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같은 꿈과 꿈같은 현실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창밖에 보이는 터키석 빛깔의 물에 단박에 시선을 빼앗겼다. 산속의 비현실적으로 맑은 청록색 물은 산세를 따라 굽이치며 잔잔히 흐르다가 어느 한 곳에 모여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저기서 수영하면 천국에 온 기분이겠구나 상상하며 드디어 땅에 닿은 비행기의 기체를 느꼈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사람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가방을 챙기고 복도로 나갔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내 캐리어까지 손수 알아서 내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거리로 나와 짐을 챙기는데 갑자기 인원이 불어났다. 남편의 전 여자 친구를 포함해 그의 친구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여러 명 합류했다. 남편은 내가 수속을 밟고 비행 이십 분 직전에 여권을 잃어버려서 난리였다고 자기 친구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일제히 웃었다. 사실 공항에서 서류 사이에 여권을 넣으면서 이러다가 서류째로 버려버리면 난리 나겠다 생각했고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결국 그 사단이 났구나. 나는 덤벙대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는데 어쩐지 나의 치부를 친구들에게 농담거리로 제공하는 것 같아서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분명 공항에서는 남편 가족들과 헤어지고 우리 둘만 비행기에 타기로 되어있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왜 비행기에 타고 착륙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일이 하나도 기억에 없는 걸까?
어쨌든 나는 지루한 비행 과정이 다 생략되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영화라면 당연히 그런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다 잘라내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삶도 그렇게 간편하면 좋을 텐데.
우리 일행은 길모퉁이에서 짐을 챙겼다. 하늘은 어쩐지 사막처럼 숨 막히는 오렌지빛이었다. 보이는 모든 것에 탁한 태양의 필터가 씌워진 것 같았다. 나는 이 기묘한 분위기와 예정 없이 남편의 친구들과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딱 호러 영화의 시작 같은 느낌이었다. 이대로 우리는 어딘가에 가서 한 명 한 명씩 극심한 고통을 겪고 처참하게 살해될 거라는 예감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발 이거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해줘, 제발. 그들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나는 꿈속에서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잠에서 깨왔다. 내 꿈은 종종 루시드 드림이고 현실처럼 선명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꿈이라고 착각하고 불편한 상황을 저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피하려고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남편만이 지금 나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를 간절하게 쳐다봤다. 그는 내 눈길을 피했다.
저 멀리서 지프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안에 탄 인물들은 악당 같은 면모를 하고 있었고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리라는 걸 알았다. 이게 결국 꿈이라서 깨어난다고 해도 내가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꿈속에서라도 별로 고통은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게 정말 꿈이라면, 내가 정말 루시드 드림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굳이 뛰어내리지 않아도 이 꿈에서 깰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가방을 들고 일행 옆에서 걸으면서 그걸 믿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어딘가에 빨려들어가듯이 순식간에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니 새벽 5시 36분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모든 게 꿈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중지 손가락을 뒤로 젖혀봤다. 현실이었다. 한동안 멍하게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눈앞에 푸르게 흐르던 계곡물이 선명했다.
남편은 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할 때마다 걱정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매트릭스 4를 본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네오는 계속해서 현실을 의심해야 하는 시험에 들었고 사실은 악몽에 불과했던 가짜 현실을 벗어나는 열쇠는 얼마나 그 현실을 부정하고 꿈과 직감을 믿느냐에 있었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에 대한 내용이었고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 같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도 뛰어내리는 것으로 이 끔찍한 꿈에서 벗어나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얼마 전에도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 너무 생생하고 현실 같아서 남편에게 만약 내가 꿈에서 본 게 환상이 아니라 다른 우주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나는 다른 우주에서 위험에 처한 다른 나들에 연민을 느꼈고 그게 실제가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다.
꿈은 다른 우주로 가는 포탈이야.
그리고 어제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러 갔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남편과 나는 입을 벌리고 서로를 쳐다봤다.
아직 꿈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더 공포스럽다. 꿈에 대한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꿈은 이거다라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꿈에서는 믿으면 모든 게 가능하다. 나는 꿈에서 자주 새처럼 날아다녔는데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라든가 날개를 퍼덕거리는 정도나 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높이, 방향이 너무도 세세하고 현실적이라 가끔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그들의 시점과 기분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나 도망가야 할 때도 믿는 정도에 따라서 그 여부가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야만 공중으로 도약할 수 있다. 나는 중간에도 내가 어떻게 날고 있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고 의심하는 순간 몸이 무거워지며 점점 땅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퍼뜩 정신을 다잡고 다시 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열심히 날갯짓을 하면 하강하던 몸이 다시 점점 떠오른다. 그래서 꿈에서는 의심을 하면 안 된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끌리는 대로 책을 하나 집어들었다. 영국 작가 D. H. Lawrence의 시집이었다. 로렌스는 친구였던 올더스 헉슬리가 그는 다른 우주에서 온 게 분명하다고 할 정도로 신비한 영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유튜브 나중에 보기 폴더에 모아놓은 1,000개가 넘는 영상 중 아무 거나 하나 골라서 듣기 시작했다. 제목이나 설명에는 없었지만 영상은 D. H. Lawrence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가 어떻게 눈을 감으면 새나 나무 등 다른 생명의 시점과 생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는 그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또렷하게 깨어있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D. H. Lawrence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가끔 현실은 너무도 꿈같아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꿈속에서도 먼저 손가락을 젖혀서 현실 여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손가락을 젖혀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건 실제 루시드 드림을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일상 속에서 자주 가운데 손가락을 젖혀서 이게 현실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게 버릇이 되면 꿈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꿈이라는 걸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꿈속에서라면 가운데 손가락은 끝까지 젖혀져 손등에 닿을 것이다. 가운데 손가락은 마치 인셉션에서 토템 같은 존재다. 아마 인셉션 감독도 이걸 물체화 시켜서 토템이라는 콘셉트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은 루시드 드림을 하려면 현실을 살면서 자주 현실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금껏 이걸 직접 해서 꿈을 알아채 본 적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오늘 아침, 앞으로 이걸 더 열심히 해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꾸 버릇처럼 현실을 의심하고 꿈은 아닐까라고 의구심을 갖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모르겠다. 꿈과 현실이 정말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꿈에서 깨어난 지 5분만 지나도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생생하고 일관된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허무맹랑한 꿈을 손에 만져지는 현실과 혼동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매일 밤 속고 만다. 오감을 사로잡는 꿈속 현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