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치는 파리의 밤

기록주의자의 여행

by 휘바

이른 새벽 프랑스에 도착했다.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공항에서부터 무더운 날씨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프랑스에 오니 공항 직원들이 프랑스어로 수다를 떠는 장면조차 외계인을 보는 듯 신비하게 다가왔다.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서울이나 런던이나 파리나 아침 기차의 풍경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데 그들의 국적은 달라도 표정은 동일하다. 대도시의 얼굴은 비슷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장거리 비행과 시차로 인해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기분으로 앉아있었다. 기차 창밖으로는 프랑스의 하늘이 파랗게 펼쳐졌다.


14년 전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받았던 감상은 여전히 잊히지 않았다. 모스크바를 거쳐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올려다본 프랑스의 하늘은 어딘가 달랐다. 더 아득하게 높아 보이고 하늘색의 색감도 필터를 씌운 것마냥 무언가 달랐다. 그때와 비슷한 감상을 중얼거리자 남편은 그런 게 어딨냐며 웃었다. 그러나 프랑스에 있는 내내 ‘정말 그렇네, 하늘이 뭔가 달라.’라고 어느새 세뇌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 긴 여정의 피로를 이겨낸 역전의 순간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모자와 유니폼을 갖춰 입은 도어맨이 ‘봉주르 마담’하면서 내 짐을 가져가길래 ‘저 사람 가짜 유니폼 입고 내 가방 훔쳐가는 거 아니야’라고 순간적으로 의심을 했다. 호텔 입구가 딱히 화려하지 않았고 남편이 좋은 호텔을 구하지 못했다고 미리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박한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고급진 파리의 살롱 같은 로비가 나왔다. 그랜드 피아노와 스테인드 글라스, 흑백의 체커보드 바닥으로 이루어진 로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20세기 초 파리로 시간여행을 한듯했다. 호텔은 문을 연지 125년이 넘었다고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을 할 순 없었지만 호텔에는 스파가 있었다. 지하에 있는 스파 천장은 불투명 유리로 되어있어서 바삐 출근을 하는 파리지앵들의 발걸음이 보이고 들렸다.


샤워를 하고 스팀룸에 들어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수증기 속에 앉아있으니 여기가 파리인지 꿈속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와 한숨도 못 잔 상황에서 몸이 노곤해지자 급 피곤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 것 같아서 사우나에 들어갔는데 섭씨 100도가 넘어가게 설정되어 있어서 통구이가 될 것만 같았다. 얼음장같이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스파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동안 온몸은 다시 땀범벅이 되었다. 아침부터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100도가 넘는 사우나 덕분에 스파 안이 도합 130도의 용광로가 된 까닭이다. 더 있다가는 기절할 것 같아서 급히 탈출했는데 바깥공기가 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공원으로 무작정 걸었는데 어딘가 익숙했다. 14년 전 홀로 걸었던 튈르리 정원이었다. 14년 전 이곳에서 혼자 레몬 소르베를 먹으며 더위와 고독을 음미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을 지나 같은 공간에 돌아온 나는 나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다른 인물이지만 너무나도 같은 인간이기도 했다.


검다 못해 파란 털에 윤기가 도는 까마귀들이 총총 거리며 잔디밭을 뛰어놀고 있었다. 새들도 더운 것은 마찬가지인지 몇몇은 수돗가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한 프랑스 아저씨와 나는 동시에 그 새들을 눈치채고 사이좋게 번갈아 수돗물을 틀어주었다. 물을 틀어주면 조심스레 다가와 부리를 힘껏 벌리고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는 까마귀들이 너무 귀여워서 아저씨와 나도 마주 보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파리가 태어난 곳이라 해도 무방한 동네, 파리의 제1구를 걸었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기념비나 건축물이 있었다. 그러나 파리의 정취에 취하기에는 너무 덥고 너무 배가 고팠다.


아침 식사와 커피가 간절했는데 선뜻 식당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이 동네에는 관광객 대상의 촌스러운 카페(나라 불문 이런 식당은 꼭 촌스러운 가짜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에 60유로가 넘는 쓸데없이 호화로운 브런치 카페만 많았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어질 찰나 적당히 로컬스럽고 실속 있어 보이는 카페를 찾아들어갔다.


마침내 음식다운 음식과 카페인을 배에 넣자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파리에 있는데 낮잠으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했지만 자꾸 눈이 감겨왔다. 마침 호텔에서 방이 준비되었다는 전화가 왔고 체크인을 했다.


호텔방에 들어가자 잠이 싹 달아났다. 높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샹들리에, 양쪽으로 활짝 열리는 프랑스식 창문, 에펠탑과 루브르의 조각상들이 보이는 풍경. 14년 전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방이었다. 그때 나는 6인실 도미토리에서 지냈는데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자 남녀혼용 도미토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이토록 멋진 방에 머문다는 현실에 감동하는 한편 가계 걱정으로 불안해졌다. 나는 왜 상상하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도 즐길 수 없는 중생인 것인지.. 끝내 숙박비가 얼만지 모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불안은 회피하는 것이 제맛이다.


그리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5시가 넘어서 일어났는데 창밖은 여전히 대낮처럼 훤했고 30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공기도 여전했다. 밤 9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유럽의 여름을 사랑하지만 여름밤은 선선해야 제맛 아닌가. 이제 어딜 가도 산들바람이 부는 여름밤은 추억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걸까.


