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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삶, 길 위의 아이들

일호 이야기 2

by 하우주

일호가 입원을 하고 난 후 병원-사단법인-구조하신 분을 통해 한 달이 조금 넘게 매일 일호의 사진을 전달받았다. 한쪽 귀를 내놓고 상처 부위의 붕대를 감은 날도 있었고, 양쪽 귀 전부가 붕대에 가려진 날도 있었고 붕대에 동물병원 선생님들이 하트를 그리거나, 힘내라는 문구를 적은 날도 있었다. 꼬질꼬질하던 털이 조금 깨끗해 보이기도 했고 지저분하던 얼굴이 세수를 한 것처럼 말끔해진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얼굴을 제외한 몸의 털을 다 깎았고 다음 날은 핑크색 옷을 입고 있기도 했다. 마르고 쳐진 피부의 일호를 보면서 나이가 조금은 있겠구나, 생각보다 말랐구나 하며 일호의 상태를 가늠했다.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된다고 한 다음 날 일호의 머리에서 붕대가 사라졌다. 목덜미의 상처가 이젠 붕대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나은 걸까 궁금했다. 치료 잘 받고 잘 먹고 잘 잔다는 말에 하루빨리 나아서 쉼터로 가면 좋겠다.. 하고 바랬다. 그리고 다음 날, 일호는 좁은 입원장이 힘들었는지 상처가 생겨 뒷다리 깁스를 하고 있었고 다음 날의 사진에는 깨끗하던 얼굴은 핏자국인지 뭐가 묻은 건지 다시 지저분해져 있었다.

일호가 끝내 쉼터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빨리 한 번 더 면회를 가야겠다, 남은 날이 조금만이라도 편하면 좋겠다..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받고 3시간쯤 후에 카톡이 왔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통화를 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사무실 복도 끝 공간으로 가 전화를 했다.

“일호가.. 갑자기.. 고양이별로 갔다고 해요”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힘에 부친 듯 지쳐 보이는 아침의 사진을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머리로는, 생각으로는 다 알고 있고 준비를 한다 말하면서도, 여전히 가슴까지, 마음까지의 거리는 멀고도 멀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낼 만큼의 거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난 뒤 다시 책상에 돌아와 앉아 현실을 마주했다. 슬픔에 머물러 있을 시간은 오래 허락되지 않는다. 일호의 장례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했고, 따로 치른다면 그 비용은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했다. 길아이들이 사람의 곁으로 잠시 왔다가 고양이별로 떠나는 모습 또한 제각각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따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고, 죽은 아이들을 모아놨다가 한 번에 화장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구조를 해 주신 분과 얘기해 따로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고, 반려동물의 장례 예약이 꽉 차 시간을 잡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가, 당일 밤 9시에 한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 장례비에 포함된 픽업 비용을 아끼기 위해 퇴근 후 일호가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가 일호의 사체를 받아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

‘저.. 일호..’라고 입을 뗐다. 데리러 왔다고 해야 하나, 가지러 왔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아~!” 하며 얼른 카운터 뒤 바닥에 있는 박스 하나를 들어 병원 의자 위에 올려 주었다.

“치료실이 좀 더워서 바깥에 뒀어요, 저희가 염은 다 해 뒀어요”

장례를 치를 곳의 로고가 적혀 있는 검은색 박스의 뚜껑을 열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자 수의사 선생님 한 분이 옆으로 오셔서 박스 뚜껑을 열어 주었다. 박스 뚜껑에는 ‘너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함께 했던 추억들은 영원히 간직할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박스 안에 있던 일호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흑’하고 눈물이 터져 나와 텅 빈 동물병원의 대기실은 순식간에 나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파서였는지 일호는 심하게 말라 있었고 털을 모두 깎은 탓에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언제인지 모르게 간호사 선생님이 내 손에 휴지를 쥐어주고 갔고 수의사 선생님은 잠시 자리를 비켰다가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옆으로 와 의자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많이 말랐네요 일호가…”

