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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2. 2021

목각 예술의 도시 히바 6

알 콰리즈미가 내려다본 도형


알 콰리즈미가 내려다본 도형

  

사실 저 반복하는 정사각형은 서문 앞에 있었던 알 콰리즈미의 동상에도 있습니다. 알 콰리즈미가 내려다보고 있는 두루마리에 반복하는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이 있는 도형이 그려 있지요. 점토판에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학생들이 풀었던 문제의 도형 중의 하나입니다.        

      

서문 밖에 있었던 알 콰리즈미 동상(왼쪽). 알 콰리즈미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두루마리에 그려 있는 그림(오른쪽).


Algebra, 대수학이라는 말     


알 콰리즈미를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830년에 쓴 『대수학』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간단히 말하면 ‘알-자브라와 알-무카바라’입니다. 방정식의 양변에 같은 양을 더해도, 빼어도 양변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둘은 우리가 방정식을 풀 때 지금도 사용하는 등식의 성질입니다. 여기에서 알지브라 algebra, 즉 대수학이라는 용어가 생겼지요. 대수학은 문자와 방정식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인데, 많은 사람이 골치깨나 아팠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겁니다.   

   

알 콰리즈미의 『대수학』은 이후 이슬람 세계는 물론 유럽의 대학에서도 주요한 수학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알 콰리즈미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식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계산에 관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상속, 유산, 분배, 소송, 무역과 같은 모든 거래에서 또는 토지 측량, 운하 파기, 기하학적 연산, 다양한 종류의 대상들이 관련된 경우에 사용하는, 가장 쉽고 가장 유용한 계산으로 제한하였다.    

  

책의 중반부터는 교역에 관한 문제, 상속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체계적인 풀이법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유산 분배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한 여자가 딸, 어머니, 남편을 두고 죽었을 때 유산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풀려면 비례와 분수 계산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랍 법에 따르면 어머니의 몫은 2/13이고, 남편의 몫은 3/13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가 두 아들을 두고 죽으면서 재산과 빚을 남겼다면 상속인들은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 이 경우는 빚이 있어 계산이 더 까다롭습니다.   

  

알 콰리즈미는 『대수학』의 앞부분에서는 일차방정식과 이차방정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해법을 제시하고 제곱근 계산을 다루었고 중반 이후에서는 교역, 상속 등 실제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실제 예를 들면서 푸는 해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주마 모스크 천장에서 배우는 정사각형의 넓이     


주마 모스크 천장에 있는 반복하는 정사각형은 제곱근 계산을 이용하여 도형의 넓이를 구할 때 등장합니다. 직각삼각형에서 세 변의 길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부르는데,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나겠지요? 


알 콰리즈미는 『대수학』 54쪽에서 직각삼각형의 세 변 사이의 관계(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명할 때 ‘반복하는 정사각형’ 그림을 사용하였다.

알 콰리즈미는 『대수학』 54쪽에서 직각삼각형과 정사각형의 넓이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서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꽤 여러 쪽에 걸쳐 여러 가지 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길이의 제곱, 즉 정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계산을 보여줍니다.     


알 콰리즈미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기하학인 고대 그리스 수학 개념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수만 수로 인정했습니다. 두 자연수의 비인 유리수도 수로 사용했지만 지금과 같은 분수 표현도, 소수 표현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2/3는 ‘2:3’으로 표현하고 2와 3의 비인 수로 생각했지요. 그러니 두 자연수의 비가 아닌 것은 수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무리수가 수로 받아들여진 것은 16세기에 와서의 일입니다. 알 콰리즈미는 유리수, 무리수, 기하학적인 크기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대수적인 대상으로 다루는 통합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알 콰리즈미는 지금 우리가 x라고 쓰는 것을 근이라고 부르고,  x의 제곱을 간단히 제곱이라고 부르면서 계산했습니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자유롭게 계산했습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도 길이인 x와 넓이인 x의 제곱을 더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진취적인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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