이른 저녁시간 땀을 흘리며 다시 파리의 거리로 나섰다. 식당에 가서 비프 타르타르와 샐러드, 구운 연어를 주문했다. 칵테일을 시키다가 당연하고도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랑스에서는 칵테일 French 75를 그냥 75라고 부른다는 것.


웨이트리스는 아주 화려하게 생긴 아가씨였는데 고맙다고 할 때마다 눈을 맞추며 같이 웃어주는 상냥한 친구였다. 맛있는 음식과 파리답지 않은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이루어진 2인조 밴드였다. 샹젤리제와 스탠바이미, 퍼렐 윌리엄스의 해피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아마 로제와인 때문일 것이다.


보컬은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이었는데 노래하는 중간중간 나를 내려다보고 미소를 날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심장이 부푸는 느낌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기타리스트 아저씨 대머리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다음 일정 시간이 임박해서 아쉽게도 공연이 끝나기 전에 식당을 나서야 했다. 더듬더듬 서버에게 친절한 서비스 고맙다, 당신은 참 아름답다고 했더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타티아나라면서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자신은 35살이고 딸이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프랑스 여행 내내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자꾸 마음속에 떠올랐다. “우리 엄마가 늘 나한테 했던 말이 있어. 아름다움은 외면이 아니라 심장에서 나온다고. 난 그 말을 늘 명심하고 살려고 노력했어. 맞는 말이야. 너도 그렇거든. 꼭 다시 들러줘.” 그녀와 작별하고 사랑에 빠진 기분으로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막달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오케스트라가 조율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날개를 단 천사들이 모여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조각상들은 거인처럼 거대했고 금색 촛대조차 사람 몸보다 컸다. 그 앞에 앉아있는 연주자들은 마치 요정처럼 깜찍해 보였다.


비발디의 사계로 시작되는 연주가 시작되자 또 눈물이 났다. 로제와인 때문일 것이다.


아무 계획도 일정도 없이 도착해서 우연히 선택한 식당, 우연히 공연 포스터를 보고 찾은 공연, 이 모든 것이 완벽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떤 성스러운 존재가 나를 보살펴주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마음속으로 감사기도를 했다. 다음번에 힘든 일이 찾아와도 징징거리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다짐도 해봤다.


그러나 그 다짐은 1시간이 채 못 가 깨지고 말았다. 남편과 별 것도 아닌 일로 격렬하게 싸운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들뜬 우리는 센강을 따라 걷기로 했다. 금요일 밤, 파리에 사는 모든 이가 강가에 나와 와인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그렇게 취해서 담벼락에 오줌을 싸는 파리지앵 옆을 걸으면서 말다툼을 했다.


말다툼을 하고 냉랭한 분위기로 걷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왔다. 뇌우주의보가 내렸다고 듣긴 했는데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은근히 반가웠다. 문제는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모래였다. 모래가 눈에 들어가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고 샌들을 신은 발은 모래로 인해 꺼끌꺼끌해졌다. 강둑에 바글바글하게 앉아 술을 마시던 이들도 꺅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떴다.


에펠탑을 향해 모래 바람 속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남편은 왜 멋진 하루를 보내놓고 작은 일로 화를 낼까? 단순히 피곤하다고 이렇게 예민하게 굴지는 않을 텐데.


어느 정도 추측은 갔다. 남편은 시아버지와 매우 비슷했다. 시아버지는 여행을 할 때마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쓰고 멋진 계획을 세웠는데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기분이 상해 삐지거나 화를 냈다. 남편은 파리 여행을 앞두고 내가 에펠탑이 보이는 호텔 방을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해놓은 것을 보고 일부러 에펠탑이 보이는 호텔을 찾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런데 행복해해야 할 내가 사소한 것들로 불평을 하니까 기분이 상해버린 것이다.


깨달음과 함께 이마를 후두둑 때리는 빗방울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산책을 끝내고 우버를 불렀다. 에펠탑에 도착할 때쯤 우버기사가 밖을 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에펠탑이 코앞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기사는 정각에만 5분도 안되게 잠깐 반짝이는데 운이 좋다고 어서 내려서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싸운 것도 잊고 웃으며 에펠탑을 향해 달려갔다.


프랑스에 살 때도 에펠탑에 감흥이 없었는데 이 날은 뭔가 달랐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까만 밤 반짝이는 에펠탑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에펠탑 뒤로 하늘이 쪼개지듯이 은색 번개가 쳤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져서 우리는 가로수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비를 피해 우왕좌왕 사방으로 흩어지다가 나무 아래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선 사람들이 귀여웠다.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상인들이 빠라플루이라고 외치며 우산을 팔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빽빽하게 달린 커다란 나무 밑에 서있으니 폭우가 내려도 하나도 젖지 않았다. 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했다. 내가 그리워했던 선선한 여름밤이었다.


비에 젖은 파리는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낭만적인 인상이 되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져갔고 우리는 그냥 비를 맞고 걷기로 했다. 하루 종일 열기에 달아오른 몸에 차가운 빗방울이 닿자 상쾌한 기분이었다. 까끌한 모래도 찝찝한 기분도 세찬 비에 씻겨 내려갔다. 파리도 나도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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