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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30. 2021

히바_낙타가 되어 가리라 3

쿠나 아르크의 여름 사원 미흐랍 앞에서



쿠나 아르크의 여름 사원 미흐랍 앞에서


성곽 안의 성곽으로 들어섰습니다. 오른편으로 좁은 길을 돌아서니 여름 사원 이완이 높고 화려합니다. 그동안 보았던 이완들은 목각 기둥이 한 개만 서 있는 규모였는데, 여기는 6개나 있을 정도로 큽니다. 주춧돌도 어린아이 키 정도로 높습니다. 그런데 나무 기둥에 조각이 없습니다. 나무를 그냥 깎아 세웠나 봅니다. 기둥 아래 주춧돌에도 조각은 없습니다. 화려한 세공에 눈이 익숙해진 탓일까요? 밋밋해서 심심합니다. 알라 쿨리칸이 다시 화려하게 수리할 때 기둥과 주춧돌은 손대기 어려웠나 봅니다. 히바에는 목공예를 가르치는 곳이 많은데, 나무를 눕혀놓고 조각하더군요. 이렇게 이미 세워져 있는 기둥에 조각을 하기는 어려웠겠지요.


알라 쿨리칸의 지시에 의해 타일을 붙이는 과정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유약 바른 파란색, 흰색, 청록색 등 채색 타일을 여러 군데의 가마에서 구웠습니다. 가져올 때는 정사각형 타일마다 숫자를 써 오도록 했습니다. 숫자를 보고 퍼즐처럼 조립해서 벽면에 붙이는데, 타일 가운데 작은 구멍이 있어 못을 박아 더욱 튼튼하게 고정시켰습니다. 벽면의 타일을 자세히 보면 못대가리도 보입니다. 흰색 줄에 검은색 숫자도 보이고요.                   

쿠나 아르크의 여름 사원 벽면 타일. 정사각형 타일마다 못 자국이 있고 흰 줄 위에 숫자가 쓰여있다.


여름 사원의 이완 벽면 가운데 움푹 파인 벽감은 미흐랍이라고 합니다. 미흐랍은 성지인 메카 방향을 표시하는 구조물이지요. 어느 사원에나 있고 생김새도 똑같습니다. 마드라사에서 프랙탈로 반복되던 그 모양, 바로 직사각형과 아치 곡선이 어울려 만들어내던 그 모양입니다. 


무슬림들은 미흐랍을 향해 절하고 예배합니다. 미흐랍은 메카 방향을 향해 지어졌으니까요. 지구 어디에 있든지 모든 무슬림은 메카 방향을 향하여 하루 다섯 번 절을 합니다. 메카 방향은 정확히는 메카의 카바 신전이 있는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북위 21도 25분 24초, 동위 39도 49분 34초입니다. 이 기도의 방향을 특별히 키블라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키블라가 어느 쪽인지가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창시된 지 백여 년만에 아랍인들이 엄청난 속도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대륙을 점령해나가자 키블라 찾기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미흐랍을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이 여름 사원 안에서 메카 방향이 어느 쪽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여기서 1도 어긋나면 약 3천 킬로미터 떨어진 메카에서는 얼마나 어긋나게 될까요? 1도 어긋나면 또 메카에서는 얼마나 어긋나게 될까요? 


반지름이 히바에서 메카까지의 직선거리인 3천km이고 중심각이 1도인 부채꼴을 생각해보아요. 호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요? 원주는 2×3×3,000 (원주율은 3으로 간단히 어림셈하지요)이니 360으로 나누면 50km이지요. 여기 히바에서 1도 차이 나면 메카에서는 50km가 차이 난다는 뜻입니다. 50km면 걸어서 10시간, 차로 한 시간 가까이 달려야 하는 먼 거리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슬람 문명에서는 수학과 더불어 지리학, 천문학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지요.    


쿠나 아르크의 여름사원 이완. 정면에 미흐랍과 오른쪽에 계단형식의 설교대인 민바르가 보인다.

     

이슬람 세계에서 지도 제작에 중요한 발전을 이룬 때는 9세기 초 아바스 왕조의 7대 칼리프인 알 마문 통치기입니다. 알 마문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지혜의 집은 도서관이자 학문의 중심지였지요. 이곳을 중심으로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등 이전 시기의 문헌들의 번역을 장려하고 학자들을 후원하였어요. 무슬림은 물론 기독교인, 유대교인 등 종교적 문제나 전쟁으로 갈 곳 없는 학자들에게 국적을 불문하고 연구 공간을 제공해주고 후원해주었습니다. 알 마문은 자오선 1도에 해당하는 지구의 거리를 다시 측정하라고도 했지요. 위도 1도 사이의 거리는 지구 어디에서나 같지만 경도 1도 사이의 거리는 위도에 따라 다르잖아요. 적도 부근에서는 길고 북극으로 갈수록 점점 짧아지는데, 이 거리를 측정하고 계산하는 과정에서 지구 둘레의 길이도 계산하게 되지요.      


지구를 측정하다     


서문 밖 동상의 주인공인 알 콰리즈미도 지리학에 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수정하여 『지구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라는 도시의 좌표들과 지리적 특징을 담은 책을 남겼습니다. 아랍어 사본과 라틴어 번역본 모두 전해지지요. 알 콰리즈미의 ‘수정’은 단순한 수정은 아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대륙으로 둘러싸인 닫힌 바다로 그렸는데, 알 콰리즈미는 열린 바다로 바로 잡았습니다. 지중해의 폭을 경도 63도 정도로 과대평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오류도 바로 잡았습니다. 알 콰리즈미는 지중해보다 훨씬 넓게, 아프리카 서북쪽 카나리 제도부터 계산하여 50도임을 계산해내었지요. 알 콰리즈미는 이후에 이슬람에서 기준으로 통용될 본초 자오선도 정하였습니다. 바그다드와 알렉산드리아 사이 지중해 동쪽 해안에 본초 자오선을 새로 정하여, 2,402개의 도시 좌표와 날씨에 따른 경도와 위도 목록표 등도 책에 담았지요. 


사실 경도는 위도와 성격이 다르지요. 위도에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기준이 되는 적도라는 명백한 출발선이 있습니다. 적도의 위도를 0도로 삼지요. 그러나 남극과 북극을 지나는 대원인 자오선은 어느 경선을 출발선으로 삼든 상관없습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본초 자오선이 등장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리학』에서는 카나리 제도를 지나는 경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삼았고, 『알마게스트』에서는 알렉산드리아를 지나는 경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삼았습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우자인을 지나는 경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삼았습니다. 수십 개의 본초 자오선이 사용되다가 지금과 같이 그리니치 자오선으로 정해진 것은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입니다. 뉴턴 시절부터 영국에서 사용하던 그리니치 자오선이 전 지구적 본초 자오선으로 정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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