훌쩍거리며 묻는 나의 질문에 수의사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복막염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잘 먹고 지내는데 계속 살이 빠져서 초음파를 해 보니 양쪽 신장 모두 종양이 있었고 2/3 이상이 신장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다쳤던 목덜미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는 이야기, 구내염이 심해서 자연 발치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중성화도 안 되어 있고 일호의 크기로 보아 젊은 시절에는 아마 동네 대장이나 2순위 정도로 지냈을 것이라며, 늙고 다치기 전까지 녀석은 꽤나 재밌게 My way로 길냥이의 삶을 살다가, 또다시 My way로 서둘러 고양이별로 떠난 듯하다는 이야기였다. 고되기만 했던 삶이었을 거란 추측과 좁은 병원장 안에서 지내다 떠난 미안함으로 무너졌던 마음에, 재밌게 살았을 거라는 그 이야기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 조금 또 채워진 후, 나는 꽤나 가벼운 검은색 박스를 차 뒷자리에 흔들리지 않게 잘 놓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들어가 도착한 장례식장 앞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장례식장의 직원들은 출발 전 연락을 해서인지 정중하게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뒷좌석에서 박스를 꺼내 들고 앞을 나서 대기실로 안내했다. 직원은 한쪽 벽에 자리한 대리석 단 위에 일호를 올려주곤 자리를 피해 주듯 종종거리며 방을 나갔다.


가만히… 녀석을 바라본다. 깊게 파였던 목덜미의 큰 상처가 깨끗이 다 나아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이 다 차올라 있고 귀 뒤쪽에 일자 형태의 삐뚤삐뚤한 흉터만이 살짝 남아 있었다. 상처가 다 나아서, 고양이별로 떠나는 길에 깨끗한 모습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마를 쓰다듬어주고 여전히 퐁신한 발바닥 젤리를 만져 보았다. 죽은 후에야 겨우 일호를 한 번 만져본다.. 잘 치료받고 잘 이겨내어 쉼터에서 만나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으면 더 좋았을걸.. 아쉬움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훌쩍거리는 와중에 장례식장의 직원은 장례 비용을 설명해 주러 왔었다. 염 비용과 수의와 관의 비용이 얼마이고 어떤 옵션들이 있고 이 장례식장에만 있는 꽃 장식에 대해서도 한참을 설명했다. 죽음을 마주하는 장례식장에서도 우리는 현실에 닥친 지금을 마주해야 하고, 지금 이 순간도 우리 모두는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딘가에 한 점을 찍고 있을 뿐이다.


9시가 조금 넘어 구조를 해 주신 분이 도착했고 충분히 슬퍼하며 애도의 시간을 가진 뒤 일호가 좋아할 간식들을 옆에 놔주고 꽃 한 송이를 올려준 후 화장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5kg가 조금 넘던 일호는 3kg 남짓, 모두 태워지는 시간은 40분 정도라고 했다. 2층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다 보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다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내려가 박스 안에 넣어진 유골함을 담은 종이백을 건네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일호를 보냈다.




일호가 떠난 그 주,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마음이 힘든 일도 있었다. 드러내놓고 힘들어하지도, 속상해하지도 못했던 나는 일호가 떠난 날 마음 놓고 울며 힘들었던 마음을 달랬는지도 모르겠다. 일호를 보내고 일주일을 꼬박, 나는 허해진 나의 마음을 지켜보았다. 블랙홀처럼 끝도 없이 텅 비어 공허해진 마음을 바라보며 나는 아지와 산책을 하고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잠을 청하는 냥이를 쓰다듬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엄마와 아침저녁으로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삶은 또 살아지지만, 죽음이란 것을준비하며 살고 있다고 해서 슬픔이 옅어지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마음을 주지 말라고.. 그 말처럼 제멋대로 오가는 마음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심력(心力)을 조금 덜 쓸 수 있다면 이렇게 진이 빠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니 또 마음은 조금씩 차 올랐다. 내일이면 일호가 고양이별로 떠난 지 3주가 된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이 동물들에 관련된 SNS를 보았고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도 달았고 닭가슴살을 삶아 밥터에 가져다 두고, 캔이 든 가방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마주한 현실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의 자리에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뿐이다. 깊었던 슬픔의 자리에 또 다른 행복과 기쁨을 차곡차곡 쌓으며 다시 이어지는 삶을 품는다. 마치 깨끗하게 나아간 일호의 목덜미처럼, 나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주었던 마음은 사랑이 되어 슬픔을 남기지만, 삶은 이별 위에도 살아진다. 또 하루를 살아낸다. 나아간 상처처럼, 아물어가는 마음을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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