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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3. 2021

히바_돌의 궁전 타쉬 하울리 1

악 모스크 / 이찬 칼라의 동문


비행접시 같은 악 모스크    

     

주마 모스크를 나와 계속 동문 쪽으로 갑니다. 길은 키의 서너 배는 될 듯한 흙빛 담장을 따라 적당히 좁게 뻗어 있습니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파랗습니다. 햇볕은 뜨거워 그늘을 따라 걷습니다. 길 끝에서 계단 다섯 개를 내려가니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왼쪽엔 나무로 만든 가판대에 천으로 파라솔을 친 아주 소박한 노점들, 오른쪽엔 판자로 지붕까지 댄 나름으로 격식 있는 노점입니다. 벽걸이 수예품과 기다란 비단 스카프도 있고, 마네킹에 맵시 나게 옷도 입혀 놓았습니다. 뽕나무와 목화의 나라답습니다.   

     

주마 모스크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왼쪽). 알리쿨리칸 마드라사 앞 노점, 똑바로 가면 동문이고 오른쪽에 악 모스크가 있다(오른쪽).


노점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회반죽을 칠한 하얀색 건물입니다. 온통 흙빛 아니면 푸른 빛이었는데, 하얀색 건물이라니. 더구나 생김새도 독특합니다. 하얀색 낮은 담장 끝에 서 있는, 모스크보다 낮은 하얀색 굴다스타. 그리고 둥근 돔 아래 하얀색 사각 건물. 건물의 세 면에는 우리나라 처마처럼 튀어나온 반 지붕을 목각 기둥들이 받치고 서 있는 회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악 모스크입니다.      


동네 모스크인 악 모스크. 마치 비행접시같은 느낌을 준다.*

 

악 모스크는 동네 모스크입니다. 주마 모스크가 이 도시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큰 모스크라면 악 모스크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 모스크입니다. 동네 모스크는 대부분 이렇게 작고 네모난 건물에 작은 돔을 올려 투박하고도 소박하게 생겼습니다. 하얀색 악 모스크 중간에 튀어나온 반 지붕 때문에 마치 비행접시 같은 독특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아들이었던 딸, 아누사를 기린 동문앞 욕탕     


아누사칸의 욕탕은 바로 옆에 있는 악 모스크와 함께 165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욕탕은 아불가지칸이 아누사의 용기를 기려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압둘가지칸이 부하라 칸국과의 전투에서 사로잡혔을 때, 압둘가지칸을 구하러 온 것은 아홉 명이나 있는 아들이 아니라 열 번째인 딸 아누사였습니다. 부하라의 아미르에게도 매우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아누사는 부하라의 아미르에게 그를 놀라게 하면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미르는 호기심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아누사가 옷을 벗었는데, 남자였다고 합니다. 놀란 아미르는 약속대로 압둘가지칸을 풀어주었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아누사는 원래 남자였는데, 아누사가 태어날 때 이미 아들이 아홉 명이나 있던 압둘가지칸은 딸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을 낳았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아누사는 딸로 키워졌던 것이지요. 히바로 돌아온 압둘가지칸은 자기에게 아들은 아누사 한 명뿐이라고 선언하고 그 용기를 기리기 위해 치유의 욕탕을 지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누사칸의 욕탕은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병원을 겸한 복합 시설이었답니다. 발과 관절 질환의 치료를 위한 뜨거운 증기를 쬐는 시설, 치통을 완화시키는 시설, 혈액질환 치료 시설 등도 있었고, 약초로 만든 차도 준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찜질방에 갔던 생각이 납니다.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숯방에 들어가 탄소에서 나온다는 원적외선을 쬐고, 황토방에서는 몸이 나른해지면서 깜빡 잠도 들었었지요. 여기 욕탕에서도 그랬을까요? 요일별로 여성, 귀족과 칸, 사제, 마을 사람들로 구분하여 모두가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모두의 피로를 풀고 질환을 치료하는 장소였는지 궁금합니다. 

    

이찬 칼라의 유적은 서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큰 길 주변에 몰려 있다(구글 지도).



