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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Aug 22. 2019

집으로 가는 길

스페인 여행기


나에게 Girona는 그저 거쳐가는 곳이었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프랑스를 떠나 집에 가기 전 잠시 들리는 곳. 그 덕에 아무런 기대도 계획도 없이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작은 도시 Girona에 도착했다. 인구수가 십만 명 정도인 소도시지만 까탈루냐 지방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이때까지만 해도  년 동안  도시를 그리게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렴한 호스텔에 짐을 내려놓고 직원에게 볼만한 것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자로서 자세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 나는 준비 없이 혼자 훌쩍 떠나 유럽 소도시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계획도 조사도 없이 떠난 곳에서는 우연스럽게 좋은 사람과 장소들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다 운명이었다.


직원의 조언대로 나는 호스텔 근처에서 열린 사진전을 보는데 그날 오후를 쓰기로 계획하고 길을 나섰다. 사진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진전을 보고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직원의 호들갑에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했던 빈정거림이 부끄러웠다.


Steve McCurry의 사진


피사체의 영혼과 순간의 교감을 담은 듯한 사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창피한 것도 잊고 그 앞에 서서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다. 이 사진들을 본 것 만으로 이 도시에 온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Steve McCurry의 사진들은 지금도 코끝을 찡하게 하며 나의 마음을 울려온다.


“당신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고, 그들의 영혼이 사진 속으로 떠오를 것이다.”


Steve McCurry가 한 말이다. 프랑스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또 유럽을 혼자 여행하면서 나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순간순간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쳤다. 그의 사진 속 존재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가진 전부를, 영혼의 맨 얼굴을 꺼내놓았다. 그래서 외로워 보이기도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폐장을 하는 전시회 직원에 등 떠밀려 나오면서 꼭 내일 비행기 타기 전에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시간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근처 유명 성당을 구경하러 가기로 하고 근처 식료품점에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새로운 곳을 가면 꼭 슈퍼마켓에 들린다. 평소와 다른 언어가 쓰여있는 식품 라벨들을 구경하고 같은 토마토라도 이곳의 토마토는 어떤 맛인지 바구니에 담아보기도 한다.


슈퍼마켓에서 한가로이 장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곳의 주민이 된 것 같아 색다른 기분이 든다. 자두 두 개, 빵 하나, 물 한 병을 샀는데도 2유로가 안 됐다. 프랑스보다 훨씬 싼 물가에 부자가 된 듯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깐깐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에게 어색한 스페인어와 더 어색한 웃음을 건넸다.


수세기동안 제 자리를 지킨 유럽의 교회나 성당들은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나를 맞아들이고 있다는 듯 기묘한 기분이 든다. 특유의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마치 기압이 순식간에 낮아지고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상태로 진입하는 상상을 일으킨다. Girona 성당 역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천장에서 내려오는 웅장한 아치들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에 데워진 피부에 삽시에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맞닿아 왔고 교회 문을 들어서는 순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성당은 아름다운 바로크식 성당의 정면과 이어지는 계단이 특히 유명하다. 그 계단에 걸터앉아 사온 자두와 빵을 먹었다. 친구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깔깔대는 소녀들이 보였다. 자두가 맛있어서 행복하지만 몇 년간 못 본 단짝 친구가 그리워져 살짝 눈물이 났다. Girona 여행은 여름치고는 이상하게 많이 울었던 여행이었다.


호스텔에 돌아와서는 유로컵 경기를 보고 있는 이탈리아 아저씨한테 맥주 한 캔을 얻어먹고 운 것도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호스텔의 손님들과 직원까지 둘러앉아 경기를 보며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들뜬 분위기였는데 영국에서 왔다는 호스텔 직원과 이야기하게 됐다.


어쩌다 스페인 시골까지 와서 살게 되었냐고 묻자 영국에선 금융권에서 일했다던 그는

 

“영국에선 일하기 위해 사는데 여기선 살기 위해 일하거든”


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오를 때마다 나를 사유하게 한다.


그 당시에 어린 나는 그를 보며 40대가 되어서 젊은 여행자들 뒤치다꺼리해주기 자존심 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그는 지난 6년 간 행복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또 그가 영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을 내일 떠나기는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폴란드로 떠나는 날인데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여정은 탈선한 기차처럼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 덩치만 한 짐을 어젯밤 맥주를 나눠줬던 이탈리아 아저씨가 의리 있게 손수 버스 정류장까지 들어주었다. 그렇게 짐을 부리부리 싸서 공항에 갔건만 공항 직원은 여권을 보자마자 나를 따로 불러 세웠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고 프랑스 이민국의 실수로 연장되어야 할 나의 거주증이 연장되지 않고 만료가 된 상황이어서 나는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긴커녕 당장 유럽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유럽에 살면서 이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인이 박힌 나는 눈물도 나지 않고 담담했다.


