느 정도 먹은 밥그릇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놓아두고 다음 날 빈 그릇을 찾아온 게 전부, 이후로는 별이와 달이를 보지 못했다. 아깽이 시절을 눈에 담았던 시간들은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남아 나는 그 이후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꽤 여러 번 아이들을 찾아 헤맸지만 여전히 지금까지도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둘이 서로 의지하며 조심히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2.

별이와 달이가 떠난 후에, 치즈냥이 한 마리가 밥터를 찾아왔다. 내가 집 앞까지 다가간 후에야 후다닥 핫팩이 깔린 집에서 나온 녀석의 왼쪽 귓덜미부터 목까지 크고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무언가에 물린 것인지 크게 살점이 떨어져 털도 다 빠지고 속살이 그대로 보였다. 차가워진 핫팩을 꺼내고 새 핫팩을 넣어주려 이불을 꺼냈는데 상처에서 진물이 나 이불에 묻은 건지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린 녀석은 참 많이도, 고되어 보였다. 이불을 전부 갈아주고 캔과 츄르를 다시 넉넉히 두고 항생제를 주기 시작했다. 구내염이 있는지 물은 늘 지저분해져 있었고 상처에서 떨어진 털과 딱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했다.



녀석은 며칠 동안 밥터를 떠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곳에는 밥도 있고 따뜻한 집도 있으니 상처가 깊어 보이는 몸으로 어딜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밥터를 떠날 힘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지켜보았지만 녀석의 상처는 점점 더 심해 보였고 행동과 눈동자의 움직임은 더 느려졌다. 결국 밥터의 집을 마련해 준 분들께 도움을 청해 포획을 시도해 보았지만, 눈치 빠른 녀석은 포획틀에도 들어가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여러 방법으로 구조를 알아봤다. 유기견과 유기묘를 구조한다는 단체, TV동물농장에도 문의를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 종종 밥을 먹으러 갔던 식당의 젊은 사장님이 길냥이들을 위한 사단법인을 돕고 계신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연락을 했더니 식당 주변으로 밥을 먹으러 오던, 이미 알고 있는 아이라며, 다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포획틀 이후 밥터에서 사라졌던 녀석은 며칠 뒤 1km 거리의 식당 주변에 다시 나타났다가 식당 사장님이 놓은 포획틀을 보고 또다시 사라졌다가 며칠 후 다시 밥터에 나타났다. 그리고 처음 포획틀을 설치한 지 약 2주가 지난 후 씩씩한 식당 사장님은 혼자 밥터에 있던 녀석을 잡아 사단법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으로 보낸 후, 녀석을 일호라 부르는 게 어떠냐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같이 구조한 첫 고양이라고, ‘우리’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녀석을 일호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상처는 크고 깊었고 새 살이 올라올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고 나이도 꽤 있어 보였다. 그리고 검사해 보니 치사율이 높다는 복막염에 걸려 있고 복막염 치료를 위해 일호는 세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장님과 함께 한 번 면회를 가 만나고 왔고 매일 입원장에 있는 일호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달받으며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지난주에는 일호가 이미 전발치가 되어 있더라는 소식을 들었다. 길에 있던 아이를 잡아 전발치를 하고 다시 방사를 한 것인지, 집에 키우던 아이를 전발치를 했다가 버린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빨도 없이 길 생활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안타깝기만 하고, 다친 부위는 고양이끼리 싸워서 생긴 상처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틀 전, 일호의 신장에 종양이 있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일호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6개월 미만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상처가 낫고 복막염 치료가 끝나면 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쉼터로 가 남은 묘생을 편히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어쩌면 그 시간이 기대보다 훨씬 더 짧을 수도 있다고 했다.. 불쌍한 아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병원으로 간 일호의 길 위에서의 삶에 대해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참으로 고되고 힘든 삶이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고된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을 시간이 억울하게도 너무도 짧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일호를 구조한 사장님이 이야기하셨다. 복막염 낫는 대로 쉼터로 이동해서 병원장보단 넓은 공간에서 지내게 할 거라고.. 사람의 손길이 따뜻하다는 걸 느끼고 있을 일호여서 마지막까지 길 위가 아닌 쉼터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그나마 다행이라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것 말고 달리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이 오던 추운 겨울밤, 산책을 하는 나와 아지를 보고 따라와 가족이 된 냥이가 만약 길 위의 삶을 이어갔다면, 그 마지막은 어쩌면 일호의 모습과 닮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된 길 위의 삶은 길냥이들에게 평균적으로 3년이란 시간밖에 허락하지 않는다.

안타깝고 속상하고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그들의 짧은 생에 나는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는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무언가가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PS. 일호를 구조하고 엄청난 병원비를 모두 감당하고 이후 쉼터를 약속하신 사단법인 지라리묘(https://www.instagram.com/jirarimyo2024)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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