동문 밖 중앙아시아 최대의 노예시장   

  

욕탕은 동문과 이어져 있는데, 동문은 마치 길 건너에 있는 알라 쿨리칸 마드라사의 부속 건물처럼 보입니다. 동문은 이찬 칼라의 동서남북 네 개의 문 중에 가장 오래된 문입니다. 3천 년 된 문이지요. 사실 동문은 어찌 보면 히바가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면서 구 소련에 병합되는 현대사의 발단이 된 곳입니다.    

  

동문은 여섯 개의 돔이 한 줄로 늘어선 모양인데, 양쪽의 이완에는 노예들이 묶여 있었습니다. 동문 밖에도 엄청난 수의 노예들이 족쇄에 묶여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노예시장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전쟁 포로로 잡힌 사람들도 있고 주변 마을을 습격해서 잡혀온 사람도 있습니다. 여행자들을 잡아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건장한 러시아인 남자는 값이 비쌌다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히바의 노예시장에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피슈타크 옆에 두 개의 굴다스타가 있는 건물이 알라 쿨리칸 마드라사. 이 마드라사 옆에 작게 붙은 여섯 개의 돔이 동문 통로이고 앞쪽 돔들이 욕탕이다.**


러시아는 18세기 들어 카자흐 초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여 백여 년이 지나자 현재의 카자흐스탄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인도로 가는 무역로도 열고 아무다리야 강기슭에서 발견되었다는 금도 얻을 겸 첫 번째 정복 대상으로 히바 칸국을 선택했습니다. 

1717년 표트르 대제는 무장한 무역 원정대 약 4천 명을 파견했습니다. 1백 척에 가까운 배로 카스피해 북단에서 출발하여 동안에 상륙한 후, 메마른 땅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6월 중순의 타들어 가는 사막에서 갈증과 일사병으로 많은 대원을 잃었습니다. 기진맥진해서 도착한 히바에서는 대량 학살당하고 남은 수십 명은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포로들은 노예로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발트해를 둘러싸고 스웨덴과 전쟁 중이었고, 오스만튀르크와도 잦은 전쟁을 치르고 있어 중앙아시아에 눈 돌릴 여력이 없었습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정예병을 파견한 것은 나폴레옹과의 전쟁, 크림전쟁이 끝난 19세기 후반입니다. 

그때까지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쪽 변경은 약탈당했습니다. 러시아 무역단들은 습격당하고 물건을 약탈당했습니다. 납치당해서 노예로 팔려나간 러시아인들이 수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노예시장으로 번잡했을 동문 밖을 한참 봅니다. 가지각색 아름다운 무늬의 보도블록이 깔린 넓은 광장이 보입니다. 옆에도 모스크가 있고 저쪽 멀리도 모스크가 보이는 한적한 풍경입니다.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의 울분과 탄식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시간의 축이 너무 많이 다른 탓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나라의 하수구     


다시 동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일행이 바닥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사방팔방에 아름다운 문양이 있어 뭔가 또 독특한 문양이 있나 싶어서 가까이 가보니 하수구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팔각형인데, 조금 다른 팔각형입니다. 흔히 보아온 볼록 팔각형이 아니라 별을 그릴 때처럼 뾰족뾰족한 팔각형입니다.  

            

동문 왼쪽 건물은 알라 쿨리칸 마드리사, 오른쪽 건물은 아누사칸 욕탕이다. 동문 바로 앞에서 별팔각형 모양의 하수구를 사진 찍는 일행(왼쪽)과 하수구(오른쪽).

    

하수구의 문양은 정사각형을 두 개 엇갈려 겹쳐놓은 듯한 오목 팔각형입니다. 가운데 볼록한 회오리 문양도 나선이 8개로 나누어져 있고 옴폭 들어간 곳에 있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도 8개입니다. 이슬람에서는 8이 신성한 수라더니 하수구 모양까지 팔각형입니다. 

그나저나 사막 지역은 역시 다릅니다. 이 정도 구멍이 하수구 역할을 하다니. 비가 몇 방울이나 빠져나갈까 싶은 하수구 구멍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빗속을 자전거로 달리던 날이 생각납니다. 인천에서 떠나는 배에 자전거를 싣고 하룻밤 자고 도착한 제주도에서의 일이었지요. 라이딩을 시작하려는데, 비가 쏟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기 시작했지요. 여기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곳의 일 년 치 강수량이 그날 10분 정도 쏟아진 비와 맞먹지 않을까요? 




*사진 출처 https://www.orientalarchitecture.com/

**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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