다시 호스텔에 돌아와 어떻게 여정을 바꿔야 할지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독일에서 집에 가는 비행기 티켓은 이미 사놓은 상황인데 독일에 갈 수 없었다. 기차 타고 스페인 북쪽으로 가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배를 타고 영국에 가야 하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사관에 전화를 하라는 조언이 많았는데 전화연결이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또 하룻밤을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 호스텔 여행객들은 주렁주렁한 짐들과 함께 돌아온 나를 반기며 같이 재즈클럽에 가자고 하였다. 지치고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따라나섰다. Frank Sinatra의 노래가 재즈클럽에 울려 퍼졌다.


 “Call me irresponsible, yes, I'm unreliable”.


그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오랜 기다림 끝에 스페인 영사관과 통화가 되었고 담당자는 아프리카에 갔다 오면 안전하게 독일에서 한국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조언을 해주셨고 미리 체크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고 자책하고 있던 나를 위로해 주셨다. ‘영사관 오난희 씨’, 그녀의 친절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장에 적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모로코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이 와중에 잘못된 날짜의 티켓을 구매해서 변경 수수료가 한국돈으로 십만 원이 들었다. 정신을 놓고 사는 것 같아 나 자신을 흠씬 패고 싶었다.


티켓을 구매하고 나니 이제 Girona에서 조금 더 머무른다는 사실이 살짝 설레었다. 계속 나를 위로해 주던 같은 방 빨간 머리 에블린은 버스를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근처 바다에 가자고 나를 꼬드겼다. 더 이상 잘못될 것도 없다는 생각에 또 따라나섰다.


아름다운 스페인 시골의 경치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를 휙휙 건드리고 지나갔다. 모래사장 같은 황금색 들판과 바다 같은 푸른 하늘이 인상주의 그림처럼 나부꼈다. 두어 시간 후 우리는 아주 조그마한 항구도시인 Palamos에 도착했다.


에블린이 근처 다른 도시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혼자 항구 주변을 산책했다. 좁은 해변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노는 모습이 날 외롭게 만들어서 젤라또를 사 먹었다. 민트 초코칩 젤라또를 먹으며 크고 작은 낚싯배들을 구경했다.


Palamos로 돌아온 에블린과 재회하고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맥컬리 컬킨처럼 생긴 에블린의 아들 사진을 구경하며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이때 먹었던 아티초크 음식은 지금까지도 그에 견줄만한 아티초크 음식이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정한 에블린도 빨간 머리 앤처럼 나의 기분을 돋우어 주었다.


다시 두 시간을 버스로 시골길을 달려 Girona로 돌아왔다. 짐을 놓고 성곽길에 올라 노을을 보러 갔다. 성곽길에 올라가니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도시 위로 불그스레한 다홍빛 노을이 쏟아져 내렸다.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길을 다 걸어버리기가 아쉬워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며 걸었다.


이 길에서 만난 카탈루냐 청년들이 아니었다면 무지한 나는 지금까지도 카탈루냐와 스페인의 차이를 몰랐을 거다. 여태껏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를 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이젠 조금 익숙해진 식료품점에서 자두를 사고 그들에게 배운 카탈루냐어로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깐깐해 보였던 그녀가 처음으로 해사하게 웃어주었다.


보고 싶었던 친구에게 전화해서 오래도록 다정하게 통화했다. 모로코에 갔다가 무사히 유럽으로 들어와서 집에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Girona에서 우여곡절 때문에 돈도 생각보다 많이 쓰게 되었지만 여길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살가운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한 것이 유럽 생활 마무리를 훈훈하게 만들어주었고 현실적인 교훈도 얻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홀로 훌쩍 떠나는 여행은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끝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봐도 고치고 싶은 것이 없는 시간이고 여정이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고 들어야 할 소리를 들었으며 봐야 할 풍경을 봤다. 혼자만의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함께임이 소중함을, 우리는 늘 사람을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속에 소중히 기억하라는 뜻인지 Girona에서 찍은 사진을 몽땅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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